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무작정 움켜쥐고 조이는 관리 통제에 미래 질식…‘기업 관료’의 등장 막아야
경영은 숫자로만 말하지 않는다

[한경비즈니스 칼럼=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경영전략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경영전략이 요란한 문서 작업으로 끝나지 않고 구체적인 경영 활동으로 실천돼 성과를 내려면 진행 경과를 살펴가며 전략 자체를 수정하거나 추가적으로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 이를 ‘전략적 통제(strategic control)’라고 한다.

세상의 모든 조직은 일정한 관리 통제 기능을 갖고 있다. 중요한 일들을 누구와 어떻게 협의하고 보고해 승인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결재 과정이나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제공하는 자원 배분 과정이 관리 통제의 대표적인 예다. 결과를 분석해 향후의 방향 설정에 반영하는 작업도 포함된다.

관리 통제 기능이 무너진 회사는 계기판이나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지나친 관리 통제도 문제다. 이것이 권력이 돼 사사건건 개입하고 트집 잡아 되는 일이 없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계기판을 봐야 하고 수시로 급브레이크가 작동해 운전을 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미래를 위한 창의적 전략을 조직의 힘을 모아 실천하기 위해 반드시 전략적 통제가 필요한 이유다.

◆관리 통제가 권력으로 왜곡되면 안 돼

전략적 통제는 일반적 관리 통제의 범위를 넘어 설정된 전략과 목표 자체가 타당한지 검토하고 필요하면 이를 수정하는 더 높은 수준의 과정이다. 관리 통제 시스템을 포함한 기업 전반의 운영체제와 ‘자원 배분 과정(resource allocation process)’을 만들거나 바꾸는 작업이 포함된다.

‘삼국지’에는 이와 관련해 의미 있는 사례가 나온다. 서기 200년, 천자를 옹립하고 천하 쟁패의 기반을 만든 조조는 북방의 강자 원소와 패권을 놓고 맞붙었다. 이른바 ‘관도대전(官渡大戰)’이다.

조조는 주요 전투에서 이겼지만 전황이 지구전으로 전개되자 불안해진다. 이에 본거지 허도를 지키고 있는 순욱(荀彧)에게 서신을 보내 조심스럽게 철군을 상의하는데 순욱은 원소 진영의 허점을 세세하게 지적하면서 조조가 승기를 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순욱은 원소 진영이 병력은 많지만 체제가 허술하다고 설명하고 주요 인사들의 장단점을 지적하면서 “조공(曹公)은 일의 큰 줄기를 잡고 작은 일은 스스로 되어 가게 하는 반면 원공(袁公)은 일을 꾸미기는 좋아하지만 작은 일에 얽매여 큰 줄기를 놓친다”고 평했다.

요즘의 기업 경영에 비춰 생각해 보면 조조가 전략의 큰 줄기를 잡아 일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면 원소는 복잡한 전략계획이 촘촘한 관리 통제와 맞물려 막상 정말로 중요한 일은 잘 안 되는 셈이다.

전략을 실천하기 위한 수단인 관리 통제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거나 권력의 수단이 돼 버리는 것을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유능한 선생님은 필통만 열어봐도 학생이 얼마나 공부에 성실한지 알 수 있다. 노트까지 펴보면 다음 달 성적까지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가 가르치는 과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선생님은 머리카락 길이나 바짓단 길이를 트집 잡아 권력을 행사한다.

유능한 경영자에게는 사실 복잡한 관리 통제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다. ‘미륵관심법’까지는 아니지만 직원들 표정이나 시장 동향 몇 가지만 봐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복잡한 체제를 만들어 여러 사람이 간여할수록 진실은 숨겨지거나 왜곡되기 마련이다. 회사가 크고 복잡해져 정교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면 ‘첨단의 관리 기법’을 거론하기 전에 먼저 조직을 분리해 불필요한 관료제의 싹을 방지하는 것부터 생각해 볼 일이다.

