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위한 공간 혁신 ‘아모레성수’를 가다-아모레퍼시픽 30개 브랜드 한자리에…‘판매’ 아닌 ‘美’를 선사한다
'아모레성수' 화장품 판매 않는 매장이 입소문난 이유는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지난 10월 성수동에 또 다른 핫 플레이스가 문을 열었다. 화장품 회사가 만든 공간이지만 화장품을 팔지 않는다. 별다른 마케팅이나 광고 없이도 하루 평균 500명 이상 방문객들이 찾는다. 문을 연 지 두 달밖에 안 됐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까지 이어진다.

아모레퍼시픽이 만든 새로운 공간 ‘아모레성수’다. 그동안 봐왔던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나 쇼룸과는 차이가 있다. 소비의 주체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옮겨가면서 오프라인 매장은 소비자 경험과 브랜드 가치에 집중한 플랫폼으로 바뀌어 왔다.

아모레성수의 가장 큰 매력은 따로 있다. 992㎡(300평)의 공간은 오직 방문객들이 편안하게 둘러보고 쉬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화장품을 발라보거나 휴식을 취하면서 직원의 눈치를 보거나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 자리에서 화장품을 사고 싶어도 팔지 않기 때문에 “마음껏 경험해 보라”는 말이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12월 17일 아모레의 오프라인 혁신을 경험하기 위해 성수동을 찾았다.

평일 오후에도 아모레성수에는 학생보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방문한 직장인이 많았다. 사원증을 살펴보니 성수동에 자리 잡은 공유 오피스 입주사나 근처 스타트업 직원들이었다.

단순히 화장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아모레성수를 찾고 있었다. 뜨는 공간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브랜딩에 관심이 많은 마케터들, 새로운 건축물에 관심이 많은 건축 전공자나 조경 전공자들도 아모레 성수가 문을 연 이후 발길을 이어 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아모레성수를 오픈한 이후 유가 마케팅이나 광고를 크게 진행한 적이 없다. 아모레 성수의 독특한 콘셉트와 인테리어를 경험한 이용객들이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사진을 올리며 자발적으로 홍보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꽤 많이 보였다. 아모레성수를 둘러보는 2시간 동안 15명의 외국인을 마주쳤다. 명동이나 강남도 아닌 성수에, 그것도 문을 연 지 두 달밖에 안 된 공간임을 감안하면 꽤 놀라운 숫자였다. 중국인 관광객이 대부분인 다른 화장품 매장과 달리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방문객들이 아모레성수를 찾고 있었다.

성수동이라는 동네의 관점에서도 카페나 맛집 말고 새로운 재미를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가 생긴 셈이다.
'아모레성수' 화장품 판매 않는 매장이 입소문난 이유는
이날 만난 영국인 베단 존스(18) 양은 가족과 함께 성수동에 놀러왔다가 정원과 크리스마스 장식에 이끌려 아모레성수를 방문했다. 평소 한국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던 존스 양은 아모레성수가 한국 화장품 회사가 만든 공간인 것을 알고 나서 굉장히 놀랐다고 전했다.
존스 양은 “아모레성수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개방성이 특징이면서도 마음이 차분해질 만큼 조용하고 편안한 공간”이라며 “화장품이 전시된 공간에서 클렌징부터 메이크업까지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굉장한 것 같고 엄마와 동생에게 한국 화장품 문화를 알려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화장품'보다 '아름다움'에 집중

'아모레성수' 화장품 판매 않는 매장이 입소문난 이유는
아모레성수 문을 열고 입장하면 가장 먼저 체크인을 할 수 있다. 휴대전화 번호나 아모레퍼시픽의 아이디로 체크인하면 샘플 교환권과 음료 할인권, 아모레퍼시픽몰 할인권 등을 받을 수 있다. 지나가다 새로운 공간이 있어 들어온 방문객들도 할인권과 교환권을 준다는 말에 웃으며 체크인을 진행하고 있었다.

자동차 정비소로 사용되던 곳에 터를 잡은 아모레성수 내부에는 아직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높낮이가 다른 바닥이나 한때 자동차를 들어 올리는 역할을 했던 호이스트 등 구조물이 과거 이곳이 어떤 장소였는지 말해준다.

아모레성수는 ‘화장품’이라는 제품보다 아름다움이라는 본질과 아름다워지는 행위에 집중한 공간이다. 이런 철학은 공간 배치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아모레성수는 클렌징-스킨케어-메이크업 순으로 이뤄지는 화장 순서를 공간에 그대로 담았다.

