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반갑다, 집콕 식품업계 ‘왕좌의 게임’]
-코로나19로 식품 수요 급증
-맥주·라면·커피·김치 등 품목별 점유율 변화 주목
‘집밥 열풍’에 호황 맞은 식품업…1등 노리고 벌어지는 ‘왕좌의 게임’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올해 초만 해도 국내 식품업계의 전망은 그리 밝은 편이 아니었다.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심리 악화, 업체 간 경쟁 심화, 인구 감소 등으로 인해 힘겨운 2020년이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 이런 전망을 단숨에 뒤엎고 말았다. 2월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확산세를 보이기 시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사재기 열풍’이 일어난 해외 국가들만큼은 아니었지만 국내에서도 식품 수요가 증가했다. 또 감염 우려에 따라 외식을 즐기지 못하게 되면서 나타난 ‘집밥 열풍’으로 식품업계는 올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호황을 맞았다.

◆ 식품업계 “2분기 실적 더 좋아질 것”


1분기 실적이 이를 잘 말해준다. ‘위기’라는 단어가 나올 만큼 전반적으로 저조한 성적표를 내놓았지만 주요 식품업체는 예외였다. ‘코로나19 특수’를 톡톡히 누리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기업들이 여러 곳이다. CJ제일제당·농심·풀무원 등이 대표적이다.

식품업계가 호실적을 기록 중인 주된 요인으로는 재택근무와 외출 자제에 따른 식품 수요의 급격한 증가를 꼽을 수 있다. 기존의 외식 수요를 식품 시장이 고스란히 가져가 버린 셈이다.

직장인들만 보더라도 주로 저녁 한 끼만을 집에서 먹거나 모두 밖에서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들이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집에서 모든 끼니를 해결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매번 식사를 직접 요리해 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예상보다 길어지는 만큼 하루 한 번 정도는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려는 이들이 많아졌다”며 “그동안 라면·냉동식품·가정간편식(HMR) 등을 멀리하던 소비자들이 새로운 수요층으로 진입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집밥 열풍’에 호황 맞은 식품업…1등 노리고 벌어지는 ‘왕좌의 게임’
비상시 먹기 위해 집 내부에 식품을 쌓아 놓은 이들이 늘어난 것도 전체적인 실적 개선에 한몫했다는 평가다. 한국의 오프라인 점포에서 우려했던 식품 사재기는 없었지만 쿠팡과 같은 이커머스 등에서 평소보다 배송이 지연되는 것으로 볼 때 온라인 식품 구매가 급증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향후 기대감도 크다. 특히 코로나19의 영향이 제한적으로 반영된 1분기와 달리 4~6월까지 실적을 집계하는 2분기엔 실적 증가 폭이 더 뚜렷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제는 ‘부정적’보다 ‘긍정적’인 시각이 더 우세하다. 이번 코로나19를 계기로 향후 ‘집밥’이 당분간 새로운 ‘식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예상이 현실화한다면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식품업계의 성장세가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더 다양해지는 소비자 니즈 잡아야”

주요 식품 기업도 코로나19가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계기가 될 것으로 여긴다. 식품 소비 수요가 급증하는 만큼 지금 얼마나 많은 신규 충성 고객을 확보하느냐가 향후 업계의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업계는 소비자 성향이 점차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과거엔 한 시장에서 특정 기업과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가 뚜렷했다. 하지만 최근 이런 모습이 서서히 약해지는 경향을 보여 왔는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이런 변화가 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춘추전국시대’라는 말이 나올 만큼 다양한 제품을 소비자들이 맛보기 원하고 여기에 부합하는 수많은 상품들이 마트에 존재한다”며 “코로나19로 거세진 집밥 트렌드는 이런 소비자 니즈를 더욱 세분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새롭게 등장하는 소비자 니즈를 얼마나 빨리 파악해 여기에 맞는 신제품을 출시하고 마케팅을 펼치느냐가 개별 시장 판도를 좌우하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중에서도 유독 판세 변화가 주목되는 품목들이 있다. 전통의 라이벌 기업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맥주 시장이 대표적이다. 그간 오비맥주가 ‘카스’를 앞세워 압도적인 점유율 1위를 지켜 왔다. 하지만 지난해 경쟁사인 하이트진로가 ‘테라’ 돌풍을 일으키면서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집밥 열풍’에 호황 맞은 식품업…1등 노리고 벌어지는 ‘왕좌의 게임’
라면 시장의 상황도 비슷하다. 신라면을 앞세운 농심의 아성에 오뚜기가 다양한 신제품을 앞세워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도전 중이다.

‘즉석 음료(RTD·Ready To Drink) 커피’ 시장은 1위와 2위 업체 간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으로 꼽힌다. 선두를 달리는 롯데칠성음료와 2등인 동서식품의 점유율이 불과 3%포인트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올해는 그 격차가 더욱 좁혀지는 것으로 예상된다.

냉동식품·죽·김치 시장은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업체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며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만두와 피자 등이 포함되는 냉동식품 시장은 CJ제일제당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는 가운데 후발 주자라고 할 수 있는 풀무원이 경쟁사들을 잇달아 제치고 지난해 2위까지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동원과 대상이 각각 평정해 왔던 죽과 김치 시장에서는 CJ제일제당의 추격이 도드라진다. 오랜 기간 독주 체제였던 두 시장에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 CJ제일제당은 어느덧 1위 자리를 넘볼 정도로 성장했다.

현재 각각의 시장에서 1위 업체는 시장 지배자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방안을, 2위 업체는 선두 탈환을 위한 목표를 수립하며 총성 없는 전쟁을 펼치고 있다. 식품 호황기를 맞아 올 한 해는 그 어느 해보다 경쟁 구도가 뜨거울 것으로 예상된다.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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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8호(2020.05.23 ~ 2020.05.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