美·EU, ‘철강동맹’으로 中 ‘압박’
미국과 유럽이 강력한 ‘철강동맹’ 구축에 나섰다. 이는 세계 철강 산업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다. 더구나 미국의 구상은 동맹, 파트너들과 협력해 글로벌 공급망을 재정비하겠다는 것이어서 더욱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중국 바오우 강철그룹은 세계 최대 철강 기업이다. 세계철강협회의 ‘2020 글로벌 100대 철강사’ 보고서에 따르면 바오우 강철그룹은 지난해 조강생산이 2019년보다 21% 늘어난 1억1529만 톤을 기록했다.

바오우 강철그룹은 2016년 6월 당시 중국 2위 철강사인 바오산강철과 6위 철강사인 우한강철이 합병해 만들어진 회사다. 이후 바오우 강철그룹은 중소 철강 기업들을 흡수하면서 몸집을 불려 왔고, 지난 20년간 세계 1위 철강사였던 룩셈부르크의 아르셀로 미탈을 제치고, 지난해 세계 최대 철강사가 됐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의 2021년 글로벌 500대 기업 순위에서 바오우 강철그룹은 72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바오우 강철그룹을 중심으로 자국 철강 산업 구조조정을 추진해 왔다. 중국 정부가 ‘강철 공룡’이라는 별명을 듣고 있는 바오우 강철그룹의 규모를 계속 키우는 이유는 낙후된 설비를 폐기하고, 철강 과잉 생산량을 줄이고, 자국 철강 업계의 출혈경쟁을 막고, 세계 철강 시장에서 자국의 철광석 구매 발언권과 철강재 가격 결정권을 높이려는 의도 때문이다. 말 그대로 세계 철강 시장을 장악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철강 산업은 매년 30억 톤의 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말을 들어 왔다. 철강 산업의 탄소 배출은 용광로에서부터 시작된다. 철광석을 용광로에 넣고 녹여 철강을 만들기 위해서는 뜨거운 열원(熱源)이 필요한데, 이때 열원 역할을 하는 것이 석탄을 가공한 코크스다. 철강 산업에서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전기로 공법(고철을 사용해 쇳물을 만드는 방법)이 있지만, 이 공법으로 생산한 철강 제품은 품질이 떨어진다.

전 세계 탄소 배출에서 철강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7%에 달한다. 따라서 철강 산업은 다른 어떤 산업보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세계 시장의 약 53%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철강 산업은 지난해 탄소배출량이 무려 18억 톤에 달한다.

문제는 세계적으로 철강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탄소 배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계철강협회는 전 세계 철강 수요가 올해는 전년 대비 4.5% 증가한 18억5540만 톤, 2022년 2.2% 늘어난 18억9640만 톤을 기록할 것으로 각각 내다봤다. 국가별 조강 생산량(지난 6월 기준)은 중국이 10억6480만 톤으로 세계 1위였다. 그다음으론 △인도(1억30만 톤) △일본(8320만 톤) △미국(7270만 톤) △러시아(7160만 톤) △한국(6710만 톤) 등의 순이었다. 미국과 유럽 각국 및 한국 등은 오는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때가 되면 전 세계 철강 수요는 2020년에 비해 23% 증가한 23억 톤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각국의 철강 업체들은 앞으로 탄소 배출을 엄청나게 줄여야만 한다. 천연자원 컨설팅 업체인 우드 매켄지(Wood Mackenzie)는 지구의 평균 상승 온도를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2도 내로 낮추려면 철강 산업의 탄소 배출을 지금의 4분의 1 수준인 7억8000만 톤으로 감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드 매켄지는 철강 산업에서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는 △철스크랩(고철) 사용 비중 확대 △직접환원철(Direct Reduced Iron, DRI) 공법 사용 △고로(용광로)·전기로 배출 집약도 감축 △배출된 탄소의 포집·저장 등을 꼽았다. DRI는 철광석을 석탄을 사용하지 않고 천연가스나 수소 등을 활용해 환원한 철로 탄소 배출과 불순물 발생이 상당히 적다.

각국의 철강 업체들이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는 가운데 유럽 철강 업체들이 DRI 공법을 이용해 탄소 배출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의 티센 크루프사는 2030년 탄소배출량 30% 감축을 목표로 2025년까지 DRI 공장을 완공할 계획이다. 스웨덴 철강 기업 SSAB는 지난 8월 화석연료를 일체 쓰지 않는 세계 첫 ‘화석연료 제로’ 제철 공장을 건설해 시험 가동을 시작했다. 이 공장에서는 내년부터 수소를 활용해 철강을 생산한다. 아르셀로 미탈도 수소를 고로에 주입하는 방식을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제철소에 적용하기로 했다. 원래 고로에 넣던 석탄을 수소로 일부 대체해 탄소배출량을 연간 20만 톤(5~6%) 줄인다는 계획이다. 미국 1위 철강 업체인 뉴코어는 이미 천연가스를 활용한 450만 톤 규모의 DRI 공장 2곳을 가동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기준 뉴코어의 탄소배출량은 글로벌 철강사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美·EU, ‘철강동맹’으로 中 ‘압박’
미국과 유럽, 탄소중립 명분으로 중국 압박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철강동맹’을 맺고 탄소 배출이 많은 중국의 철강 산업 견제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미국과 EU는 3년 넘게 계속돼 온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 분쟁을 종결하기로 합의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 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10월 3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별도로 정상회담을 갖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재임 때인 2018년 6월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로 촉발한 양측의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와 보복관세를 모두 철폐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EU산 철강(25%)과 알루미늄(10%)에 부과해 온 관세를 철폐하고, 과거 수입 물량에 기초해 무관세 물량을 부여하기로 했다.

