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2020 한경비즈니스 기업 지배구조 랭킹 : 트랜드]
- 완전한 ‘자율성·독립성’ 보장
- ‘재벌 개혁’ 외쳐 온 진보 인사 대거 포진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삼성그룹이 독립적인 외부 감시 기구인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었다.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 등 주요 7개 계열사와 협약을 체결해 준법 감시 업무를 위탁받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진보 성향의 김지형 전 대법관(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을 위원장으로 영입하고 외부 인사 6명과 내부 인사 1명 등을 중심으로 한 인적 구성도 마쳤다.

준법감시위원회는 최고경영진의 준법 의무 위반 리스크를 파악하고 대외 후원금 지출, 내부 거래 등 준법 의무 위반 리스크가 높은 사안을 검토해 각사 이사회에 의견을 제시하게 된다. 필요하다면 조사도 할 수 있다. 삼성은 준법감시위원회 출범을 통해 준법 경영 기조를 확실히 다잡는다는 계획이다.

◆ 2월부터 7개 주요 계열사 전방위 ‘준법 감시’
외부 독립 감시기구 만든 삼성, 재계 새 트렌드 될까
준법감시위원회는 2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SDS·삼성물산·삼성SDI·삼성생명·삼성화재 등 삼성그룹의 주요 7개 계열사들은 ‘준법감시위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협약’을 정식 체결할 방침이다.

이미 지난해 12월 7개사 사장단과 법무법인 등이 협약과 관련된 법적 절차 논의를 마친 상태다.
준법감시위원회는 삼성그룹 이사회에 속하지 않고 외부에 독립적인 상설 기구로 설치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동의한 사안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9일 준법감시위원회 구성과 운영 방안에 대한 기자 간담회를 서울 서대문의 지평 사무실에서 개최하고 “이 부회장을 직접 만나 이 같은 위원회의 완전한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준법감시위원회 인적 구성에 삼성의 입김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장을 포함한 외부 위원 6명과 내부 위원 1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된 준법감시위원회 위원들 중 외부 위원 5명은 김 위원장이 직접 골랐다.

대검찰청 차장 출신인 봉욱(봉욱법률사무소) 변호사, 권태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 대표,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등 대부분 ‘재벌 개혁’에 적극적인 의견을 표명해 온 진보적 성향으로 평가받는 인물로 구성됐다.

내부 위원은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 사장을 지낸 이인용 사회공헌업무 총괄(고문)이 선임됐다.

준법감시위원회에 맡겨진 임무는 막중하다. 단순히 국내 1등 기업 집단을 감시한다는 부담감을 차치하더라도 재계의 오랜 정경 유착 관행을 끊고 준법·투명 경영을 정착시키는 시발점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는 기회이기에 준법감시위원회가 앞으로 펼칠 역할을 바라보는 시선이 뜨겁다.

준법감시위원회 역시 열의를 불태우고 있다. 준법감시위원회는 이번을 기회로 삼성전자의 준법 경영 기조가 기업 문화로 자리 잡는 데 일조한다는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삼성의 준법·윤리 경영에 대한 파수꾼·통제자·감시자가 되겠다”며 “법 위반 사안을 인지하면 이에 관한 조사를 시행하고 법 위반 사항은 시정과 제재, 재발 방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안에 따라서는 형사 고발 조치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폭넓은 활동도 예고하고 있다. 준법감시위원회는 이 부회장을 비롯해 삼성그룹 최고경영진의 위법 행위 감시를 최우선 과제로 선정했다. 또 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취약점을 발견해 사고를 예방하는 역할도 수행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최고경영진의 법 위반 리스크를 최우선적으로 철저히 관리하겠다”며 “성역 없는 조사를 위해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 거래나 뇌물 수수, 부정 청탁 등 부패 행위에만 그치지 않고 노조 문제나 승계 문제 등도 준법 감시 대상으로 선정한다”고 설명했다.

준법감시위원회는 최고경영진의 법 위반 행위를 직접 신고 받는 시스템도 구축한다. 법 위반 행위를 인지하면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각 계열사 경영진이나 준법 관련 부서에 조치나 개선을 권고한다.

