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1269호 (2020년 03월 25일)

세계 경제 호령하는 G2의 비결은…‘네거티브 규제’

[커버스토리 = 대한민국 신성장 전략 특별기획]
[“‘포스트 코로나’의 해법은 혁신과 규제개혁”…기업 활력을 추스르자]
- 법인세 깎아주는 미국·‘전략적 방치’ 채택한 중국·외국 기업 쫓아내는 한국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시에서 상용화를 시작한 웨이모의 자율주행 택시./ 웨이모 제공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미국 49.3%, 중국 23.5%, 한국 2.6%.

설립 10년 이하에 기업 가치 10억 달러(1조원) 이상인 비상장 기업(유니콘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별 비율(2019년 말 기준)이다. 유니콘 기업은 전 세계에 총 430개가 있는데 세계 경제 강국인 미국(212개)과 중국(101개)이 70% 이상을 보유했다.

이에 반해 한국은 11개로 초라한 수준이다. 이마저도 지난해 말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서비스 업체 ‘우아한형제들’이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인수·합병(M&A)됐으니 10개로 줄었다. 그렇다고 올해 한국의 새로운 유니콘 기업의 탄생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한국의 창업률이 15%로 평균인 10.2%보다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창업 5년 후 생존율이 30%로 미국(47%)이나 유럽연합(EU) 주요국 평균(44.9%) 대비 매우 낮기 때문이다. 이는 창업 기업의 70% 정도가 5년 내 실패한다는 것을 뜻한다.

기업인들은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겹겹이 둘러쳐진 산업별 규제라고 지적한다. 사업 아이디어 실현을 막는 법이나 제도적 환경을 비롯해 차등의결권 불허와 같은 규제로 창업자의 경영권을 보장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 규제 풀자 혁신 기업 속출



유독 미국과 중국에서 유니콘 기업들이 탄생하고 있는 비결은 기업 친화적인 규제 덕분이다. 두 나라 모두 신기술 도입에 우호적인 규제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미국은 불법으로 규정한 것 외에는 모두 자유롭게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따른다.

‘허가된 것만 할 수 있다’는 ‘포지티브 규제’를 펴는 한국과 정반대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율주행차, 차량 공유와 같은 모빌리티 사업이다.

한국은 각종 규제를 통해 ‘타다금지법’, ‘우버 진입 금지’ 등의 논란을 낳고 있는 반면 미국 일부 주에서는 이미 돈을 받고 고객을 태우는 자율주행 택시 사업이 시작됐다.

애리조나를 비롯한 미국 주 정부들은 자율주행차가 3년 이상 기존 자동차 안전 기준을 적용받지 않고 운행할 수 있도록 했다. 보험사들은 대부분 시스템 결함에 따른 배상을 보장하는 자율주행차 전용 보험 상품을 출시한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계 각국의 자동차 기업들이 미국에 모이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에 회사를 설립하고 차량 공유, 자율주행 등 미래 모빌리티 서비스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 중이다.

미국에서는 원격 의료도 10년 전부터 상용화됐다. 의료계의 반발로 질환 관련 유전자 검사 자체를 막고 원격 의료도 불가능한 한국 규제와는 딴판이다. 감세 정책으로 대표되는 친기업 정책은 네거티브 규제 원칙과 만나면서 혁신 기업에 날개를 달아 줬다.

트럼프 정부는 법인세 최고 세율을 35%에서 21%로 내려주고 해외에 보유하고 있던 현금을 본국에 송금할 때 내야 하는 세율도 35%에서 8~15.5%로 깎아 줬다.

세율이 낮아지자 기업들이 해외에서 미국 본토로 보낸 현금은 2018년에만 6650억 달러(약 771조원)에 달했다. 전년(1551억 달러)의 4배 이상이다.

중국은 시장 논리에 맡기는 무(無)규제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효과가 상당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중국 최대 차량 공유 서비스 기업 디디추싱에서 찾을 수 있다. 2014년 차량 호출 앱 서비스를 시작한 이 기업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승객 감소를 우려한 택시 운전사의 반발과 마주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개입하지 않았다. 택시와 디디추싱 고객층이 다를 것이라고 판단했고 디디추싱이 활성화되면 베이징의 택시 부족 문제도 해결되는 효과를 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은 디디추싱이 급성장하며 창립 2년 만에 미국 우버 중국법인을 인수한데 이어 최근엔 동남아시아와 인도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디디추싱의 기업 가치는 560억 달러(약 63조4000억원) 수준으로 우버(699억 달러)와 비슷하다.

이처럼 중국은 발전 가능성이 큰 신산업은 일부 부작용이 있더라도 전략적으로 방치한다. 그 대신 많은 기업을 참여시켜 경쟁을 유도한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정부의 파격적인 무규제 정책이 중국 혁신 기업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분석했다.

유니콘 기업 18개를 품고 있는 인도는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혁신적인 지원 정책을 쏟아내고 있고 규제에 대해선 기업 자율에 맡기고 있다.

