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 조직 신설·협력사 동반 성장으로 ‘모범 사례’ 구축
‘사회적 가치 창출’ 선두에 선 SK하이닉스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경제 평론가 아나톨 칼레츠키는 자신의 저서 ‘자본주의 4.0’에서 과거와 달라질 기업의 역할을 주문했다. 기업은 향후 닥칠 시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고 직원 및 관계사와 함께 동반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가치’를 바라보는 기업들의 시각이 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SK그룹의 활약이 눈에 띈다. SK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더블 보텀 라인(Double Bottom Line)’을 강조해 왔다.

최태원 SK 회장은 올해 실천해야 할 중점 과제로 ‘사회적 가치 창출’을 첫째로 꼽으며 각 관계사에 회사가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다음 단계로 나갈 것을 당부했다. 여기에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이 단순히 사회공헌을 넘어 새로운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SK하이닉스는 SK그룹 내에선 막내로 분류되는 계열사지만 최근 탄탄한 실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여기에 사회적 가치 창출에도 선봉장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SK하이닉스의 활발한 사회적 가치 창출을 네 가지 단계로 정리해 봤다.
‘사회적 가치 창출’ 선두에 선 SK하이닉스
◆1단계 : ‘사회적 가치’를 전담하는 조직을 신설하라

SK하이닉스는 올해 1월 사회적 가치 창출을 전담하는 임원급 조직 ‘지속경영추진담당’을 신설했다. 사회적 가치 관련 기능을 하나의 조직에 통합해 가치 창출을 극대화한 것이다. 이 조직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사업을 기반으로 제조 공정에서의 환경오염 감소, 저전력 제품 생산, 협력사 지원 등 다양한 사회적 가치 창출 아이템을 발굴한다.

사회적 가치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선 정량화된 지표가 필요하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에 걸쳐 그룹 사회공헌위원회, 외부 전문가, 교수 등의 논의와 검증을 거쳐 사회적 가치 측정 체계를 구축했다.

시범 측정 결과 지난해 1~3분기 SK하이닉스가 창출한 사회적 가치의 금액은 5조1251억원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동안 거둔 재무 성과(당기순이익) 7조4220억원의 69% 수준이다.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는 기업의 생산 과정과 제품·서비스를 통해 창출되는 성과인 비즈니스 기반의 사회 성과다. 환경과 사회 생태계 측면의 다양한 사회적 성과를 반영한다.

기업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원 소비와 환경오염 저감에 대한 성과를 측정하고 협력사와 상생 협력하기 위해 금융 자금과 기술·교육을 지원하는 것도 포함된다. 대표적 사례는 ‘생산 공정 및 제품 사용상의 온실가스 감축량’ 등이 있다.

둘째는 기업에서 수행하는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창출하는 사회 성과다. 임직원의 자발적 기부나 봉사활동 참여로 성과를 이룰 수 있다. 셋째는 기업의 경제활동 과정 중 구성원이나 이해관계인에게 경제 자원의 이전을 통해 창출하는 경제적 사회 성과다.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핵심 요소인 세금(법인세)·임금·배당 등 사회 경제 주체들에게 환원되는 금액이 포함된다. SK하이닉스는 첫 시범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사회적 가치의 측정 지표를 정교하게 보완해 나갈 계획이다.

또 SK하이닉스는 3월 29일 이사회 내 SK하이닉스의 지속 경영과 사회적 가치 창출 전략을 전문적으로 논의해 검토하는 ‘지속경영위원회’도 신설했다. 이는 관련 의사 결정을 회사 내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에서 담당해 향후 사회적 가치 창출을 더욱 확대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다. 이를 통해 의사결정 과정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에서는 회사의 지속 가능 경영 보고서 발간과 사회적 가치 측정 결과, 안전·보건·환경 등 사회적 이슈 관련 제반 사항에 대한 심의도 진행한다. 이를 위해 사회적 가치 분야에 전문성을 둔 사외이사 2명(송호근·조현재 이사)과 사내이사 1명(이석희 이사)을 선임했다.
‘사회적 가치 창출’ 선두에 선 SK하이닉스
◆2단계 : ‘공유 가치’를 중시하라

반도체 산업은 제조 공정의 수많은 부분이 협력사와의 협업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협력사의 경쟁력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 된다. 이를 일찌감치 인식한 SK하이닉스는 상호 협력과 기술혁신으로 협력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SK하이닉스는 4월 11일 ‘사회적 가치(SV) 및 공유 인프라 플랫폼 설명회’를 열고 공유 인프라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SK하이닉스의 협력사들은 새로 오픈하는 ‘공유 인프라 포털’을 통해 무상 혹은 시중보다 저렴한 금액에 반도체 지식과 노하우를 배우고 SK하이닉스 장비를 활용한 웨이퍼 분석·측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안전·건강·환경(SHE) 컨설팅 무상 지원과 협력사 인력난 해소를 위한 청년 희망 나눔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신승국 SK하이닉스 지속경영 담당 전무는 “30년 넘게 쌓아 온 반도체 관련 인프라를 협력사들과 공유하는 첫 시도”라며 “협력사들이 분석 결과를 향후 제품 성능 보완과 신제품 개발에 빠르게 반영해 협력사와 SK하이닉스의 ‘동반 성장’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국내 반도체 생태계 경쟁력 강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지속경영추진담당 조직은 향후 공유 인프라 포털과 SHE 컨설팅, 채용 프로그램의 사회적 가치 측정도 진행한다.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객관적 지표를 만들기 위해 외부 전문가를 통해 효과적 지표를 선정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임금 공유제’도 시행 중이다. SK하이닉스는 2015년부터 노사 간 임금 협상을 타결하며 임금 인상분의 20%를 협력사 직원들의 처우 개선에 지원하는 ‘상생 협력 임금 공유 프로그램(임금 공유제)’을 진행하고 있다. 직원들이 임금 인상분의 10%를 내면 회사가 같은 10%를 추가로 내는 방식으로 인상분의 20%를 지원한다.