건물은 정중앙에 정원을 두고 ‘ㄷ’자 형태로 지었다. 어디서든 정원이 보이고 통창을 통해 건물에 햇빛이 들어온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건물 정중앙은 브랜드 팝업스토어 등 다양한 콘텐츠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건물 전체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방문객들이 편안하게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정원으로 꾸몄다"고 말했다.
정원은 화려한 꽃 대신 우리 땅에서 자란 나무와 이끼, 갈대, 바위를 두어 숲과 같은 느낌을 준다. 아름다움의 본질에 집중하는 정체성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손등 말고 얼굴에 바르세요

'아모레성수' 화장품 판매 않는 매장이 입소문난 이유는
아모레성수의 체험은 세안부터 시작된다. 다른 화장품 매장은 대부분 손등에 테스트한 후 화장품을 구매해야 한다. 하지만 아모레성수는 화장을 다 지우고 얼굴에 직접 테스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깊은 체험을 선사한다.

정원이 보이는 클렌징 룸은 호텔 화장실처럼 쾌적한 환경에서 세안을 할 수 있다. 클렌징 룸이 4칸으로 나뉘어 있어 화장을 지우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아도 된다. 수건과 헤어밴드가 마련돼 있고 뒤쪽 선반에는 클렌징 워터·오일·폼 등 아모레퍼시픽 브랜드의 모든 세안 제품이 마련돼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성수동이 워낙 핫 플레이스여서 풀 메이크업을 하고 오는 고객들이 클렌징 룸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고객이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감각으로 분류한 화장품
'아모레성수' 화장품 판매 않는 매장이 입소문난 이유는
클렌징 룸을 지나 이동하면 ‘뷰티 라이브러리’가 등장한다. 서점처럼 화장품을 전시한 뷰티 라이브러리에는 스킨케어 존과 메이크업 존이 나뉘어 있다.

이 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바구니를 들고 구경하고 있었다. 화장품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테스트하고 싶은 화장품을 담기 위해서다. 뷰티 디바이스를 통해 피부 상태를 측정해 보고 직원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 향수를 뿌리고 향을 테스트하는 사람 등 다양한 체험이 이뤄졌다.

아모레성수는 유통 경로가 제각각이던 아모레퍼시픽의 30개 브랜드를 한자리에 모았다. 스킨케어 제품의 진열 순서는 알파벳순이다.

화장품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겐 생소한 브랜드도 있다. 프라도어·에스트라·브로앤팁스 등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브랜드도 설화수·헤라 등 아모레퍼시픽의 터줏대감 브랜드와 평등하게 진열돼 있다.

제품 배치도 흥미롭게 구성했다. 화장품을 브랜드별로 나눌 뿐만 아니라 질감·기능·색감·사용감에 따라 나눴다. 방문객은 기능이 아닌 감각에 따라 직관적으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

평소 알고 있던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산뜻한 크림이 필요했는지, 무거운 크림이 필요했는지에 따라 직관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메이크업 제품은 피부 톤과 질감별로 섬세하게 분류해 놓았다. 매트·중간·촉촉 등 질감을 먼저 고르고 색상을 고를 수 있다.

한쪽에는 ‘남성 존’이 마련돼 있다. 아모레퍼시픽을 찾는 남성 고객은 전체 방문객의 20% 정도다. 아모레성수를 방문하는 남성 고객이 많아지자 기존 ‘선 케어 존’이었던 곳을 남성 전용 제품을 위한 공간으로 바꿨다.

아모레성수에서 제품을 살 수는 없지만 테스트해 보고 마음에 드는 제품이 있다면 제품에 붙어 있는 QR코드를 활용하면 된다. QR코드가 아모레퍼시픽 온라인몰로 연결돼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제품을 마음껏 경험해보고 구매는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O2O 플랫폼의 역할도 하는 셈이다.

뷰티 라이브러리에서 마음에 드는 제품을 바구니에 담았다면 ‘가든 라운지’에서 편하게 앉아 제품을 테스트할 수 있다.

가든 라운지에는 화장품이 없다. 정원을 바라볼 수 있게 일방향으로 배치된 의자와 테이블이 전부다. 카페에서 음료를 가지고 내려와 마실 수도 있고 정원을 보며 앉아 쉴 수도 있다.

아모레성수는 방문객들의 자유로운 체험을 위해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썼다. 체험용 화장품은 여러 사람이 피부에 직접 사용한다. 위생이 해결되지 않으면 방문객들의 체험이 제한될 수 있다. 아모레성수는 위생을 위해 방문객이 사용한 깨끗이 소독하고 있다. 방문객이 다 사용한 제품을 '리턴 바'에 돌려주면 직원이 보이는 곳에서 제품을 소독한 후 재배치한다.

