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정승우 유중아트센터·유중재단 이사장…참여형 복합문화공간 개관 8년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갤러리·아트홀·법창의센터. 서울 서초구 방배로에 자리한 유중아트센터에 들어설 때 물음표 하나가 따라붙었다. 예술과 법이라는 이질적인 요소가 한곳에 어우러지니 정체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청년 예술가, 지역 주민 위한 문화예술의 디딤돌 역할”
3~4층 전시장에선 베트남 특별 교류전이 열리고 있었다. 2층 로비에 들어서니 오른쪽의 클래식 공연장과 왼쪽의 작은 전시실이 눈에 들어왔다. 김창열, 구사마 야요이, 로뎅, 제니 홀저 등 각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걸려 있다. 모두 개인 소장품들이다.
컬렉터이면서 아트센터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정승우 유중아트센터·유중재단 이사장은 “지역민들을 위한 열린 복합 문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유중재단이 모교인 고려대 법학과에 10억원을 기부하면서 지하 공간에는 법률 스타트업들이 자리하고 있다.
대기업을 그만두고 재단을 설립해 운영해 온 지 어느덧 8년째다. 수많은 문화재단과 아트센터의 지형에서 유중은 청년 예술가 지원, 예술품 국제 거래 분야에서 차별화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의 정통 코스를 밟지 않았지만 그만이 할 수 있는 장르와 방법으로 길을 개척해 온 정 이사장을 만나 문화·예술 경영에 대해 들어봤다.

주로 어떤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나요.
“3~4층 전시장에서는 기획전과 초대전이 열리는데 현재는 베트남 국제 교류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유중아트센터 개관 8주년 기념전이죠. 베트남은 경제적으로 가장 밀접하고 중요한 국가 중 한 곳입니다. 문화 분야에서도 교류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민간 교류 차원에서 물꼬를 텄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굵직한 국제 교류 사례로 윤동주 시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교토조형예술대와 단체 교류전을 진행한 일도 기억에 남습니다. 서초구 지역민들이 많이 찾는데 2층 전시실에선 이곳을 찾는 손님들에게 어떤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고 유중아트센터가 어떠한 곳인지 소개하고 있죠. 전시뿐만 아니라 해외 아트 페어에 참가하고 다양한 문화·예술 세미나와 포럼·강연을 열기도 합니다. 아트홀에서는 ‘유중의 밤’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클래식 공연을 주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다음 전시로는 부산화랑협회와 진행하는 청년신진작가 특별전 'AGE2030'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

컬렉터로 작품을 수집하는 데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까.
“처음부터 컬렉팅을 시작한 목적이 미술관을 설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현대미술을 좋아하지만 제 취향보다 작품성을 우선적으로 보고 또 해외 경매 시장에서 전시장 구석에 놓여 있거나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국내 작가들의 작품들은 취향과 관계없이 되도록 들여옵니다. 법대에서 상법과 국제거래법을 전공하다 보니 예술품 국제 거래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작품을 수집하고 예술품 국제 거래와 통관 절차를 진행하면서 이쪽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부터죠.”

