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인류 화석 40년 뒤 가짜로 판명…세계적 학술지도 번번이 속는 이유 뭘까

[테크 트렌드] 과학계 뒤흔든 세기의 조작 사건들
고위 공직자 인사 청문회 때 후보를 검증하는 주요 목록에는 병역·부동산 등과 함께 논문 표절이 포함된다. 이뿐만 아니라 논문 대필과 가로채기 등 연구 윤리 부정과 관련된 사안은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단골 메뉴다. 연구자들이 양심을 파는 연구 윤리 부정의 최고봉에는 논문 조작이 있다. 물론 논문 조작의 이면에는 너무나도 치열한 경쟁, 성과에 대한 끊임없는 압박, 특히 남들보다 일찍 더욱 훌륭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심리적 무게감, 대중의 과학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를 틈타 전문성으로 포장할 수 있는 환경 등 다양한 요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조작하는 행위는 그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부정행위다. 특히 과학기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최초의 이론과 제품 등을 내놓는 현장이므로 연구자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바탕에 놓이지 않으면 큰 혼란과 비효율을 불러올 수 있다. 모든 연구자들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정직한 결과를 내놓는다는 신뢰가 있지 않다면 발표되는 모든 논문과 성과를 검증해야 하므로 검증을 위한 시간적·금전적 낭비를 피할 수 없다. 특히 검증 과정 때문에 성과 발표와 공유가 늦어져 과학기술의 발전이 더뎌지는 것은 더 큰 사회적 손실이다.


세포 논문 스캔들…박사 3년 차가 조작
가장 최근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작 사건은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에서 벌어진 스태프(STAP) 세포 논문 조작이다. STAP 세포는 굳이 번역하자면 자극 촉발에 의한 다분화능 획득 세포인데, RIKEN 연구팀이 산성 용액으로 자극을 줬더니 갓 태어난 쥐의 세포가 분화 이전의 초기 세포 상태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는 쥐의 세포가 여러 기능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다분화능을 획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복잡한 과정 없이 산성 용액에 살짝 담갔다가 빼는 것만으로 줄기세포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주장이었다. 특히 이 연구는 박사 학위를 취득한 지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젊은 여성 과학자가 주도한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이후 과정에서 밝혀진 그녀의 연구 부정행위는 비단 이번 연구 성과뿐만 아니라 박사 학위 논문에까지 퍼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0대 초반의 오보카타 하루코 박사는 과학자가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고 연구 현장에서 영원히 퇴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보카타 박사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한 일본 와세다대에서 오보카타 박사의 학위 논문에 문제점이 있기는 했지만 학위 취소 규정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방침을 최근 밝히긴 했지만 그녀의 호칭에 더 이상 박사가 붙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고 있다. 특히 와세다대에서 학위 취소 결정을 내린다면 결국 화살은 부실한 와세다대의 학위 수여 과정을 향할 것이므로 와세다대의 결정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보카타 박사의 연구 조작은 재현성 부족으로 밝혀졌다. 세계 최초로 발표되는 연구 성과들은 동일한 환경 속에서 다른 학자들에 의해서도 동일하게 재현될 수 있어야 비로소 학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 STAP 세포 역시 논문 발표 이후 여러 연구 그룹에서 재현 실험을 했지만 성공한 곳은 하나도 없었다. 논문의 진실성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자 RIKEN 연구그룹은 STAP 세포를 만들기 위한 자세한 방법을 공개했는데 단지 용액에 담그는 것만으로 세포 제작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던 최초의 논문과 달리 좀 더 복잡하고 많은 제약 조건이 포함돼 있었다. 이후 논문에 게재된 사진이 조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등 진실성 공방이 확산되자 RIKEN은 논문의 진실성을 담보할 수 없는 조작으로 판단되므로 논문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오보카타 박사는 이 발표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2005년 한국에서 벌어진 소위 황우석 박사의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두 사건 모두 줄기세포와 연결돼 있다는 점, 서울대와 이화학연구소라는 굴지의 기관이 연관돼 있고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이 조작으로 밝혀졌다는 점 등의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오보카타 박사는 기자회견에서 STAP 세포는 있다고 외쳤고 황우석 박사는 우리에겐 원천 기술이 있다고 말했다는 점에서도 유사성을 갖고 있다.

