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법정관리 1년] 원양·근해 선사 간 협력체 통해 적극적 교류 나서
‘따로 또 같이’, 고군분투하는 국내 선사들
(사진)지난해 한진해운 사태로 빚어진 물류 차질을 해소하기 위한 현대상선의 대체 선박 현대포워드호가 부산신항에 입항, 화물을 선적하고 있다.(/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해운업은 전체 수출입 물량의 90%를 책임진다. 지난해 ‘한진해운 사태’가 발생했을 때 전 산업계는 ‘해운업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무너진 해운업에 대한 재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해운연합 통해 항로 정리 나선다

한진해운 사태를 겪으며 한국 선사들은 ‘협력’의 중요성을 느꼈다. 최근 선사 간 협력에서는 원양 선사와 근해 선사 간 구분도 사라졌다.

올해 3월 한국 원양 선사와 근해 선사 간 최초의 컨소시엄이 출범했다. 현대상선·장금상선·흥아해운은 ‘HMM+K2 컨소시엄’을 결성했다. 컨소시엄은 각각 3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선복 교환으로, 공급과잉을 해결하기 위해 선사 간 유휴 선복을 서로 활용한다. 2단계는 공동 운항, 신규항로 공동 개설, 기기 공유, 터미널 합리화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진다. 최종 3단계는 항만 인프라 공동투자로 결속력을 확대한다.

세 선사는 각자 컨소시엄을 통한 이득을 도모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한국~베트남·태국, 한국~일본 등 아시아 역내 항로를 추가로 확보했다.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은 현대상선이 보유한 아시아 역내 항로와 인도 항로 이용이 가능해졌다.

올해 8월에는 현대상선·SM상선을 비롯한 국적 컨테이너 14개가 모인 ‘한국해운연합’이 출범했다. 한국해운연합은 항로 합리화, 선복 교환 확대, 신규 항로 공동 개설 등 컨테이너 정기선 산업 발전을 위한 상호 협력 기반을 마련하기로 했다.

향후 한국해운연합은 운영 규정을 마련하고 합리화할 수 있는 항로 대상을 선정하는 등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다.

아시아 역내의 항로 정리는 한국 선사들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다. 몇 년 전부터 아시아 역내 항로에서 선복 과잉이 심화됐는데 최근엔 원양 선사들까지 이 지역을 노리며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국내 선사 간 출혈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고 이를 막기 위해 한국해운연합이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협력도 중요하지만 선사 하나하나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양대 원양 선사인 현대상선과 SM상선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

현대상선의 2분기 매출액은 1조241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1% 증가했다. 영업손실은 1281억원으로 흑자 전환에 실패했지만 전년 동기 대비 1262억원 개선됐다.

현대상선 측은 2분기 실적에 대해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영업손실·물동량 등 전반적으로 개선됐지만 2분기 미주 운임지수가 하락해 손익 개선에도 불구하고 흑자 전환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상선은 머스크·MSC와 협력하는 ‘2M+H 얼라이언스’ 재편에 따른 항로 조정과 선박 재배치로 상당 부분 비용 지출이 발생했지만 3분기부터 이익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현대상선, 적자 폭 줄였지만 흑자 아직

한진해운의 인력과 자산을 승계한 SM상선은 미주 서안에서 6500TEU급 선박 5척을 투입해 운항 중이다. 향후 SM상선은 미주 동안과 유럽까지 노선을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SM상선은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원양항로 시장에 적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랑스 해운 전문 언론 ‘알파라이너’는 4월 SM상선에 대해 “해운업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선사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SM상선이 한진해운의 자산 및 영업 인력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SM상선 관계자는 “한진해운의 영업 인력을 채용함으로써 시장에서 이른바 ‘맨파워’를 펼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SM상선은 SM그룹의 계열사인 대한상선·우방건설산업과의 합병으로 자산 규모를 1조2000억원으로 늘린다. 대한상선은 SM그룹의 벌크 선사이며 우방건설산업은 주택건설과 토목건축업을 하고 있는 건설사다. SM그룹 측은 이번 계열사 합병을 통해 재무 건전성을 확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당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합병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중국에서는 국영 선사 코스코가 같은 중국 선사인 차이나시핑컨테이너라인(CSCL)을 인수하며 선복량 기준 세계 4위로 뛰어올랐다. 이처럼 해외 선사들의 합병 사례를 본받아 한국 또한 하나의 원양 선사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취지였다.

결국 합병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아직까지 ‘하나의 원양 정기 선사’를 바라는 목소리는 남아 있다. 8월 31일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와 인천항만공사가 주최한 ‘한진해운 사태 1주년, 법적 쟁점과 도약 방안’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에 참석한 흥아해운 측의 발제에 따르면 36명의 해운·물류업계 고위 관계자 중 83%가 올바른 정책 방향으로 ‘현대상선과 SM상선의 통합’을 꼽았다.

◆文 정부, 한국해양진흥공사로 해운 지원책 ‘일원화’
2008년부터 이어져 온 ‘해운 홀대론’ 벗어던질까
‘따로 또 같이’, 고군분투하는 국내 선사들
(사진)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과 국적 컨테이너선사 14곳의 대표가 8월 19일 '한국해운연합' 결성을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한국경제신문)

2008년 이명박 정부가 해양수산부와 국토교통부를 통합해 ‘국토해양부’로 개편했을 당시 해운업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후 해운업계에서는 해양수산부를 비롯한 해운업이 홀대 받는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한진해운 도산과 구조조정을 겪으며 조선업에 비해 해운업에 대한 지원책이 시원하지 않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해운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새 정부의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시기가 갖는 중요성도 있지만 해운업에 대한 홀대가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8월 30일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설립해 장기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해운업을 지원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내년 6월까지 해운업의 금융 및 정책 지원을 전담하는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설립해 분산된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통합한다는 계획이다.

금융 분야는 선박 매입 등 투자 보증, 항만 터미널 물류 시설 투자 등 자산 투자 참여, 중고 선박 매입 후 재용선 사업 등 기존 사업을 흡수한다.

정책 분야에서는 운임지수·시황예측·운임공표 관리 등 해운 거래를 지원하고 노후 선박 대체, 경영 상황 모니터링 등 선사의 경영을 지원한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가 연이어 발표한 해운 관련 대책이 한국해양진흥공사를 통해 어느 정도 통합·정리될 것이란 전망이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등 크고 작은 구조조정을 겪으며 해운업계에서는 금융업계의 시선으로 해운업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이 때문에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주무 부처가 금융위원회가 될 것인지, 해양수산부가 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일단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주무 부처는 해양수산부로 결정됐다. 금융위원회는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재무 건전성을 심사한다.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