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파이프라인 탐색 단계서 인공지능 활용
-신약 개발 효율성 강화에 집중
오픈 이노베이션 이어 AI에 공들이는 제약·바이오업계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제약·바이오업계가 신약 개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외부의 유망 기술을 도입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국내 기업 간 협업은 물론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도 보편화하는 추세다.

신약 후보 물질(파이프라인) 탐색 단계부터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신약 개발 가능성을 높이고 기간과 비용을 감축하면서 리스크도 줄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외부 도입 파이프라인 기술 수출 성과 이어져

유한양행은 최근 10년간 국내외 바이오 벤처에 15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파이프라인을 27개로 늘렸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7월 퇴행성 디스크 치료제 파이프라인 ‘YH14618’을 미국 스파인바이오파마에 기술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엔솔바이오사이언스에서 도입한 파이프라인이다. 지난해 11월에는 미국 얀센바이오텍에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파이프라인 레이저티닙(프로젝트명 YH25448)을 기술 수출했다. 레이저티닙은 오스코텍에서 사들인 파이프라인이다.

유한양행은 두 건의 기술 수출로 5065만 달러(약 589억원)의 계약금을 확보했다. 개발 단계별 마일스톤(기술료)을 포함한 총계약 규모는 14억7315만 달러(약 1조7137억원)다. 유한양행의 지난해 매출 1조5188억원을 뛰어넘는 액수다.

GC녹십자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합성 의약품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백신과 혈액 제제 등 주력이던 바이오 의약품에 이어 합성 의약품 파이프라인도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GC녹십자는 최근 개량 신약 개발 전문 기업 애드파마와 공동 연구·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애드파마는 유한양행의 자회사다. 순환기계·위장관계 치료제 등을 개발하고 있다. 협약에 따라 애드파마는 제제 개발을 맡는다. GC녹십자는 합성 의약품 개발 기술을 이전받아 제품 생산과 상업화를 담당한다. GC녹십자는 애드파마가 발굴해 유한양행으로 기술 이전한 순환기계 치료제 등에 대한 공동 개발에도 참여한다.

동아쏘시오홀딩스는 일본 메이지세이카파마와 바이오시밀러(바이오 의약품 복제약)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동아쏘시오홀딩스 등은 최근 스텔라라(성분명 우스테키누맙) 바이오시밀러 ‘DMB-3115’의 유럽 임상 1상을 시작했다. 스텔라라는 미국 얀센이 개발한 바이오 의약품이다.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 등의 치료제로 쓰인다. 글로벌 매출은 지난해 기준 약 51억 달러(약 5조9900억원)다.

동국제약은 바이오 벤처와의 협업을 통해 바이오시밀러 위탁 개발·생산(CDMO) 사업에 진출했다. 최근 프레스티지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시밀러 ‘투즈뉴’의 제조에 관한 위·수탁 계약을 했다. 프레스티지바이오로직스는 투즈뉴의 원료를 제조하고 동국제약은 진천 공장에서 완제품을 생산하는 계약이다.

투즈뉴는 유방암과 전이성 위암 치료제인 허셉틴의 바이오시밀러다. 프레스티지바이오로직스의 관계사인 싱가포르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가 개발했다. 2020년부터 세계 시장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한미약품과 JW중외제약 등은 임상 단계의 해외 파이프라인을 도입해 국내 허가와 판권을 미리 확보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한미약품은 최근 미국 바이오 기업 랩트 테라퓨틱스(이하 랩트)와 ‘FLX475’에 대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FLX475는 면역세포의 암세포 공격력을 활성화하는 먹는 면역 항암제 파이프라인이다.

한미약품은 랩트에 초기 계약금 400만 달러(약 47억원)와 단계별 마일스톤으로 5400만 달러(약 629억원)를 지급하고 상용화에 따른 이익을 나누기로 합의했다. 개발에 성공하면 한국과 중국(대만·홍콩 포함)에서의 상업적 권리는 한미약품이 갖기로 했다. 한미약품은 한국과 중국에서 위암 환자를 대상으로 FLX475의 임상 2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JW중외제약은 일본재팬타바코(이하 JT)가 개발한 신성빈혈치료제 파이프라인 ‘JTZ-951’의 국내 판권을 보유하고 있다. JW중외제약은 2016년 JT와 JTZ-951에 대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JT는 최근 ‘JTZ-951’의 신약 허가 신청서를 일본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MDA)에 제출했다. JW중외제약은 지난 1월부터 국내 20개 종합 병원에서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 이어 AI에 공들이는 제약·바이오업계
◆AI 활용해 신약 개발 비용·기간 감축

최근 들어선 AI를 신약 개발에 적용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일본제약공업협회에 따르면 AI는 평균 10년이 걸리던 신약 개발 기간을 최소 3년으로 단축할 수 있다. 평균 1조2200억원이 들던 개발 비용도 절반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가상 환경에서 실험 등을 실시하는 만큼 기존 대비 적은 인력을 효율적으로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SK바이오팜은 지난해 10월 AI 기반의 약물 설계 플랫폼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SK(주) C&C와 협업해 만든 이 플랫폼은 물질 특허가 가능한 화합물을 설계한다. 특정 화합물의 흡수·분포·대사·배설·독성을 예측해 인체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약물 등을 설계하는 식이다.

SK바이오팜 관계자는 “기존 단순 약물 특성 예측 시스템을 뛰어넘어 세상에 없던 새로운 화합물을 설계하는 국내 유일의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SK바이오팜의 모회사인 SK(주)는 최근 관련 경쟁력 강화를 위해 AI 신약 개발사인 스탠다임에 약 10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JW중외제약의 자회사 C&C신약연구소는 AI 기반 빅데이터 플랫폼 ‘클로버’를 보유하고 있다. 암환자의 세포주를 이용한 약물 스크리닝과 약물 설계 프로그램 등이 데이터베이스화된 플랫폼이다. 질환별 특성에 맞는 파이프라인을 별도의 실험 없이도 골라내고 상용화 여부를 판단한다.

JW중외제약 신약연구센터는 생체 현상을 조절할 수 있는 단백질 구조를 모방한 2만5000여 종의 화합물 라이브러리인 ‘주얼리’도 갖췄다. JW중외제약은 주얼리와 클로버를 통해 항암제 등 10여 종의 파이프라인을 발굴했다.

CJ헬스케어는 최근 스탠다임과 AI를 활용한 항암 신약 파이프라인 공동 개발 작업에 착수했다. 스탠다임이 자체 AI 플랫폼을 활용해 항암 신약에 적용할 수 있는 화합물을 찾아내면 CJ헬스케어는 해당 화합물의 물질 합성과 평가를 진행하는 식이다. 두 회사는 이를 통해 2021년까지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도출한다는 목표다.

유한양행은 AI 기반의 신약 개발 관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캐나다 바이오 기업 사이클리카와 협업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사이클리카의 AI 플랫폼을 활용해 자체 연구·개발(R&D) 프로젝트에 부합한 파이프라인을 도출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정희 유한양행 사장은 “AI와 빅데이터 등 최신 기술을 도입하면 신약 개발의 비용을 낮추고 기간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가장 좋은 신약을 신속히 개발해 환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6호(2019.12.23 ~ 2019.12.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