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앞서 시장 연 일본 거래량 2% 불과…금융사, 다양한 위안화 상품 개발 나서야

[이슈 인사이트] 위안화 직거래, 초기 활성화에 성패 달렸다
시진핑 정부 초기만 해도 중국 정부의 금융시장 개방에 대한 태도는 극히 조심스러웠다. 중국 측 세미나에선 대부분이 금융시장을 개방할 때의 부정적 효과와 조기 개방한 나라들이 겪은 애로 사항에 많이 주목하곤 했다. 이런 중국이 작년 8월 상하이자유무역지구를 개설하면서부터 금융시장 개방에 대한 태도가 적극적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개방의 기초랄 수 있는 외환시장의 행보가 빠르다. 통화 스와프를 서둘러 이미 24개국과 계약했고 위안화의 1일 변동 폭을 2%까지 확대해 놓았다. 또 올해엔 시진핑 주석의 해외 순방 때마다 위안화 직거래 시장을 개설해 이젠 한국을 포함해 6개국에 위안화 직거래 시장이 생겼다.


홍콩·런던·싱가포르 …‘위안화 허브’경쟁
이처럼 중국 정부가 위안화 국제화에 속도를 내는 배경과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세계 2위 경제 대국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위안화의 통화 주권, 즉 국제 결제통화 기능을 갖추기 위해서다.

둘째, 무역 거래에 따른 비용 절감 필요성도 큰 요인이다. 작년 기준으로 중국의 수출입 규모는 무려 약 4200조 원에 달해 세계 1위다. 위안화가 국제화돼 있지 않아 달러·유로화 등으로 바꾸는 환전 또는 헤지 비용만 엄청나다. 6~7% 되는 이들 비용 중 3% 내외만 줄여도 126조 원의 절감 효과를 기업이 얻게 된다.

셋째, 현재 중국은 내수 확대가 핵심 과제다. 내수 확대엔 금융 서비스산업의 육성과 영역 확대가 필수인 만큼 국내외 시장 연결을 위한 외환 자유화와 국제화를 서두르는 것은 당연한 셈이다. 위안화와 다른 통화의 각종 외환시장은 물론 딤섬본드 등 외국인이 참여하는 다양한 위안화 상품이 출시돼 엄청난 내수 확대 효과가 기대된다.

물론 외환 자유화가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칫 너무 서두르거나 순서를 잘못하면 금리 통화정책이 망가지고 핫머니의 급격한 유·출입으로 통화가치가 급변동하고 때론 금융 시스템의 위기를 맞기도 한다. 이에 따라 다른 나라를 충분히 조사·연구한 중국이 이를 충분히 염두에 두고 위안화 국제화를 진행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환율 변동 폭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면서도 통화 스와프, 위안화 직거래 개설을 중국과 무역 거래가 많은 나라 또는 중화권부터 먼저 진행하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지금까지 위안화 직거래 시장이 개설된 지역 또는 국가는 영국·프랑스·한국·싱가포르·대만 등 대부분이 중국에 협조적이거나 중국이 컨트롤할 수 있는 중화권 국가들이다.

아무튼 통화 스와프, 위안화 직거래 개설로 위안화 거래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특히 위안화 거래가 활발한 시장 몇 개를 살펴보자.

아무래도 역외 위안화 시장의 원조는 홍콩이다. 일찌감치 2003년 11월부터 위안화 직거래가 시작됐고 자타가 인정하는 핵심적인 위안화 허브다.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다소 주춤했지만 2010년 이후 성장 속도가 빨라져 현재 위안화 표시 예금, 외환 거래, 무역 결제, 채권 발행 등에서 세계시장의 약 70%를 차지하는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홍콩을 통한 위안화 무역 결제 규모는 2013년 기준으로 약 600조 원, 전 세계 위안화 무역 결제의 83%로 압도적이다.

이쯤 되니 이미 홍콩에선 위안화 거래가 홍콩 달러 거래보다 많다. 또 최근 2~3년간 인기를 끌고 있는 딤섬본드(역외 위안화 표시 채권) 잔액도 홍콩이 절반 가까운 43%나 된다.

유럽의 금융 중심지랄 수 있는 영국의 런던은 위안화 허브 구축을 위해 총리가 발 벗고 나설 정도로 열성적이다. 작년 10월 조지 오즈본 영국 재무장관의 중국 방문 때 800억 위안의 외국인 적격 투자자(QFII)를 취득했고 금년 3월 말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시진핑 주석이 런던의 위안화 청산 결제은행 설립에 합의했다. 위안화 거래는 세계 위안화 시장의 5~6%에 불과하지만 유럽의 위안화 허브를 만들어 미국 맨해튼에 빼앗긴 글로벌 금융센터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계획이다.