SK하이닉스에 따르면 그간 일부 기업들이 성과를 협력사와 공유하는 성과 공유제는 있었지만 임금 인상분의 일정액을 협력사 구성원에게 지원하는 임금 공유제는 최초다. 이를 통해 SK하이닉스는 임금 인상분 3.1%의 일부인 0.3%를 내 33억원의 재원을 만들고 회사가 같은 금액을 보태 66억원을 마련해 10개 협력사 직원 4700여 명과 나눴다.

이는 곧바로 협력사 직원들의 연봉 인상과 격려금 지급으로 이어졌다. 또 일부는 안전과 보건 등 업무 환경 개선에도 활용됐다.
‘사회적 가치 창출’ 선두에 선 SK하이닉스
◆3단계 본업과 시너지 효과 창출

반도체는 PC·태블릿·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제품에서 ‘기억’을 담당한다. SK하이닉스는 데이터 저장 역할을 수행하는 메모리 반도체 회사라는 특성을 반영해 ‘기억장애 수호천사(행복 GPS)’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의 5대 목표 중 하나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제시하고 100대 국정 과제 중 하나로 급증하는 국가가 맡아 관리하겠다는 ‘치매국가책임제’를 추진 중이다. SK하이닉스의 ‘기억장애 수호천사’는 정부의 정책 기조와 기업의 역량·인프라를 결합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치매의 해결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사업은 치매 등 기억장애를 앓고 있는 취약 계층의 어르신들에게 위성항법장치(GPS) 기반의 최신 웨어러블 위치 추적 감지기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8월 경찰청과 ‘치매 환자 실종 예방 및 신속 발견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지난해 치매 질환을 앓고 있는 취약 계층 6000명을 대상으로 손목 밴드 타입의 웨어러블 위치 추적 감지기를 무상 지원했다. 또 올해부터 2020년까지 매년 3000대씩 추가로 보급해 총 1만5000명에게 위치 추적 감지기를 무상 지원한다.

위치 추적 감지기는 실종된 치매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는 데 큰 효과가 있다. 2017년 8월 무상 보급 이후 도입 2개월 만에 위치 추적 감지기를 통해 총 6명의 실종 치매 환자를 찾았다. 평균 발견 소요 시간도 13.6시간에서 65분으로 큰 폭으로 감소했다.

SK하이닉스는 한국을 대표하는 IT 기업으로 청소년의 IT 과학 교육에도 관심이 높다.
2017년에는 더 적극적으로 과학 인재 육성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지금까지 진행해 오던 사업들을 통합한 ‘하인슈타인(아인슈타인+하이닉스)’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소프트웨어링, 올림피아드, 비전뷰’ 등 3단계의 체계적인 구성을 갖춘 소프트웨어(SW) 교육 프로그램으로, 2018년 초중등 교육과정에 SW 교육이 의무화되면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5개월간 진행한 ‘소프트웨어링’ 교육에 참가한 학생들은 SW의 기본부터 코딩 방법, 이를 활용한 로봇 조작 등을 학습했다. 또 지난해 9월 열린 올림피아드 대회에서는 부문별 최고상 수상자에게 해외 과학 기관 견학의 기회도 제공했다.
‘사회적 가치 창출’ 선두에 선 SK하이닉스
◆4단계 친환경은 ‘선택 아닌 필수’

전 세계를 중심으로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자는 움직임이 거세다. SK하이닉스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기후변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BAU) 기준 2016년 대비 20% 감축을 장기 목표로 수립해 에너지·온실가스 저감 태스크포스(TF)를 구축해 추진하고 있다. 2016년에는 2015년 대비 직접 배출(Scope1) 기준으로 3만4264 tCO₂eq(이산화탄소환산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 연속 탄소 정보 공개 프로젝트(CDP) 글로벌 리더스 클럽에 편입돼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또 2016년에는 국내 기업 최초로 CDP 한국위원회가 선정하는 ‘탄소 경영 아너스 클럽’의 최고 영예인 명예의 전당 플래티넘 클럽에 진입했다.

SK하이닉스는 에너지 감축 활동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천캠퍼스 생산 공정에서 발생되는 폐열을 공조 시스템의 스팀 에너지로 대체하는 등 공정 과정에서 효율성을 강화해 에너지 사용량을 절감하고 있다.

또 환경 영향 저감을 위해 친환경, 에너지 효율적인 제품 개발에 힘쓰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13년부터 환경성적표지 인증을 추진해 왔고 탄소 성적 인증, 저탄소 제품 인증 등 매년 주요 제품군에 대해 친환경 제품 인증을 추진하고 있다.

2016년 12월 31일까지 인증 받은 탄소 관련 친환경 제품은 총 11개다. 2016년에는 128GB 솔리드 스테이트 디스크(SSD) 제품이 해당 분야 최초로 탄소 배출량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특히 2016년에는 반도체업계 최초로 20나노급 4GB DDR3 제품에 대해 미국의 인증 기관인 UL로부터 ‘물발자국 인증’도 획득했다. 물발자국은 제품 생산·유통·사용·폐기 등 전 과정에서 소비되는 물 사용량 및 제품이 수질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화해 인증하는 제도다.

SK하이닉스는 2017년 국가에서 추진하는 물발자국 시범 사업에도 참여해 지난해 10월 모바일 D램 8G LPDDR3에 대해 물발자국 인증을 받기도 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사업장에서도 기후변화 대응 활동을 확대 전개해 나감으로써 기후변화 시대에 세계적인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