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검사 가능 항목 여전히 제한적…각계 반발로 ‘도로아미타불’ 우려
‘규제 샌드박스’에도 냉랭한 유전체 분석업계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정부의 혁신 성장 정책인 ‘규제 샌드박스’가 도심 수소차 충전소 등 4건에 처음 적용된 가운데 예방의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유전체 분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월 11일 ‘제1회 산업 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를 열고 유전체 분석 업체 마크로젠이 뇌졸중과 대장암 등 13개 질병에 대한 유전자 검사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신청한 실증 특례를 허용했다. 현재 소비자가 병원이 아닌 민간 업체에서 유전자 검사를 받는 ‘소비자 직접 의뢰(DTC)’ 검사 항목은 체질량지수, 중성지방 농도, 콜레스테롤, 피부 노화, 탈모 등 질병과 관련이 없는 12개 항목으로 엄격하게 제한돼 있다.

이번 규제 샌드박스 통과로 마크로젠은 인천경제자유구역에 거주하는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2년간 실증 사업을 추진해 유전자와 질병 간 인과관계 여부 등을 검증하게 된다. 테라젠이텍스·디엔에이링크·메디젠휴먼케어 등도 최근 샌드박스 사업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는 2월 말 2차 규제특례심의위원회를 열고 추가 안건을 심의, 의결할 계획이다.

◆“규제 샌드박스로 부처 간 엇박자 걱정”

DTC 유전자 검사는 혈액이나 타액 표본을 업체에 보내면 유전적으로 발병 가능성이 높은 질환을 예측해 주는 서비스 사업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래놀이터(샌드박스)처럼 신기술·신사업 분야에서 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해 다양한 사업 아이디어를 시도하게 하는 제도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규제 완화 움직임에도 업계의 반응은 차갑다. DTC 유전자 검사 항목이 여전히 제한적인데다 보건의료 시민단체 등의 반발로 ‘도로아미타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DTC 유전자 검사 항목이 12개로 제한돼 있어 관련 서비스 시장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보건복지부는 2016년 6월 이들 항목에 대해 우선적으로 DTC 검사가 가능하도록 규제를 풀면서 향후 순차적으로 항목 확대를 약속했다. 지난해 4월 공청회와 유전체기업협의회와의 논의 등을 바탕으로 항목 확대 합의안을 도출하는 등 DTC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는 듯했다.

하지만 8월 말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 이 안건을 폐기하고 인증제와 DTC 범위 확대를 별도 안건으로 다루기로 하면서 규제 완화에 대한 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후 최근 산업부가 마크로젠이 신청한 DTC 유전자 검사에 대해 규제 샌드박스를 허용했지만 업계에서는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큰 상황이다. 이번 승인이 복지부와 업계 등이 수년째 논의 중인 DTC 확대에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규제 샌드박스 승인이 복지부 등 관련 부서가 추진 중인 규제 완화 움직임과 별도로 진행되면서 부처 간 엇박자 등의 불협화음으로 도리어 업계가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국민의 안전권 확보 등을 이유로 DTC 유전자 분석에 대한 규제 샌드박스 승인 철회를 주장하는 반대의 목소리도 넘어야 할 산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2월 13일 성명을 통해 “규제 샌드박스에 DTC 유전자 분석을 포함한 것은 국민의 건강 정보를 상업적 활용의 대상으로 삼고 시장 거래를 허용하겠다는 의도”라며 “영리 목적의 의료 민영화를 위해 시민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시범 사업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규제 샌드박스’에도 냉랭한 유전체 분석업계
◆규제 더 풀어야 vs 과학적 근거가 우선

규제 완화 방안을 놓고 논의를 이어 온 복지부와 업계도 좀처럼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업계는 관련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법 테두리 안에서만 허용되는 포지티브 규제 대신 금지된 것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허용해 주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생명윤리법을 우선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2004년 제정된 생명윤리법에는 유전자 검사는 의료기관만 할 수 있도록 못 박고 예외적으로 복지부 장관이 인정하는 항목에 대해 포지티브 방식으로 허용하고 있다. 유전자 관련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상황인데도 새로운 항목을 추가할 때마다 격렬한 논쟁을 거쳐야 하는 국내 현실에서는 학문과 산업의 발전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처럼 DTC 규제를 완화하고 활용 범위를 확대하면 일상생활과 밀접한 더 많은 분야에서 유전자 검사가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일본 등은 DTC 유전자 검사와 관련해 별도의 규제 없이 300여 개 항목에 대한 검사 서비스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반면 복지부는 안전성과 신뢰성 등을 이유로 웰니스(웰빙과 건강의 합성어) 항목 확대에 대해서만 규제 완화를 허용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복지부는 검사 결과의 신뢰성 확보 등 서비스의 질 관리와 적절한 모니터링이 가능하도록 하는 ‘DTC 유전자 검사 서비스 인증제’를 도입하기 위한 시범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2월 14일 열린 첫 회의에서 시범 사업 추진 방안을 심의, 의결했다. 시범 사업에 적용할 검사 대상 항목은 기존 허용 12개 항목을 비롯해 과학적 근거가 충분히 검증됐다고 판단한 웰니스 위주 57개 항목이다. 이는 당초 계획보다 절반 이상 줄어든 것이다.

복지부는 앞서 의료계·학계·산업계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를 구성, 지난해 4월 공청회를 거쳐 121개의 DTC 유전자 검사 항목을 확대하는 것에 합의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산업계를 제외한 의료계·학계 위주의 ‘DTC 항목 확대 위원회’를 구성하고 관련 논의를 통해 기존 합의한 항목을 대폭 축소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업계 관계자는 “복지부는 항목 확대 위원회 구성 과정에서 산업계에 대해선 이해 당사자라는 이유로 배제한 반면 같은 이해 당사자인 의료계는 참여시켜 이들을 중심으로 주요 항목을 대거 탈락시켰다”며 “유전체 분석업계의 반발이 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급기야 최근 복지부 시범 사업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하며 여론몰이에 나섰다.

한국바이오협회 산하 유전체기업협의회는 “회원사 회의를 통해 복지부의 DTC 유전자 검사 서비스 인증제 시범 사업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2월 20일 발표했다.

2015년 7월 출범한 유전체기업협의회에는 마크로젠·태라젠이텍스·디엔에이링크·이원다이애그노믹스·랩지노믹스·녹십자지놈 등 19곳이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유전체기업협의회는 “복지부가 허용한 57개 항목으로는 국민 건강관리와 산업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데다 항목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질병과 조금이라도 연관성이 있으면 제외되는 등 산업계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choie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3호(2019.02.25 ~ 2019.03.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