아시아에서 홍콩 다음의 중화권 대표로 위안화 거래에 발 벗고 나서고 있는 건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원래 아시아에서 홍콩 다음으로 금융시장이 국제화돼 있는 데다 정부 자체가 하나의 회사로 외국 기업과 개인 부자 유치에 매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년 4월부터 본격화된 위안화 직거래가 세계 총거래의 6~7%로 런던을 제치고 2위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싱가포르를 아세안 국가의 허브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위안화 거래 증가 속도가 더 빨라질 전망이다.


1996년 원·엔 직거래 시장 실패 경험도
대만도 후발 주자이긴 하지만 최근 위안화 거래 증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시 주석의 정치적 고향이랄 수 있는 푸젠성과 옛날부터 무역이 활발해서인지 시진핑 정부 들어 위안화 시장 성장이 돋보인다. 예금 금리가 1%대로 낮은 점도 최근 위안화 예금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위안화 시장의 빠른 성장은 중국의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지만 최근 움직임은 당초 시장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고 있다. 그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중국 내의 상하이자유무역지구와 글로벌 시장 곳곳에서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역외 위안화 직거래 시장이다. 인민은행 통화위원이자 인민대 총장인 첸위루는 “2020년쯤엔 위안화가 영국 파운드화와 엔화를 앞질러 3대 통화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중국이 보다 효율적이고 저비용의 청산 결제 시스템 구축에 박차를 가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일부는 유로화 추월도 시간문제라고 예상한다. 역외시장마다 청산 결제은행으로 나서고 있는 중국 대형 은행들이 얼마나 빨리 글로벌 은행으로 성장하는지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대중 무역 규모를 생각하면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어쨌든 7월 초 시 주석 방한 이후 위안화 직거래 시장 개설 작업이 한창이다. 외환은행·신한은행 등은 이미 발 빠르게 원·위안화 현찰 직거래에 시동을 걸고 있다.

원·위안화가 직거래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우선 환전 수수료가 절약된다. 둘째, 연일 절상돼 수출 기업을 긴장시키고 있는 원화 값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위안화 결제 수요 증가로 원·달러 시장에서 달러 공급을 줄여 달러 대비 원화 절상을 완화할 것이란 얘기다. 셋째, 결제통화 다양화로 과다한 달러 의존에 따른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면서 대외 신인도도 높일 것이다.

그러나 전제 조건이 있다. 원·위안화 거래가 활발해 제대로 된 가격이 형성돼야 한다. 한국은 1996~1997년 원·엔 직거래 시장을 개설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물론 이에 대해 당시는 한국의 외환시장 규모가 작은데다 대일 무역 적자가 심해 엔화 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이고 지금은 외환시장도 커졌고 대중 무역 흑자도 커서 그때와는 다르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외환시장이 한국보다 훨씬 큰 일본도 2년 전 시작된 엔·위안화 거래가 아직 총 외환 거래의 2%로 활발하지 않다. 거래가 적으면 매수 매도 스프레드가 벌어져 환전 수수료 절약은 없던 얘기가 된다.

이에 따라 시장 초기 때부터 거래 활성화 노력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선 위안화 적격 외국인 투자자(RQFII)의 800억 위안(약 13조450억)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위안화 표시 금융 상품을 만들어 금융 부문에서도 다양한 위안화 수요 공급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RQFII는 한국에서 중국 주식뿐만 아니라 채권·예금·파생상품 등 다양한 위안화 표시 금융 상품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국내 투자자와 예금자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주고 그만큼 국내 금융 자본시장의 국제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현재 한국 국채 금리는 3% 내외, 중국은 약 4%로, 중국이 1% 포인트 높아 위안화 금융 상품 개발 유인이 많다. 홍콩의 딤섬본드처럼 안정적인 위안화 수급을 위한 위안화 표시 김치본드 발행도 장려할 만하다. 정부도 정부지만 은행·증권·자산운용사 등의 분발도 요구된다. 중국 자본을 주주로 끌어들인 뒤 함께 중국에 진출한다든지 교차 상장, 상품의 교차 판매, 중국 경제와 금융을 이해하는 전문 인력 양성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정유신 한국벤처투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