전략계획이 기업의 힘을 모으는 틀이 아니라 소수의 ‘기업 관료’들의 전유물이 되고 이들이 책상머리에서 억지로 짜 맞춘 논리가 오히려 미래를 구속할 수도 있다.

관리 통제 시스템은 성격상 ‘자원 배분’과 ‘평가’라는 권력작용을 수반하므로 더 숨 막히는 정치적 과정으로 변질되기 쉽고 한 번 형성된 권력은 조금만 방심하면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탄탄하고 치밀한 관리’로 유명한 회사들은 한 번 형성된 체제가 자체 증식하며 굳어져 물려받은 2세 경영자도 여기에 편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꽉 막힌 관리 통제 시스템은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답답하기 짝이 없지만 부리는 사람에게는 편하고 안정적이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업들이 꺾여 버리고 당장 숫자 맞추기 좋은 사업들이 이어지다 보면 결국 미래가 없어지지만 ‘마음 편하게 누리면서 지키려는’ 경영자에게는 딱 맞을 수도 있다. 잘 짜 맞춰진 숫자의 이면에는 잃어버린 기회들을 포함한 무수한 사연이 있다.

하지만 일단 예상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안심이 된다. 하지만 회사는 ‘정치’가 된 관리 통제 과정에 착 달라붙어 떵떵거리는 ‘기업 관료’들의 세상이 된다.

만약 미래를 만드는 전략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경영자라면 한시라도 빨리 꽉 막힌 관리 통제 시스템을 버리고 ‘일이 되는’ 회사로 만들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숨은 손실’ 찾아야

촘촘하게 짜인 보고 체계, 부정이나 오류를 막기 위한 교차 검증 등으로 유명한 회사가 있다. 거래하는 업체들은 그 깐깐함과 치밀함에 혀를 내두르고 경영자는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는 체제에서 충성 경쟁을 즐긴다.

언뜻 보면 효과적인 관리 통제 체제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숨은 손실을 생각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우선 방대한 관리 통제 체제를 움직이는데 막대한 돈과 시간이 들어가고 일하는 사람들은 곳곳의 보고와 협의 요구에 시달리느라 막상 돈 버는 일을 할 수가 없다. 치밀한 정보 파악으로 모든 현황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시간이 지나 사업에는 쓸모가 없는 죽은 정보일 뿐이다.

아무리 사업을 잘하는 사람도 현실에서는 10개를 도전해 1개를 성공하면 대단하다고 평가받는다. 사업을 잘 모르는 경영자의 눈에는 ‘무능한 1할 타자’로 보일 수도 있는데, 방대해진 관리 통제 기구는 이 틈을 파고들어 아예 ‘되는 일이 없게’ 틀어막아 놓고 90%의 실패를 막아냈다고 주장하게 된다. 즉 ‘유능한 9할 타자’로 변질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10%의 확률에 도전했다가 감사나 받기 딱 좋은 ‘창의적 도전’에 나설 사람이 다 사라져 버린다. 이런 판에서 놓쳐 버리는 사업 기회들은 더 큰 ‘숨은 손실’이 된다.
‘경영은 숫자로 말한다’면서 엄정한 성과 평가를 강조하는 이도 있다.

세상에 숫자로 정리할 수 있는 현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전쟁이 없는 상태에서 군부대의 성과는 무엇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사고 방지’를 목표로 사고 건수를 집계하면 훈련을 하지 않고 풀만 뽑는 부대가 1등이 된다.

판사의 성과를 공판 건수로 평가할 수 있을까. 상급심에서 환송되는 건수로 평가한다고 가정하면 색다른 시각에서 창의적 판결을 하는 판사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

매출과 이익 같은 회계 정보를 근거로 평가하면 될 것 같지만 여기에도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 시장 상황이 각기 다른 여러 사업부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다른 사업부에 대한 협력이나 미래를 위한 축적은 어떻게 고려해야 좋을까.