인도 스타트업 정책의 골자인 ‘스타트업 인디아’는 스타트업에 대한 자금 지원과 인센티브 정책, 산학 연계 및 초기 육성, 창업 절차 간소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스타트업의 노동·환경 규제 준수 의무를 ‘자기 신고제’로 운영하고 있다. 인도의 정보기술(IT) 산업 경쟁력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스타트업들도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반해 한국은 꽉 막힌 규제 정책으로 들어오려는 외국 기업도 쫓아내고 있다. 지난해 벨기에에 본사를 두고 있는 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특수 소재 분야 세계 1위 기업인 솔베이는 한국 투자를 포기하고 싱가포르 투자를 결정했다.

솔베이는 2016년 한국 새만금 공장에 1200억원을 투자하는 등 한국 투자에 적극적이었던 기업이었다. 솔베이가 한국 투자를 포기한 결정적인 이유는 최근 강화된 화학 물질 관련 규제와 주52시간 근무제, 외국 기업 조세 감면 폐지 등의 요인 때문이다.

◆ 인도·동남아도 규제 아닌 ‘혜택’ 부여



이에 반해 싱가포르나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외국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오히려 파격적인 혜택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그나마 있던 혜택도 폐지하고 다양한 규제로 스스로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외국 기업이 힘들어 하는 한국의 기업 환경은 △화학 물질 관리(R&D용 화학 물질에 신규 성분이 있으면 신고 관리 대상 물질 1940종, 지방 환경청마다 다른 신고 절차) △이중 부담(해외에서 차 탄소 배출량 기준 통과해도 한국에서 재검) △주52시간 근무제(예외 인정하지 않는 엄격한 적용) △소통 부족(기업 관련 규제 도입 때 외국 기업과 사전 협의 부족) △투자 유인책 부족(외투법상 조세 감면 혜택 작년 말 폐지) △임금 부담(생산성은 선진국의 60% 수준인데 임금은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 등이 있다.

이런 규제의 영향으로 최근 5년간 이어져 오던 외국인 직접 투자(FDI)도 결국 지난해 고꾸라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FDI 동향을 집계한 결과 지난해 신고 기준 233억 달러, 도착 기준 128억 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13.3%, 26% 감소한 것이다.

cwy@hankyung.com

[커버스토리 = 대한민국 신성장 전략 특별기획 기사 인덱스]
① ‘규제 개혁’ 없으면 성장 엔진 멈춘다
- 세계 경제 호령하는 G2의 비결은…‘네거티브 규제’
- ‘말로만 규제 완화’ 언제까지…늘어나는 규제에 속 터지는 기업들
- 조봉현 IBK경제연구소장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려면 미국‧유럽 등 다른 국가와 규제 수준 맞춰야”
- 김영준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코로나19 이후의 경기 반등, 우리가 먼저 올라타야”
② 기업 발목 잡는 지뢰밭 규제 걷어 내자
- 신산업 발전 가로막는 촘촘한 ‘규제 트리’ 뽑아내야
- 화평법‧화관법‧미세먼지법…대처에 인력도 시간도 부족하다
- 실적 곤두박질치는 유통 기업에도 여전한 ‘출점 규제‧의무휴업’
- 덩치 커진 한국 금융…규제 완화로 ‘서비스 전환’ 이룰 때
- 꽉 막힌 의료 규제에 중국‧일본으로 가는 SK‧네이버
- ‘일하지 않고 성장이 가능할까’ 기업도 노동자도 우는 노동 규제
- ‘도대체 왜 기업해야 합니까?’ 규제에 꺽인 기업가 정신
③ 다시 뛰는 한국 기업들
- 삼성그룹, 초격차 전략으로 ‘포스트 코로나’ 대비…반도체 등 기술 리더십 선점
- 현대차그룹, 미래 모빌리티 시장 선점 목표…‘기술 개발’에 61조 올인
- SK그룹, ‘사회적 가치’를 미래 경영의 줌심에…신소재‧AI 등에서 신성장 동력 찾기
- LG그룹,  ‘뉴 LG’ 플랜 가동, AI 선점하고 디지털 전환 속도 낸다
- 롯데그룹, ‘과거처럼 하면 망한다’…전 사업부문 ‘새판짜기’ 돌입
- 포스코, 한국 철강 산업의 자존심, 고부가가치 WTP 제품 앞세워 위기 정면 돌파
- 한화그룹, 10년의 도약 이끌 ‘한화솔루션’ 출범…화학‧소재‧태양광 통합
- 신세계그룹, 이마트 점포 30% 이상 리뉴얼…‘매장 혁신’에 사활 건다
- CJ그룹, ‘한류 열풍’ 이끌며 ‘글로벌 생활문화 기업’으로 도약한다
- 두산그룹, 대변신 시작한 ‘100년 기업’ 중공업 넘어 디지털 기업으로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9호(2020.03.23 ~ 2020.03.2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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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20-03-2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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