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지방 소도시 부활 프로젝트 : 양양·군산·안동…‘매력 도시’를 찾아라]
- 양양·군산·안동 등 가능성 보여줘…삶의 방식 중시하고 소통 능한 ‘매력人’들이 주역
매력 있는 소도시의 시대가 온다
(사진) 군산 적산 가옥을 개조한 여관

매력적인 사람을 마음속에 떠올려보라. 아름다운 외모, 지적 능력, 좋은 집안, 학벌, 재력 등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매력이다.

그런데 일반적이지 않은 매력도 있다. 항상 빨간색 두건을 쓰고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식당 주인, 운전하다가 갑자기 올드 재즈를 흥얼거리는 택시 운전사, 어눌한 말투로 광고에 등장한 사장님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꼭 좋은 것만 매력이라고 할 수 없다. 욕쟁이 할머니도 매력적이고 찢어진 청바지도 매력적이고 거친 말투의 체육관 관장님도 알고 보면 매력적이다.

도시도 그렇다. 유럽의 시골을 여행하다가 마음을 끄는 작은 마을을 만났다고 하자. ‘아, 이런 데서 살고 싶어’라는 생각을 품게 된 이유는 고급 주택, 좋은 학군, 지하철 역세권 같은 일반적 매력 때문이 아니다.

낡았지만 정겨운 돌계단, 좁고 아늑한 골목길, 담장을 덮은 귀여운 장미 덩굴처럼 사소한 것들에 마음이 끌렸을 가능성이 높다. 바로 이러한 매력적인 사람들과 장소의 영향으로 지역이 변화하고 발전한다.

양양은 불과 2~3년 만에 서핑 도시로 거듭났다. 오래된 일본식 가옥에 세련된 카페와 서점이 들어서면서 극적으로 변한 군산은 또 어떠한가. 서울 거주자가 안동에서 스페인 식당을 열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이 낙후된 구도심에 모여들고 있다.
매력 있는 소도시의 시대가 온다
(사진) 양양 바루서프 / 서범세 기자

◆자발적 개인들이 만든 변화

이런 변화는 소수의 사람들과 한정된 장소의 매력에서 시작됐다. 2014년 채화경·김진수 부부가 양양 인근에 바루서프의 문을 열자 한적했던 해변이 순식간에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서퍼들로 가득 찼다. 마치 그동안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서핑이 동해안에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수많은 서퍼들이 양양으로 모여들었다.

이들 부부가 가게를 열고 불과 2년 만에 동해안 7번 국도는 서퍼의 천국으로 바뀌었다. 인구 해변, 죽도, 기사문으로 반바지와 샌들 차림의 젊은이들의 퍼져나갔다.

바루서프의 사례에서 보듯이 자신이 좋아하는 서핑을 알리고 싶은 어느 부부의 매력이 이런 멋진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을 양양으로 그러모았다. 낡은 건물을 개조해 꾸민 서핑 숍에서 시작된 변화는 해안 도로를 따라 주변으로 퍼져나갔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모이고 지역 경제가 돌아가고 자발적으로 인구가 유입되고 이들이 모여 건강한 도시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서퍼들의 매력적인 삶, 그 덕분에 쇠락해 가던 3만 인구의 도시 양양이 매력 도시가 될 기회를 잡았다.

인구가 감소하고 산업체가 빠져나가고 있는 소도시. 사람과 사업을 홀린 듯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소도시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국내외 다양한 매력 도시들을 살펴보면 도시의 극적인 변화가 소수의 사람과 한정된 장소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시는 한 번에 파악하기 쉽지 않은 거대하고 복잡한 구조물이다. 건물이나 공원 같은 물리적인 환경에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같은 인간 활동이 종합적으로 버무려진 것이 도시다.

이런 거대 복합체를 매력적으로 만들려면 정치가가 큰 꿈을 꾸고 자본가가 돈을 움직이고 도시 계획가가 멋진 마스터플랜을 그려내야 한다. 행정가들은 어렵게 따낸 예산으로 아름다운 호수 공원을 만들어 도시의 매력을 더한다.

그런데 양양이 매력 도시가 되는 데는 이들의 역할이 전혀 없었다. 파도의 아름다움을 보고 정착한 사람들이 매력적인 가게를 만들자 사람들이 몰려오고 주민들이 늘었다.

도로를 정비하고 다리를 놓고 아파트를 짓고 상가를 건설해 대한민국 서핑 성지가 된 것이 아니라 7번 국도에 점점이 들어선 독특한 서핑 숍, 로스터리 카페, 게스트 하우스 덕분에 양양이 매력 도시로 다시 태어났다.

도시에 매력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이런 사람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이들이 자신의 삶의 방식에 적합한 도시를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자신의 욕구와 행복을 직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도시를 찾는 사람들….

이들은 대부분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지식을 축적했고 독특한 전문성을 확보했다. 서핑·음식·커피·음악·책·제빵·게스트 하우스 운영 같은 일들이 그것이다. 모험심 넘치는 ‘매력인(人)’들은 하나의 도시에 발이 묶여 살아갈 이유가 없다. 스스로 축적한 시간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맞는 마을과 도시를 찾아 가게와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지방 소멸의 위기를 기회로

매력인들의 둘째 특징은 자신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일에 능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좋다. 특히 디자인·인테리어·패션 같은 시각적 흥미 요소를 통해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세련된 간판을 내걸고 독특한 공간을 꾸미고 개성 있는 친구들을 초대해 멋지게 먹고 마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의 적극적인 자기표현과 세련된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지역 소도시까지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만드는 영향력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누가 매력 도시 현상에 주목해야 할까. 대도시 삶의 대안을 찾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 대상이다. 평균수명의 증가는 우리에게 인생 후반전을 생각해 볼 여유를 줬다. 자녀 교육과 돈벌이라는 전반전의 숙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면 당신은 여유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나서고 싶어질 것이다.

서울과 소도시를 오가며 양쪽 삶의 즐거움을 동시에 누리고 싶은 사람도 있다. ‘어떤 도시가 내 삶의 방식과 맞을까.’ 대한민국 지도를 (혹은 세계 지도를) 펴놓고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공간을 파는 사업가들 또한 주목해야 한다. 획일적인 아파트를 반복 생산하던 건설사, 비슷비슷 쇼핑몰을 도시마다 복제하던 디벨로퍼, 백화점·편의점·프랜차이즈 가게….

이들이 대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이 대규모 물량, 집단 소비, 빠른 속도를 발판으로 삼아 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사람 수가 줄어들고 움직임의 속도가 느려지는 시대에 맞닥뜨렸다. 기존의 아파트·사무실·상가의 개발 공식은 매력인들과 매력 도시에 들어맞지 않는다. ‘양’, ‘집단’, ‘속도’가 주도하던 시대에서 ‘질’, ‘개별’, ‘지속’의 매력이 눈길을 끄는 시대로 옮겨 가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도시들이 다채로운 매력을 펼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인구 감소, 고령화, 소득 저하의 난제에 빠진 지방도시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대한민국의 몇몇 소도시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다.

지방 분권, 균형 발전, 지역 재생의 거대한 선언이 채 풀지 못한 실질적 삶의 문제를 소수의 매력적인 사람들이 그리고 그들이 만든 매력적인 공간이 답을 내고 있다.

조성익 매력도시연구소 대표·홍익대 건축대학 교수

[커버스토리 '지방 소도시 부활 프로젝트 : 매력도시를 찾아라' 기사 인덱스]
-매력, 쇠락한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다
-['매력도시'를 찾아라 ①] 서퍼들이 만든 라이프스타일 도시 ‘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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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 있는 소도시의 시대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