EU도 버번위스키, 리바이스 청바지, 할리 데이비드슨 오토바이, 피넛 버터, 오렌지주스 등 미국산 제품에 대해 부과한 10% 보복관세를 철회했다. 양측은 또 ‘무역확장법’ 232조와 관련해 현재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 중인 분쟁을 종료하고, 2024년 철강 공급 과잉 해소와 탈탄소화를 위한 글로벌 협정 체결을 위해 협의를 개시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는 미국과 EU가 그동안 표면적으론 관세 갈등을 해소한다는 것이지만 진짜 목적은 철강, 알루미늄을 생산할 때 환경 기준을 강화해 상대적으로 환경 기준이 느슨한 중국산 제품을 배제하겠다는 일종의 ‘철강동맹’을 맺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중국 같은 나라의 더러운 철강이 우리 시장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할 것이고 우리 시장에 철강을 덤핑해 우리 노동자들과 산업, 환경에 크게 피해를 준 나라들에 맞서게 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중국은 철강과 알루미늄 생산 세계 1위국이지만 저렴한 가격에 비해 탄소배출량이 많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바오우 철강그룹의 탄소배출량은 2억1100만 톤으로 파키스탄의 탄소배출량보다 많을 뿐만 아니라 벨기에와 오스트리아의 배출량을 합한 것보다 많다.

특히 미국 정부는 중국산 철강이 유럽 등 우회 경로를 통해 자국 시장에 들어와 자국의 철강 산업이 상당한 피해를 입어 왔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미국과 EU는 앞으로 철강 분야에 탄소 배출 기준을 엄격히 적용, 기준을 충족하는 제품만 수입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과 EU는 미국인의 일자리와 산업을 보호하면서 기후변화의 실존적 위협에 대응할 중대한 돌파구를 마련했다”며 “우리는 대서양 협력의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탄소중립을 명분으로 중국산 철강을 미국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성명을 통해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첫 번째 철강·알루미늄 무역협정”이라며 “미국과 유럽 기업이 만든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이 탄소 감축에 커다란 이점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미국과 유럽의 철강, 알루미늄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보다 더 깨끗하다”면서 “중국의 부족한 환경 기준 때문에 철강, 알루미늄의 가격을 낮출 수 있었으며 이는 기후변화의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러몬도 장관은 또 “유럽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철강은 반드시 완전히 유럽에서 생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타이 대표도 “중국산 철강 제품이 유럽과 동남아 국가들을 거쳐 원산지를 바꾸는 방식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법을 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양측이 다른 국가들의 참여를 환영하겠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양측은 “글로벌 협정 체결을 위한 합의는 무역 정책을 동원해 기후변화 위협 및 글로벌 시장 왜곡에 맞서려는 공동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관심 있는 어떤 국가에도 참여할 기회가 열려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폰 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번 합의는 기후변화를 방지하려는 노력을 위한 커다란 진전”이라고 밝혔다.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EU 무역 담당 집행위원은 “생각이 같은 모든 나라들에 이 합의에 참여하라고 초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의 의도는 일본, 호주, 인도 등과 구축한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처럼 EU를 비롯해 동맹국과 파트너들을 결집시켜 ‘반중(反中)관세 동맹’을 맺겠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의 철강 수입 4위국인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상당한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가 관세 동맹국이냐 아니냐를 따져 특혜 또는 불이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EU가 관세 분쟁을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반사이익을 봐 온 한국의 철강 업계가 수출 물량이 줄어드는 등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철강 무관세를 적용받는 대신 물량을 제한받아 왔다. EU산 철강에 대한 관세가 없어지면 상대적으로 미국 시장에서 한국산 철강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10월 31일 G20에 참석한 국가들 중에서 14개국을 초청해 ‘글로벌 공급망’ 정상회의를 가졌다. 이 회의엔 EU를 비롯해 한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싱가포르, 인도, 호주, 네덜란드, 캐나다 등 14개국이 참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초청한 국가들은 미국의 동맹이나 우방국들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차질을 빚고 있는 공급망 문제를 줄이고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실패할 수 있는 하나의 소스에 의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공급망은 다각적이어야 한다”면서 “우리 공급망이 강제노동과 아동노동으로부터 자유롭고, 노동자의 존엄성과 목소리를 지원하고, 우리의 기후 목표에 부합하도록 보장하기 위해 지속 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신장 위구르 지역의 강제노동 등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정부의 중국 압박 주요 수단이었던 노동·인권 문제와 중국산 공산품·원자재 생산 감소 등을 글로벌 공급망 문제와 연관시킨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동안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동맹과 파트너들과 협력해 글로벌 공급망을 재정비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따라서 이번 회의는 미국이 앞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 파트너들과 함께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이 앞으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탄소 배출 감축과 글로벌 공급망 구축 등으로 중국을 강력하게 압박할 것이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제 종전선언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미국의 주도로 새롭게 구축되는 국제 경제 협력체제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글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