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 대선 후보 5인의 기업 정책]
‘대기업=옥죄야 하는 집단’으로 치부된 재벌 개혁…경제 흔드는 ‘票퓰리즘’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요즘 우리 회장님 눈이 사시가 됐어요. 여기저기 하도 눈치를 보느라.” 사석에서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이 한 말이다.

오는 5월 9일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대선)일이 다가오면서 재계가 반기업 정서 확산에 좌불안석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성난 민심 잡기에 급급한 대선 주자들이 반기업 정서를 키우며 오로지 대선용 표심 확보에만 혈안이 됐기 때문이다.

재벌 개혁, 지배구조 개선, 경제 정의를 외치는가 하면 골목상권, 전통시장 보호 등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내용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오죽하면 모 기업의 대표는 “마치 내가 범죄자가 된 기분”이라며 “정치 놀음에 왜 우리가 마녀사냥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反기업’ 공약만 가득…“기업은 힘들다”
◆ 강성 개혁안 쏟아내는 대선 주자들

실제로 이번 대선에서 나온 공약들은 경제 논리를 무시하고 ‘대기업=옥죄야 하는 집단’이라는 프레임만 쫓는 경향이 도드라지고 있다. 반기업 정서를 등에 업고 정치가 경제 논리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대선에서는 기업 친화적인 대선 주자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4대 재벌 개혁’을 슬로건으로 내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상법 개정(전자투표제 의무화 및 집중투표제 도입 등) △지주회사 요건 강화(지주사 의무 소유 자회사 지분 상향) △금산분리를 통한 산업·금융 분리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 △노동자추천이사제 등을 내걸었다. 또 그룹 총수에 대한 사면권은 제한하고 ‘준조세금지법’ 제정도 약속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기업집단을 견제하기 위해 하도급법과 유통업법 등을 개정하고 기업의 악의적 불법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집중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고 비리 기업인은 사면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는 총수 일가가 계열사 일감을 몰아주기 위해 개인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전면 금지할 방침이다.

총수 일가의 기존 개인 회사와 그룹 내 다른 계열사 간 내부 거래를 금지하는 방안도 공약집에 넣었다. 총수 일가와 경영진에 대한 사면·복권도 원천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또 유승민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갑을 관계 근절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와 집단소송제도·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사익 편취를 차단하겠다고 공약했다.

특히 심 후보는 기업집단 자체를 범죄시하거나 사회적 거악 수준으로 보고 있어 가장 반기업적인 공약들을 담고 있다. 심 후보도 총수 일가와 경영진에 대한 사면·복권은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공약을 포함했다.

그나마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의 공약은 다른 후보들에 비해 ‘친기업적’이다. 홍 후보는 재벌 2·3세의 탈법 행위는 응징하겠지만 기업 지배구조 개편에는 반대한다는 시각이다.

◆ 저성장·경제위기 극복할 대책은 없다

이처럼 역대 대선 가운데 반기업 정서가 가장 노골화되면서 재계가 노심초사하고 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경제성장률 전망이 2%대 중반까지 떨어지는 초유의 위기 상황인데도 대선 주자들은 이를 극복할 혜안이 없고 그저 재계를 공격해 표를 얻자는 ‘선거 공학적인’ 행보만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는 미국·중국·일본의 통상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정책들이 현실화하면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도 동반 추락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더 이상 한국에서는 사업을 할 수가 없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글로벌 시장이 ‘자국 기업 보호주의’로 급선회하는 마당에 한국만 역행하고 있어 한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실제로 세계 각국의 정치 환경은 자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자유무역 체제의 중심이었던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 기치를 내걸며 기업가 정신 확산을 위한 전담 보좌관을 신설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이후 기업들에 20%에 가까운 법인세 인하와 각종 규제 철폐를 약속했다.

다른 선진국들도 자국 기업을 불러들이는 유인책을 적극 내세우고 있다.

독일은 사물인터넷(IoT)과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을 갖춘 ‘스피드 공장’을 세워 아디다스가 24년 만에 자국으로 생산 기지를 옮길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고 프랑스는 정부 차원의 전담 기구를 설치해 자국 생산 제품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기업들의 유턴을 지원했다.

법인세 혜택 확충은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일본·영국·스위스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의 공통된 정책 기조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적 흐름에 대응하기는커녕 반기업 정서란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선 주자들이 경쟁적으로 경제 활성화를 외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들 역시 반기업 정서의 굴레를 강하게 조이는데 여념이 없다.

세계기업가정신 발전기구 졸탄 액스 대표(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한국의 기업가 정신은 울퉁불퉁한 바퀴(spiky bad wheel)”라고 표현하며 “망가진 바퀴로는 기업이, 국가 경제가 앞으로 굴러가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액스 교수는 “기업가가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조하고 그것을 통해 부를 만들어 내는 것에 한국 사회의 지지가 인색하다”며 “기업을 규제하는 정부, 대중의 반기업 정서가 지금 상태로 유지된다면 한국 기업이 이전과 같은 발전을 보여주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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