또한 준법 경영을 위반했는데도 개선되지 않거나 재발 방지 권고를 거부하면 위원회 홈페이지 등에 공표할 방침이다.

◆ 미국처럼 실효적 준법 감시 제도 마련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 설립은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이 단초가 됐다.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정준영)는 지난해 10월과 12월 두 차례 열린 재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위법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실효적 준법 감시 제도 마련을 주문했다. 미국 연방 양형 기준 제8장을 참고해 달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 연방 양형 기준 제8장은 미국의 기업 문화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업의 위법 행위를 억제할 장치를 만들어 범죄 행위를 방지하고 감시하며 보고하는 내부 시스템을 만들도록 유도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범죄를 저지른 기업에 대해 존폐의 위기에 처할 정도의 벌금을 설정한다. 기업은 생존을 위해 실효적인 감시 체제를 만들 수밖에 없고 재판부는 이를 철저히 검증한다.

이 기준은 1991년 미국 연방 양형위원회가 연방법상의 범죄를 저지른 기업에 대한 양형을 정할 때 연방 판사가 참고할 기준인 ‘기업에 대한 연방 양형 가이드라인(FSGO)’을 제정해 의회에 제출하며 생겨났다.

제8장에 명시된 FSGO는 기업이 유죄로 확정되면 감형을 받기 위해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범죄 행위 방지를 위한 기준 및 절차 △경영진 훈련 프로그램 △정기 평가 △내부 고발자 보호 시스템 등이 대표적인 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사전 예방 조사 △직무 교육 프로그램 △이행 점검 △내부 고발자 익명 신고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공표한 것 역시 이 제도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총수 일가 비리 사건이 벌어지면 늘 사후 수습 차원에서 준법 경영이 강조돼 왔다는 점을 들어 이번 준법감시위원회 설립 역시 형사 재판 피고인 신분인 이 부회장의 감형을 유도하기 위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냐고 지적한다.

김 위원장은 간담회 서두에 “진정한 의지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 부회장의 거듭된 요청과 진정성을 믿고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 관심은 운영의 실효성이다. 만약 준법감시위원회의 역할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다른 대기업들에도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 [돋보기] 27년 만에 나온 삼성의 셋째 ‘준법 경영’ 카드
외부 독립 감시기구 만든 삼성, 재계 새 트렌드 될까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 설립은 27년 만에 나온 셋째 ‘준법 경영’ 카드다. 삼성의 준법 경영 역사는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글로벌 경기 침체 시기를 돌파할 경영 시스템의 혁신 방안으로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제시한 ‘지행33훈’에 도덕성 회복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삼성헌법’을 명시한 것이 시초였다.

이후 2009년 삼성은 그룹 사장단협의회에서 준법 경영 기조를 공식화한 이후 2011년 ‘무관용 준법 경영’을 선포하며 둘째 준법 경영 카드를 선보였다.

물론 2013년에는 김상균 전 삼성 준법경영실장의 주도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평가 때 준법 경영 활동을 반영하기로 전격 발표한 바 있고 2017년에는 그룹 미래전략실 해체 등 경영 쇄신안이 추가되기도 했지만 조직 설립과 광범위한 실행 방안이 복합적으로 나온 것은 사실상 이번이 셋째다.

cwy@hankyung.com

[2020 한경비즈니스 기업 지배구조 랭킹 커버스토리 기사 인덱스]
-국내 53개 그룹 중 지배구조 1위 ‘한국투자금융·교보생명’
-외부 독립 감시기구 만든 삼성, 재계 새 트렌드 될까
-‘깐깐해진’ 국민연금…지난해 주총 안건 20%에 반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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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두산그룹, 감사기구 독립성·전문성 돋보여…CSR위원회 운영해 사회적 책임 강조
-4위 한화그룹, ‘준법 경영’도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으로…내부거래위원회는 100% 사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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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지배구조 랭킹 순위표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1호(2020.01.27 ~ 2020.02.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