대학에선 법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에 다니다가 문화재단에 뛰어들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문화·예술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재단을 설립한 것은 외증조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지덕체 삼위일체 인재양성’을 실현해 보고 싶은 취지에서입니다. 수많은 문화재단과 장학재단이 있고 설립 목적도 다르지만 8년 전 유중재단을 설립할 때의 의도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서초구가 손꼽히는 부자 동네이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이 주변이 다 개발되지 않은 공터였습니다. 물론 예술의전당이라는 좋은 문화 공간이 있지만 문화·예술 애호가가 아니라면 조금 문턱이 높은 편이죠. 유중은 동네에 자리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편하게 오고갈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제가 나고 자란 서초구에서 민간이 만든 첫 공익 문화 재단으로, 특히 청년 예술가들의 발굴과 육성에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문화·예술의 마중물 역할을 하기 위해 어떠한 활동들에 역량을 집중했습니까.
“참여형 복합 문화 공간을 지향합니다. 비전공자로 뛰어들었기 때문에 지난 8년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또 상처도 받으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컸고 공부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시작부터 전문가였다면 하지 못했을 겁니다. 처음부터 복합 문화 공간으로 음악이나 미술 등 장르에 한정하지 않고 문화·예술을 통해 지역민들과 청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술과 음악을 한 공간에 다 녹여내 담았고 음악은 주로 클래식 음악 장르에 치중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통영국제음악제·윤이상국제콩쿨·서울국제음악제 등 국내 유명 콩쿠르의 거의 모든 리허설을 이곳에서 치렀습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서 하는 라이징 스타나 영재 발굴 사업도 벤치마킹했죠. 우수한 연주자들을 선발해 데뷔 무대를 제공하고 장학금도 주는 식으로 운영해 왔습니다. 4년 전부터 특히 미술 영역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미술 분야에서 차별화된 부분은 무엇인가요.
“미술 분야에서도 다양한 시도들을 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창작 스튜디오로 작가들에게 레지던시를 제공했는데 단순히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내 깨달았습니다. 비어 있는 공간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작가들이 단순히 공간이 없어 작업을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창작물이 유통돼야 하기 때문에 유통의 장을 마련해 주는 게 더 중요했습니다. 누군가는 비영리 공익 재단으로 운영하면서 아트 페어에 참가하고 왜 영리 활동을 하느냐고 지적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신진 작가를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에는 공간 제공에서 전시 기회를 제공했고 또 직접 작품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나아가 아트 페어에 참가하면서 거래 활성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정책 포럼 등 제도적 측면에서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가까이에서 지켜 보니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어서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다 보니 판화사진진흥협회장, 대구사진비엔날레 육성위원 등 중책을 맡았고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중·장기 미술 중흥 태스크포스(TF) 등에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청년 작가 지원과 관련해 의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제도 개선을 위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까.
“정책 쪽에서는 미술 분야의 후원 제도를 개선하는 쪽입니다. 직접 후원보다 간접 후원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공간 후원에도 단순히 작가들이 이력을 쌓기 위한 방편으로 레지던시를 활용하는 데서 정말 공간을 필요로 하는 작가들에게 지원될 수 있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국가 정책이 정무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정말 미술 시장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는 쓴소리를 많이 하고 있는데 그래서 비난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산업 육성을 위한 제언이나 정책 제안을 하는 것과 함께 관련 연구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문화·예술 관련 연구자와 교수·변호사 등 전문가가 많지만 특히 예술품의 국제 거래에 대한 전문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싶고 계속 연구 중입니다. 단적으로 최근 개인적으로 미국의 유명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관세청으로부터 고액의 관세를 부과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예술품은 무관세가 적용되는데 통관 과정에서 작품이 아닌 가구로 오인하면서 빚어진 일입니다. 또 한 번은 일본 유명 작가의 작품이 피규어로 오인된 적도 있습니다. 제가 무지했다면 세금을 냈을 겁니다. 최소한 이와 같이 억울한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재단이나 아트센터가 있습니다. 어떠한 문화재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습니까.
“대기업의 문화재단과 비교해볼 때 유중아트센터는 운영 주체와 참여자가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것 같습니다. 다 갖춰진 상태에서 유명 작품들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하얀 도화지처럼 비어 있는 상태에서 참여하는 분들을 통해 조금씩 채워 나왔습니다. 지난 8년간 약 10만 명 정도 관객들이 이곳을 다녀갔는데 오는 분마다 코멘트가 제각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저를 되돌아보게 되고 지적을 받을 때마다 운영 방식을 바꿔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그때그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시설과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여형 복합 문화 공간으로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차별화 포인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비전공자이기에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8년을 지켜 왔고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장르는 청년 예술가, 운영 형태는 비영리, 운영 내용은 국제 교류와 교육이라는 방향을 가지고 향후 10년을 열어가겠습니다.”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2호(2019.11.25 ~ 2019.12.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