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기업가 정신이 희망이다] 3부 100년 기업을 키우자
-차등주 도입 기업, 미도입 기업에 비해 경영실적·주주이익 크게 앞서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우리는 구글의 혁신 능력을 지킬 수 있는 기업 지배구조를 선택했습니다. 외부에서는 단기적 성과를 위해 장기적 성과를 희생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기적 사업 성과를 희생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주주에게 이익이 된다면 그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가 2004년 구글을 나스닥에 상장할 당시 주주들에게 보낸 서신의 일부분이다. 혁신 성장을 위해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며 주당 10배의 의결권이 있는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차등의결권은 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창업자 등 일부 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제도다. 미국·일본·영국·프랑스 등에서 도입해 시행 중이다.

◆구글, 차등의결권 도입 이후 초고속 성장

구글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차등의결권 주식을 통해 구글 지분의 63.5%를 확보할 수 있었다.

구글은 이후 안정적인 경영권을 바탕으로 무인 자동차 등 미래 성장에 가치를 둔 투자를 지속했다. 그 결과 2004년 대비 2016년 구글의 매출은 32억 달러에서 903억 달러로 28배 증가했다. 고용도 3000명에서 6만 명으로 20배 늘었다.

반면 차등의결권을 도입하지 않아 곤욕을 치른 사례도 있다. 애플이 대표적이다. 애플은 과거 그린라이트캐피털이라는 헤지펀드로부터 1371억 달러(약 150조원)를 배당하라는 압력을 받은 바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에 따르면 차등의결권은 구글을 비롯해 페이스북·링크트인 등 최근 급성장하는 기업이 앞다퉈 도입하는 제도다. 안정적인 장기 투자와 헤지펀드에 의한 공격을 방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과거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 등도 차등의결권을 도입했다. 글로벌 전자 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기 위해 2014년 9월 홍콩증권거래소 대신 뉴욕증권거래소를 선택했다.

차등의결권을 가진 글로벌 기업들의 주주 이익이 미보유 기업보다 높고 경영 실적도 크게 앞선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한경연은 시가총액 기준 글로벌 100대 기업 중 비금융 기업 78곳을 대상으로 최근 10년간 경영 성과를 비교한 결과 차등의결권을 보유한 10곳이 미보유 기업 68곳보다 경영지표 증가율이 더 높다고 분석했다.

분석 대상이 된 차등의결권 보유 기업은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과 페이스북·알리바바·도요타 등이다. 차등의결권 미보유 기업은 애플·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텐센트 등이다.
“벤처·대기업 모두 차등의결권 허용해야”
한경연에 따르면 차등의결권을 보유한 기업의 2018년 총매출은 2008년보다 44.1% 증가한 반면 미보유 기업의 증가율은 27.0%에 그쳤다. 같은 기간 연구·개발(R&D) 투자 증가율은 보유 기업이 358.4%로 미보유 기업(92.5%)의 약 4배 수준이었다.

당기순이익 증가율 또한 보유 기업이 155.8%로 미보유 기업(48.5%)보다 3배 이상 높았고 부채비율 증가율은 20.7%로 미보유 기업(178.0%)보다 현저히 낮아 수익성과 안정성 측면에서도 우월한 경영 실적을 보였다.

특히 차등의결권이 주주 권익을 훼손한다는 일부 주장과 달리 차등의결권 보유 기업의 주주들은 미보유 기업 주주보다 더 많은 배당 수익과 주당 이익 증가율을 거두는 등 주주 권익 측면에서도 앞선 것으로 분석됐다.

한경연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배당금 증가율은 보유 기업이 118.4%로 미보유 기업(55.4%)의 2배였고 보통주로 전환될 수 있는 주식을 포함한 희석주당이익 증가율 또한 보유 기업(287.1%)이 미보유 기업(142.7%)의 2배 수준이었다.

유환익 한경연 정책본부장은 “차등의결권을 보유한 기업들은 경영권과 지배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투자 결정을 과감하게 내릴 수 있었고 그 결과는 지난 10년간의 경영 성과로 입증됐다”며 “차등의결권 보유 기업들의 경영 성과와 수익이 높기 때문에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관련 기업의 주식을 매입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기업 경영권 방어 수단 절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도 창업벤처기업 차등의결권 도입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어 주목된다. 하지만 여야 간 온도차가 여전해 진통도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8월 최운열 의원이 발의한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을 중심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지난해 10월 밝혔다. 벤처기업에 한해 주당 2~10개의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허용하자는 게 핵심이다.

반면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 등으로부터 경영권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대기업에도 차등의결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권 방어책은 상법 개정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 정책본부장은 “차등의결권은 그동안 경영진에 의한 남용 가능성 등을 이유로 도입 논의 자체가 미뤄져 왔지만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 신산업 발굴 등을 돕는 장점이 많은 제도라는 것에는 여야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며 “차등의결권이 ‘1주 1의결권’ 원칙을 훼손하고 대주주나 창업자의 지배권을 보호해 주는 수단이라는 비판의 견해도 있지만 벤처기업이나 대기업 모두 취약한 기업 지배구조의 틈을 파고드는 헤지펀드의 공격에 대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 부족한 게 현실인 만큼 전반적으로 확대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은 물론 포이즌 필 도입 등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벤처·대기업 모두 차등의결권 허용해야”
choi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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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7호(2019.03.25 ~ 2019.03.3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