모든 평가에는 평가자의 판단이 들어간다. 평가자를 믿지 못해 혹은 ‘객관성’을 강조하기 위해 주관적 판단의 여지를 억지로 숫자로 욱여넣으면 막상 손에 쥔 숫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암호가 돼 숫자를 손에 쥔 관리자들의 권력 자원이 된다.

전략 목표와 주요 활동 내역을 핵심성과지표(KPI)로 만들어 성과를 측정하는 곳도 있다. 기업 전체의 주가나 매출, 이익 같은 총괄 지표에 더해 구체적 활동 내용을 짚어 보는데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여러 지표들에 가중치를 부여해 합산하고 등수까지 매기기 시작하면 이 또한 평가 권력을 둘러싼 정치가 되고 만다. 한국의 공기업 평가가 대표적이다. 지성·미모·의상을 합산한다면서 결국 ‘상품성’을 보는 미인 대회 평가와 비슷하다.

◆때로는 과감한 전략 수정도 필요해

“큰 나라에 가니 큰 인물이 많더라”는 춘추전국시대의 명언이 있다. 덩치 큰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큰 인물들의 생각이 살아남는 나라는 큰 나라가 됐다는 뜻이다. 반대로 작은 인물들의 졸렬한 생각들만 살아남으면 작은 나라가 된다는 얘기다.

전략적 통제는 주어진 목표를 숫자로 만들어 무작정 강요하는 ‘실무적 관리 통제’를 넘어 목표 자체가 타당한지 살피고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전략 자체를 수정한다. 현실의 경영에서는 사장(CEO)과 재무책임자(CFO)가 실무자들과 함께 전략의 목표와 현실을 놓고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설정한 전략과 목표를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어차피 바뀔 전략과 목표라고 생각하면 구성원들의 노력을 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에 일정한 ‘경직성(rigidity)’이 불가피하고 전략과 목표가 자주 바뀌면 상대적으로 탄력성에 한계가 있는 생산·기술 부문에 혼선이 벌어진다.

경영자는 이런 상반된 고민들 속에서 때로는 고집스럽게, 때로는 유연하게 경직성과 탄력성 사이를 오가야 한다. 경영을 과학(science)으로 착각하거나 우기는 이들에겐 불편한 얘기지만 전략 경영은 주관적 판단과 인간적 설득이 가득한 ‘예술’의 세계다.

기업의 의사결정과 자원 배분은 특정한 사업안이 선택되는 일종의 토너먼트 과정이다. 큰 인물의 생각들이 살아남아야 큰 나라가 되듯이 어떤 사람이 살아남아 미래를 만들어 갈지가 결정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2001년 파산한 미국의 에너지 회사 엔론의 경영진은 자본시장의 유행에 맞춰 거품을 만들어야 돈을 벌고 출세도 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구성원들은 주주의 돈으로 도박을 벌이다 파국을 맞았다.

경영자는 정말로 사업을 해보려는 창의적 소신과 열정을 살려내고 회사 돈을 쓰면서 폼이나 잡으려는 꼼수를 가려내는 의사결정과 자원 배분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전략적 통제의 핵심이다.

경영자가 모든 의사결정의 내용을 파악하고 개입할 수 없다면 일정한 틀을 정하고 그 안에서 구성원들에게 일을 맡기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공학에서 사용하는 ‘경계 제어(boundary control)’의 개념을 전략적 통제에 도입한 것인데, 고속도로의 가드레일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일정한 수준의 수익률 범위를 부여하고 프로젝트를 맡기는 제너럴일렉트릭(GE)의 사업 평가가 대표적인데, 경영자와 관리 스태프가 상시적 모니터링을 통해 위험 요인이 증폭되는 것을 관리하지만 적어도 시시콜콜 끼어들어 간섭하고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한 관리 통제 권력’을 줄일 수는 있다.

유능한 경영자는 미래를 만드는 전략이 끊임없이 현실과 마주하도록 긴장의 끈을 이어 간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8호(2019.01.21 ~ 2019.01.2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