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백신 전쟁
녹십자·사노피·일양약품·GSK·SK케미칼 5파전…제품 수 올해 10개로 늘어
후끈 달아오른 ‘4가 독감 백신’ 판매 경쟁
(사진) SK케미칼의 한 연구원이 백신을 연구하고 있다. /SK케미칼 제공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한 번 접종으로 4종류의 독감 바이러스를 동시에 예방할 수 있는 ‘4가 독감(인플루엔자) 백신’ 선점 경쟁이 해마다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4가 독감 백신’은 기존 ‘3가 독감 백신’에 B형 바이러스주 1종이 추가된 백신이다. 한 번 접종으로 A형 바이러스 두 종류와 B형 바이러스 두 종류 등 총 4종의 독감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다국적 제약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2015년 4월 유일하게 4가 독감 백신을 판매하면서 시장을 선점했다. 지난해에는 녹십자·SK케미칼·일양약품이 4가 독감 백신을 본격 출시하면서 4파전이 형성됐다.

올해에는 사노피 파스퇴르 등이 가세하며 출시 제품 수가 총 10개로 늘었다.

◆WHO, 4가 독감 백신 접종 권장

흔히 독감을 감기의 일종으로 알고 가볍게 여긴다. 하지만 독감을 간과했다가는 큰코다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보건 당국에 따르면 국내에서 독감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망자는 연간 2370명에 달한다. 연간 건강보험 지출액은 약 1000억원 수준이다.

예방의학의 발전으로 독감은 예방접종만 잘해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 독감 백신의 면역력은 한 번 접종으로 약 6개월 정도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독감은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증가해 12월과 1월에 최고점을 찍는다.

3가 인플루엔자 백신은 매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유행할 것으로 예상하는 A형 바이러스주 2종과 B형 바이러스주 1종을 조합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WHO가 유행할 것으로 예상한 바이러스주와 실제 유행한 바이러스주가 일치하지 않는 백신 미스매치가 발생해 인플루엔자 확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WHO와 유럽의약품청(EMA)은 미스매치가 발생하더라도 더 증가된 효과를 볼 수 있는 4가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을 권장하고 있다.

김종훈 고려대 안암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3가 백신보다 4가 백신에 예방접종에 들어갈 수 있는 항원의 숫자가 많으므로 가능하면 4가 백신을 접종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며 “독감 백신의 항체가 생기려면 약 2주가 소요되기 때문에 독감 시즌이 시작되기 전인 가을에 접종하는 것이 좋고 가능하다면 10월 말까지 접종하는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에 출시된 오리지널 4가 독감 백신 제품은 GSK의 ‘플루아릭스테트라 프리필드시린지(이하 플루아릭스테트라)’, 녹십자 ‘지씨플루쿼드리밸런트 프리필드시린지주(이하 지씨플루쿼드리밸런트)’, SK케미칼 ‘스카이셀플루4가 프리필드시린지(이하 스카이셀플루4가)’, 일양약품 ‘테라텍트 프리필드시린지주(이하 테라텍트)’, 사노피 파스퇴르의 ‘박씨그리프 테트라주’ 등 5종류다.

동아에스티·보령바이오파마·한국백신은 다른 회사의 원료를 가져와 제품만 생산한다.

이들 백신 가운데 SK케미칼의 ‘스카이셀플루4가’는 유일한 세포배양 방식의 독감 백신이다. 나머지는 유정란 배양 방식을 사용한 제품이다.

세포배양 백신은 개 등 동물세포를 이용해 바이러스를 배양해 만든다. 제조 과정에서 계란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아도 된다. 균주를 확보한 후 2~3개월이면 백신 생산이 가능해 신종플루 등 변종 독감이 유행할 때 보다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반면 유정란 배양 방식은 70여 년 전 개발된 기술로, 안전성과 임상적 효과가 충분히 입증됐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생산 단가 측면에서도 세포배양 방식에 비해 유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주요 3사, 4가 백신 685만 명분 공급
후끈 달아오른 ‘4가 독감 백신’ 판매 경쟁
GSK는 2014년 12월 4가 독감 백신 ‘플루아릭스테트라’의 품목 허가를 식약처로부터 획득했다. 이 제품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영국·독일·호주 등 35개 국가에서 허가 받은 백신이다.

회사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약 1억 도즈(1도즈=1회 접종 분량) 이상 공급돼 방대한 사용 경험을 축적해 온 제품”이라고 말했다.

녹십자는 2015년 11월 국내 제약사 중 최초로 식약처로부터 4가 독감 백신 ‘지씨플루쿼드리밸런트’의 품목 허가를 받았다. 녹십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국내 최대 물량인 약 400만 도즈의 4가 독감 백신을 공급한다.

녹십자 관계자는 “녹십자는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세계 30여 개국에 3가 독감 백신을 수출하는 등 다국적 제약사가 장악 중인 글로벌 독감 백신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며 “4가 독감 백신에 대한 수출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SK케미칼은 2015년 12월 세계 최초 세포배양 4가 독감 백신 ‘스카이셀플루4가’의 품목 허가를 식약처로부터 획득했다. SK케미칼은 올해 약 225만 도즈의 4가 독감 백신을 공급한다.

SK케미칼 관계자는 “스카이셀플루4가는 국내 유일 세포배양 방식으로 항생제나 보존제의 투여가 불필요한데다 계란 알레르기가 있더라도 좀 더 안심하고 접종할 수 있는 제품”이라며 “글로벌 수출을 위한 준비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양약품은 지난해 9월 식약처로부터 4가 독감 백신 ‘테라텍트’의 품목 허가를 받았다. 일양약품은 올해 약 60만 도즈의 4가 독감 백신을 국내에 공급할 예정이다.

일양약품 관계자는 “일양약품은 연간 최대 6000만 도즈의 백신 생산 라인을 갖춘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며 “조만간 백신 수출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노피 파스퇴르도 최근 4가 백신을 출시했다.

한편 보건 당국은 9월 4일부터 국내 생후 만 6~59개월 영·유아와 65세 이상 노인에 대한 독감 예방 백신 무료 접종에 돌입했다.

현재 미국·영국·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노인과 임신부, 영·유아 등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국가 필수 예방접종 사업에 4가 독감 백신을 도입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3가 독감 예방 백신은 무료 접종이 가능하지만 4가 독감 백신은 필수 예방접종 사업에 포함되지 않았다. 임산부는 3가 독감 예방 백신 접종 시에도 별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choi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