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 회복한 기업들 성장 동력 확보 팔 걷어, 한국만 무풍지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주춤했던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금년 1분기 중 글로벌 M&A 규모는 6379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6.7% 증가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미국의 증가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산업별로는 전자통신부문의 M&A 증가율이 단연 앞서고 국내 M&A보다 국경 간 M&A(크로스보더 M&A) 증가율이 크다는 특징을 보인다. 즉 정보기술(IT) 부문을 중심으로 국경 간 M&A가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다.

구글·애플·아마존 M&A로 몸집 키워
예를 들면 1분기 중 미국 최대 케이블 TV 업체 컴캐스트가 2위 사업자 타임워너케이블을 452억 달러에 인수하고 소셜 네트워스 서비스(SNS) 업체 페이스북이 모바일 메신저 기업 와츠앱을 190억 달러에 인수한 것이다.
[폭발하는 M&A 한국은 뒷짐만] 상반기 메가딜 ‘봇물’…일곱째 붐 예고
금융 정보 분석 기관인 딜로직에 따르면 금년 중 글로벌 M&A 시장 규모는 3조5100억 달러에 이르러 2007년 이후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바야흐로 글로벌 M&A 시장에 훈풍이 불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1890년 이후 모두 여섯째 큰 M&A 물결이 있었는데 이제 일곱째 거대한 M&A 물결이 예고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M&A 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는 이유를 파이낸셜타임스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침체되던 경기가 회복되면서 기업의 자신감이 크게 회복됐다는 점을 꼽았다. 경기 전망이 밝아지자 제약·통신·미디어·인터넷 등에서 급격한 기술 변화가 일어나고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첨단 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한 공격적 M&A를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M&A 대상 기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불황기에 어려워져 구조조정 대상이 된 기업이다. 다른 하나는 신생 벤처기업과 같은 신성장 동력 산업이다. 미국은 대체로 둘째 기업들에 대한 M&A가 활발하다.

특히 구글·페이스북·시스코·애플 등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IT 업체들은 스스로 인재를 채용하고 육성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기보다 미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새롭고 획기적인 먹을거리에 대한 콘셉트를 구상한 다음 그 콘셉트에 맞는 벤처기업을 글로벌 시장에서 찾아내 거액을 주고서라도 M&A 하는 전략을 주로 구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IT 업체들은 거의 매년 10개 이상의 벤처기업들을 M&A 하고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무장한 벤처기업을 인수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점이 처음부터 인력을 채용해 양성하고 제품을 개발하는 시스템의 한국과 다르다. 이 때문에 실리콘밸리에는 피인수 합병으로 한몫 잡으려는 머리 좋은 벤처기업가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들고 될성부른 벤처기업을 발굴해 자금을 투자하고 돈을 벌려는 벤처 펀드나 엔젤 투자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글로벌 IT 기업들의 M&A가 활발한 곳에 벤처기업가, 벤처 펀드 엔젤 투자자와 관련 로펌 회계법인 등 사회 서비스 회사들까지 모여들면서 창조 경제의 생태계가 열대우림처럼 형성되고 발전해 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창조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M&A의 활성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폭발하는 M&A 한국은 뒷짐만] 상반기 메가딜 ‘봇물’…일곱째 붐 예고
최근 구글·애플·아마존·텐센트 등 글로벌 IT 기업들은 M&A로 몸집을 불리며 로봇, 웨어러블 디바이스, 스마트 카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구글은 지난 4월 무인기 제조업체인 타이탄 에어로스페이스를 인수하고 페이스북은 올해 초 영국 무인기 제조업체인 애센타를 인수하는 등 첨단 제조업으로까지 M&A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M&A 시장에 삭풍이 불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내 M&A 건수는 2010년 811건에서 2011년 629건, 2012년 525건으로 감소하다가 지난해 400건으로 크게 위축됐다. 재계 관계자는 경기 회복에 대한 확신이 없는 데다 마땅히 돈을 풀 만한 사업 영역·모델을 찾지 못한 까닭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지난 6월 다음과 카카오가 합병을 발표하면서 시장에 불씨를 던지고 있는 정도다.

이처럼 국내 기업이 M&A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기 불확실성 때문이다. 경기가 여전히 바닥권에 머무른다면 자칫 ‘승자의 저주’에 걸려들 수 있어서다. 승자의 저주란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과도한 비용이 투입돼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잇단 M&A를 통해 빠른 속도로 성장했던 STX그룹이 무너지면서 재계에는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 대기업은 ‘뒷짐’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대기업(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의한 M&A 규제다. 실제로 대기업에 의한 M&A가 거의 실종되다시피 하고 사모 펀드에 의한 M&A만 독주하고 있는 점이다. 2012년 SK가 하이닉스를 M&A, 3조 원이 넘는 거액을 투자해 SK하이닉스로 성공적으로 키우던 때와는 완연히 다른 분위기다. 대기업에 의한 M&A는 2012년 1분기 중에는 12건, 2조464억 원 규모였지만 금년 1분기 중에는 4건, 6595억 원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반면 사모 펀드에 의한 M&A는 같은 기간에 8건, 4515억 원에서 11건, 2조8099억 원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3월 정부가 발표한 ‘M&A 활성화 방안’에서 사모 펀드에 의한 M&A 규제를 대폭 완화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반면 경제 민주화의 여파로 대기업들은 상호 출자 제한, 순환 출자 금지와 해소 등으로 M&A 자체가 어려움이 적지 않은 데다 기존의 순환 출자 금지 해소에만도 막대한 자금이 소요돼 신성장 동력 산업에 대한 M&A는 꿈도 꾸기 어려운 실정인 점이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창조 경제를 육성한다고 하면서 대기업의 M&A를 이처럼 규제해 어떻게 창조 경제가 활성화될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실리콘밸리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대기업의 중소 벤처기업 M&A에 대해서는 3년간 계열 편입을 유예해 준다는 것이 전부인데 M&A된 중소 벤처기업과의 거래도 3년 후에는 내부 거래로 간주해 과징금을 물리게 되면 어떤 대기업이 신생 벤처기업을 인수하려고 할지 문제가 적지 않아 보인다.

한국 경제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창조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사모 펀드에 의한 M&A 활성화와 함께 대기업에 의한 중소 벤처기업 M&A 활성화도 중요한 과제다. 중소기업 M&A 시장이 발달하지 못하면 투자 자금 회수가 어렵게 돼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유인이 감소해 종국적으로는 창조 경제가 활성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만연해 있는 중소기업 M&A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부터 개선돼야 하고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경쟁국은 신성장 동력 확보에 날개를 다는데 한국만 낙오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오정근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