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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택이 또다시 위기에 빠졌다. “목숨 걸고 최대 2000억 원의 자금을 유치하도록 하겠습니다.” 박병엽 팬택 부회장은 3월 28일 김포 공장에서 열린 주주총회 자리에서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숨을 걸고”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팬택의 경영 사정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난해 776억 원의 영업 적자를 냈다. 2007년 1254억 원의 적자를 기록한 후 5년 만의 적자다. 매출액도 2조2344억 원에 불과하다. 전년(2조9820억 원) 대비 25.79% 감소했다.
스카이는 3일 서울 상암동 본사에서 미디어데이 행사를 갖고 LTE 스마트폰 '베가 레이서2'를 공개했다. 박병엽 팬택부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 20120503..
스카이는 3일 서울 상암동 본사에서 미디어데이 행사를 갖고 LTE 스마트폰 '베가 레이서2'를 공개했다. 박병엽 팬택부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 20120503..
시장 환경은 더 악화되고 있다. 국내 휴대전화 시장은 포화 상태다. 지난해 12월 기준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5360만 명이다. 세계시장도 마찬가지다. 유엔 산하 전기·통신 전문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올해 말까지 세계 전체의 휴대전화 보급률이 96%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선진국은 보급률이 1인당 1.28대 수준인 128%까지 늘어나고 개도국의 보급률도 89%까지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경쟁은 점점 격화되고 있다. 신형 스마트폰의 출시 시기가 단축되고 있다. 삼성전자나 애플은 매년 1회 이상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시장의 관심을 크게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시장을 리드하려면 경쟁력 있는 단말기 출시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연구·개발(R&D)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R&D 인력에서 팬택은 삼성전자나 LG전자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R&D 인력은 5만5000여 명이다. 이 중 2만여 명이 모바일 관련 인력으로 알려져 있다. LG전자의 R&D 인력은 1만6900여 명이다. 이 가운데 6000여 명이 모바일 연구진이다. 팬택의 R&D 인력은 160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연구·개발비도 차이가 크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지난해 R&D 투자비는 각각 11조8924억 원, 2조2067억 원이다. 팬택은 2626억 원을 지출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반도체·TV 등의 연구·개발비가 포함된 숫자다. 그렇다고 해도 대적이 되지 않는다.

낮은 브랜드 인지도도 넘어야 할 산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품의 상향 평준화가 이뤄지면서 브랜드 인지도에서 승부가 갈리고 있다”며 “팬택은 포화 상태인 국내시장에서 벗어나 해외시장에서 발판을 마련해야 하는데 브랜드 인지도가 너무 낮다”고 꼬집었다. 마케팅 비용을 풍족하게 쓸 수 없는 팬택으로서는 해외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2013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팬택이 갖고 있는 현금성 자산은 562억 원에 지나지 않는다.
[팬택이  2000억 원 자금 유치에 목숨 건 까닭] 적자 전환에 휘청…‘ 투자만이 살길’
이에 따라 자금 마련이 핵심 과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 기업답게 자금 여력이 풍부한 편이다. LG전자도 TV나 가전 등 다른 사업이 호조를 보이고 있는 데다 그룹의 ‘덩치’가 있어 재무적인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상태다. 스마트폰 전문 업체인 팬택은 과열된 시장에서 자칫 단기 운영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박 부회장이 “목숨을 걸고 자금을 유치하겠다”고 공언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팬택은 저력 있는 기업이다. 지난 20년간 수많은 고비를 넘겨 왔다. 박 부회장은 1991년 창업해 불과 10년 만에 휴대전화에서 매출 1조 원을 돌파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다가 2007년 4월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자금난에 봉착하며 워크아웃에 들어갔다가 2011년 졸업했다.

야심작 베가레이서가 100만 대를 돌파하며 국내시장에서 LG전자를 밀어내고 한때 2위 자리에까지 오른 저력도 갖고 있다. 이처럼 팬택은 위기를 도전의 기회로 삼아 성공한 DNA를 갖고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팬택이 이번에도 위기 극복에 성공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