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 여론 타고 정부서 전방위 압박…이명희 이사장 구속영장 청구까지
‘물컵의 비극’ 최대 위기 맞은 한진家
(사진)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5월 28일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출석한 모습.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물컵 하나의 파장이 이렇게 일파만파 확산될지 어느 누가 예상했을까.” 재계에서 대한항공을 두고 나오는 얘기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 전무의 ‘물벼락 갑질’이 대한항공을 뒤흔들고 있다.

작은 물컵 한 잔이 일으킨 ‘나비효과’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총수 일가 전원에 대한 전횡과 비리 고발로 번지면서 대한항공의 이미지는 완전히 추락했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 역시 총수 일가의 비리 사실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전면에 나서면서 한진그룹은 창사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비극’의 시작은 4월 1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해 3월 조 전 전무가 한 광고대행사 직원과 회의하던 도중 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하자 물이든 컵을 던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총수 일가 연이어 경찰 조사

당시 대한항공 측은 “조현민 전무가 광고대행사와 회의를 하면서 물이 든 컵을 회의실 바닥으로 던져 물이 튄 것은 사실이지만 직원 얼굴에 물을 뿌렸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수습했다. 조 전 전무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경솔했다”며 사과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순간의 도덕적 책임으로 끝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후부터 각종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에 조 전 전무의 갑질이 일상적이었다는 내용들이 추가로 폭로됐고 논란이 더욱 커졌다.

당시 해외에 있던 조 전 전무가 급히 귀국해 사과했지만 갑질에 대한 분노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2014년 ‘땅콩 회항’ 사건까지 다시 상기되는가 하면 하루가 멀다고 총수 일가의 갑질 제보가 이어졌다.

특히 조 전 전무의 모친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호텔 공사 현장에서 사람을 밀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시작으로 총수 일가에 대한 폭로가 연이어 공개되면서 비난 여론이 더욱 비등해졌다.

이 과정에서 갑질뿐만 아니라 총수 일가가 대한항공 승무원들을 이용해 개인 물품을 밀반입했고 가사 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것은 물론 상속세를 탈루했다는 의혹까지 나왔다.

결국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통해 조 전 전무는 물론 장녀인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전 사장도 모든 직책에서 즉시 사퇴하도록 조치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었다. 잇단 제보와 폭로에 결국 조현민·조현아 자매에 이어 모친인 이명희 이사장까지 모두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마친 상태다.

더욱 부담스러운 것은 정부 또한 전면에 나서 대한항공은 물론 한진그룹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상속세 탈루 의혹과 관련해 총수 일가를 겨눈 검찰의 칼날이 매섭다.

서울지방국세청은 4월 30일 조 회장 등 총수 일가가 선친인 조중훈 한진그룹 전 회장의 해외 부동산과 예금을 상속받는 과정에서 상속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문제를 제기하며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한 바 있다.

검찰은 조 회장 일가와 주변 계좌에서 수상한 자금 흐름을 발견하고 비자금 조성 여부 등을 수사하고 있다. 최근 까지 총 3차례에 걸쳐 대한항공 본사를 비롯한 한진 관계사들이 압수 수색을 당했다.

검찰은 5월 24일 한진그룹 본사 빌딩과 조 회장의 동생인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의 자택과 사무실 등 10여 곳을 압수 수색했다.


다음 날인 5월 25일에는 대한항공에 기내 면세품을 공급하는 트리온무역과 미호인터내셔널 사무실 등을 압수 수색했고 5월 31일에는 대한항공 본사 재무본부 사무실까지 들이닥쳤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을 끝내는 대로 대한항공과 계열사 관계자들을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조세 포탈과 횡령 배임 혐의 등에 조 회장의 지시가 있었는지 등을 들여다볼 것으로 예상돼 칼끝이 조 회장을 겨누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은 5월 31일 이명희 이사장에 대해 구속영장도 청구했다.

◆무차별 ‘기업 죽이기’ 지적도

그뿐만 아니라 국토교통부도 대한항공 계열사인 진에어의 항공 면허 취소 여부에 대해 법리 검토를 의뢰해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 국적인 조 전 전무가 2010년 3월부터 6년 동안 진에어의 등기이사를 맡은 것이 항공사업법을 위반한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물컵의 비극’ 최대 위기 맞은 한진家
항공사업법에는 ‘항공사 임원 중에 외국인이 있는 회사에 항공운송 사업 면허를 내줘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밖에 관세청도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밀수·관세 포탈, 외국환거래법 의혹을 검토 중이며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대한항공 내부에서 한진그룹과 관련한 부당 거래가 있었는지 여부를 살피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대한항공에 대한 근로감독에 착수했다. 힘 있는 자들의 갑질은 반드시 근절해야 할 우리 사회의 병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만큼 정부 부처가 한데 모여 대한항공 총수 일가에 대한 조사에 나선 모양새다.

다만 이 같은 정부의 전방위적 압박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대한항공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에 휩쓸려 무차별적으로 기업 죽이기에 나선다는 시각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불법적인 부분은 조사해야 하지만 여러 정부 부처가 합심해 대한항공을 압박하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연구소 연구원은 “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이나 전횡은 잘못”이라면서도 “이는 사법적인 문제인 만큼 법적 테두리 안에서만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사법적인 문제를 계기로 기업의 경영 방침이나 지배구조까지 바꾸려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