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경품 제공 5000원이 한계로 ‘정품’ 사실상 불가능…“제도 보완해야”
‘짝퉁 캐릭터’ 유통창구 된 뽑기방
(사진)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이용해 '#뽑기'를 검색하자 다양한 키워드가 등장했다.

[한경비즈니스=김영은 인턴기자] 최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오프라인에서 가장 뜨거운 취미로 부상한 것은 바로 ‘인형뽑기’다. 어린아이의 전유물이라고 생각됐던 인형을 뽑기 위해 대학생·직장인·연인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뽑기방으로 모인다.

온라인에서도 인형뽑기에 대한 관심이 이어진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이용해 ‘#뽑기’를 검색하자 11만1547개의 게시물이 나왔다. 그 뒤를 이어 ‘#뽑기왕’, ‘#뽑기중독’ 등 관련 해시태그가 끊임없이 등장해 뽑기방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뽑기방, ‘공식적’으로만 1160곳 달해
‘짝퉁 캐릭터’ 유통창구 된 뽑기방
(사진) 2월 1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인형뽑기방에서 시민이 인형 뽑기를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형뽑기방은 최근 대학가 및 시내 중심가에서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15년 21곳에 불과했던 인형뽑기방은 지난해 8월 147곳으로 늘었고 올해 1월 1160곳 이상으로 급증했다.

이 통계는 상호에 ‘뽑기’가 들어간 것만 따진 것이므로 실제 뽑기방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뽑기방에서 유통되는 인형 대부분은 정품이 아닌 모조품, 이른바 ‘짝퉁’이다. 인형뽑기방이 성행하면서 자연스레 ‘짝퉁 인형’도 증가하고 있다.

대부분의 뽑기방 주인들이 마진을 확보하기 위해 정품보다 짝퉁을 활용하는 것이다. 뽑기방 인형은 대부분이 중국산 제품이기 때문에 원가는 1000원 이하 수준이다.

상품으로 쓰이는 불법 복제 ‘짝퉁 인형’은 저작권법에 위반된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캐릭터를 도용한 것은 복제권 침해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 유통 경로가 올바르지 않은 짝퉁 인형은 유해 물질에 대한 안전성 검사가 이뤄지지 않아 중금속·환경호르몬 등 유해 성분도 다량 검출되고 있다.

정품 인형으로 이를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현행 게임산업진흥법에 따르면 인형뽑기 경품의 상한선은 5000원으로 제한된다. 하지만 정품 인형은 30~35cm 크기의 인형이 2만~3만원대다.

정품을 쓰면 비싼 원가에 더해 게임산업진흥법을 위반하는 것이고 짝퉁을 쓰면 저렴하지만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업주들은 게임산업진흥법도 지키면서 원가도 저렴한 짝퉁 인형을 사용한다.

규제를 실시하고 있는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일일이 진품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있고 저작권보호원 측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검찰·경찰·특허청·관세청 등 유관 기관과의 합동 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단속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뽑기방에서 유통되는 국산 캐릭터뿐만 아니라 포켓몬스터·무민·에비츄 등 해외 캐릭터 제품도 대부분이 짝퉁이다. 하지만 이용객은 정품 여부에 관심이 없다.

대학생 황모(23·여) 씨는 “인형 뽑기를 하면서 인형을 모으는 게 취미”라고 말하면서도 “정품과 거의 똑같은 인형을 더 저렴한 가격에 뽑을 수 있어 오히려 이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31·남) 씨도 “인형뽑기를 할 때 인형의 정품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며 “인형뽑기의 목적은 인형이 아니라 뽑는 과정에서 느끼는 재미와 쾌감”이라고 말했다.

◆ 불법 캐릭터 피해액 3조~4조 추산
‘짝퉁 캐릭터’ 유통창구 된 뽑기방
(사진) 지난해 11월 특허청과 문화체육관광부의 짝퉁 캐릭터 합동 단속에서 압수된 카카오프렌즈 짝퉁 인형. /특허청 제공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6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캐릭터 산업의 전체 매출액은 10조원을 넘어섰다. 커지는 캐릭터 시장에도 불구하고 ‘짝퉁이라도 상관없다’는 소비자 반응에 캐릭터 산업 관계자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1세대 국산 캐릭터인 ‘마시마로’, ‘뿌까’처럼 종류를 가리지 않는 짝퉁 공세에 밀려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0년대 시대를 풍미한 ‘마시마로’ 캐릭터는 짝퉁 제품 때문에 10년간 약 200억원의 손실을 내고 캐릭터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캐릭터는 특징과 모양을 조금씩 바꿔 제조하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를 피해 가기 쉽고 단속하기도 어렵다. 제조업체 측에서 캐릭터의 일부 모양과 색깔만 바꾸고 ‘나름의 창작물’이라고 반박하며 이의를 제기하거나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곳도 있다.

인형뽑기가 성행할수록 캐릭터 모조품 생산이 늘어나기 때문에 국내 캐릭터 시장 피해 수준이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문화콘텐츠라이센싱협회가 2014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4321개 매장 중 불법 캐릭터 제품 취급 업체의 비율은 63.1%, 불법 복제품 유통 규모는 1조5781억원으로 추산된다.

불법 복제 캐릭터 유통에 관련됐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불법 복제에 따른 피해액은 3조~4조원에 달한다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카카오의 캐릭터 지식재산권(IP)인 카카오프렌즈 관계자는 “뽑기방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일일이 확인할 수 없어 도매 유통업자들에게만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뽑기방이 사실상 영세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곳이 많다 보니 거대 기업의 단속보다 뽑기방 업주의 자정(自淨)에 맡기는 셈이다.

더 나아가 한국저작권보호원은 당국의 단속과 업계의 노력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국저작권보호원 관계자는 “정품 캐릭터를 사용하는 것이 국내 캐릭터 산업의 근간이라는 것을 충분히 고려해 주기 바란다”며 “뽑기방이 건전한 놀이 문화로 정착될 수 있도록 불법 캐릭터 상품 뽑기를 자제하는 노력을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성행하고 있는 뽑기방이 정품을 써도, 짝퉁을 써도 법에 위반되는 상황인 만큼 제도적 차원에서의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창완 세종대 애니메이션학과 교수는 “현재 경찰 등에서 불법 캐릭터에 대해 수사하고 처벌하는 과정이 진행된다고는 하지만 이 과정이 순조롭지 못한 것으로 안다”며 “불법 캐릭터를 쓸 수밖에 없는 모순된 법을 재정비하는 등 수사권과 체포권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며 제도적 차원의 해결을 촉구했다.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