황우석 박사 사태 때도 대중이 가졌던 의문이 네이처나 사이언스와 같은 학술지에서 사전에 조작된 논문을 미처 걸러내지 못했느냐는 것이었다. 학술지의 논문 심사는 동료 학자들의 심사에 의해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심사자들은 논문 결과에 대한 진실성은 의심하지 않는다. 만약 이에 대한 검증까지 논문 심사 과정에서 이뤄진다면 심사에 너무나 많은 시간과 자원이 요구되므로 이를 논문 출판 이후 재현 실험 및 후속 연구에 맡기고 있다(즉 논문 발표만으로 이것이 학계의 정설이라고 확정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도 된다. 하나의 이슈에 대해 서로 반대되는 관점의 논문이 앞다퉈 발표되며 학계의 토론을 이끌어 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작정하고 속이려 드는 연구자를 논문 심사 과정에서는 걸러낼 수 없고 이 때문에 연구자들에게는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높은 수준의 연구 윤리와 직업의식이 요구된다.


진실성을 전제로 논문 심사
한국에서는 황우석 사건에 대한 기억과 사회적 여파가 워낙 강렬하지만 동서고금의 역사를 살펴보면 학계에 더욱 큰 충격을 준 조작 사건들을 여럿 찾을 수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필트다운인’ 화석 조작 사건이다. 1912년 찰스 도슨이라는 학자가 영국에서 발견한 인류의 화석을 발표했다. 이는 현생인류 이전의 화석으로 특히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밝혀지지 않고 있던 진화의 연결 고리를 찾았다는 점에서 학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왔다. 최초 발견 지역의 이름을 따서 필트다운인으로 명명된 이 화석은 곧바로 1913년 네이처에 유골이 조작됐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이 발표되고 다른 학자들의 유사한 의견이 끊임없이 제시됐다. 하지만 1915년 도슨은 최초 발견지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둘째 필트다운인의 유골을 발견하면서 ‘필트다운인’은 1950년대까지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져 왔다.

중세 시대 인간의 머리뼈, 수백 년 전에 살았던 오랑우탄의 아래턱뼈, 침팬지의 치아 화석을 교묘하게 합친 것으로 밝혀진 필트다운인은 오래된 뼈로 보이기 위해 산화철로 색을 입혔으며 치아를 갈아내 침팬지의 치아가 아니라 인간의 치아처럼 보이도록 하는 등 치밀하게 조작했다. 이 조작 사건은 1940년대 불소를 이용한 연대 측정법이 발견되면서 유골이 겨우 수백 년 전의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비로소 조작이라는 학계의 공인을 받게 됐다. 필트다운인을 조작한 범인이 누구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최초 발견자인 찰스 도슨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짐작되지만 이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관여됐을 것이라는 정황들이 있다.

수십 년간 정설로 받아들여진 덕분에 필트다운인은 법정에서 진화론의 증거로 제시된 적도 있었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된 화석이 ‘네브래스카인’이라는 원시인류로 여겨지는 오류가 생기기도 했다. 필트다운인의 발견을 바탕으로 유럽인들이 다른 지역보다 먼저 진화했다는 주장이 대두되기도 했고 나아가 유럽 대륙에 비해 결코 영국이 뒤처지지 않았다는 만족감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특히 자바원인·베이징원인 등 다양한 인류의 조상이라고 여겨지는 화석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면서 국가와 민족 간의 ‘우리가 인류 문명의 기원’이라는 오묘한 자존심 경쟁이 벌어져 필트다운인이 가졌던 (과학적 가치가 아닌) 사회적 가치가 더욱 주목 받았던 것이다.

과학의 역사에 필트다운인은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초의 발견 지역이라고 주장되던 곳에는 발견 이후 이를 기념해 이름을 바꾼 필트다운인 술집이 여전히 성업 중이라고 한다. 필트다운인과 관련된 자료도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더 이상 이런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공학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