◆화장품 매장에서 사진·꽃·마케팅까지 배운다
'아모레성수' 화장품 판매 않는 매장이 입소문난 이유는
아모레성수 중간중간에는 아모레퍼시픽의 74년 역사를 알 수 있는 물건들이 전시돼 있다. 1940년대부터 지금까지 아모레퍼시픽이 아름다움을 위해 걸어온 역사를 당시 제품과 포스터, 매체 광고 등 다양한 시각 자료를 통해 알려준다.

아모레성수의 주력 고객은 2030이지만 예전 ‘태평양’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소비자들도 아모레성수를 방문해 추억을 찾는다. 아모레퍼시픽이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제품과 포스터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향수이고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세대에게는 새로움으로 다가가는 재미 요소다.

예전 영업 사원이 사용했던 ‘판매 화법’, ‘정신력 강화’, ‘판매 에티켓’ 등 책자도 배치돼 있다. 안에 적혀 있는 내용을 읽어 보면 아모레퍼시픽이 과거를 통해 배운 내용들이 아모레성수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모레성수에는 2명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상주한다. 자기에게 어떤 색깔이 어울리는지, 어떤 제품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온라인으로 미리 예약하면 전문가에게 무료로 화장을 받을 수 있다. 단순히 화장을 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피부 타입이나 얼굴형에 맞게 어떻게 터치해야 하고 어떤 제품을 사용하는 게 좋은지 자세히 설명해 준다.

아모레성수에서 만난 이소연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메이크업을 받은 10명 중 8명은 제품을 찍어 가고 구매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남성 고객들도 눈썹정리와 피부 정리를 받기 위해 꾸준히 터칭 서비스를 예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긴 화장대와 메이크업 거울이 설치된 공간에서는 정기적인 클래스도 열린다. 이날은 연말을 맞아 ‘홀리데이 메이크업 클래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평일 오후인 데도 불구하고 8명이 참여해 아모레퍼시픽 소속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강의를 들으며 직접 화장을 하고 있었다.

아모레성수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위해 매달 평균 8개의 클래스가 열린다. 메이크업 클래스뿐만 아니라 플라워 클래스, 아모레퍼시픽 인스타그램 사진실장이 직접 알려주는 사진 클래스, 사내 직원이 참여하는 직무 클래스 등 젊은 층을 겨냥한 다양한 주제로 진행된다. 모든 클래스가 열리자마자 하루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아모레성수' 화장품 판매 않는 매장이 입소문난 이유는
아모레성수의 마지막 공간에는 마켓과 꽃집이 있다. 마켓에서는 제품을 판매하기보다 입장했을 때 받은 쿠폰을 샘플로 교환하는 곳이다. 나무 바구니 속에 담긴 샘플을 고르며 어떤 제품을 써볼지 고민하게 만들고 제품에 더 깊게 관여하게 만드는 셈이다.

아모레성수에서 유일하게 판매하는 물건은 물과 토너다. 지역명을 담아 ‘성수 워터’, ‘성수 토너’라는 이름을 붙였다. 성수가 ‘깨끗한 물’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일종의 ‘굿즈’ 형식으로 이곳에서만 파는 제품이다.

2층에는 카페 오설록을 넣었고, 옥상에는 건물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루푸탑을 만들었다. 더 많은 고객층을 불러 모으고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아모레성수는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체험과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재방문율이 높다”며 “구매에 대한 강요가 전혀 없고 오직 소비자의 ‘경험’을 극대화한 매장인 만큼 앞으로도 다양한 콘텐츠를 채워 넣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돋보기
아름다움을 위한 공간혁신...오프라인 채널로 성장한 아모레의 도전

'아모레성수' 화장품 판매 않는 매장이 입소문난 이유는
아모레성수는 그동안 채널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아모레퍼시픽의 새로운 도전이다. 최근 몇 년 새 국내 화장품 시장은 빠르게 변해 왔다. 온라인과 많은 브랜드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헬스&뷰티(H&B)가 화장품의 핵심 유통 채널로 자리 잡았다.

그 사이 유통 구조 변화와 다양한 소비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로드숍 브랜드는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마케팅의 힘은 커졌고 화장품 산업의 진입 장벽이 낮아 온라인 브랜드와 신규 브랜드가 급증했다. 이들은 ‘패스트 뷰티’를 강점으로 내세우며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했다.

상권 트렌드도 변했다. 기존 로드숍이 자리한 중심 상권이나 가두 상권의 가치는 떨어졌고 골목 상권이 콘텐츠와 감성을 내세우며 떠올랐다.

온라인이 소비의 주체가 되자 오프라인 매장의 역할도 바뀌었다. 물건을 파는 것보다 소비자가 브랜드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노은정 숙명여대 산학협력 교수는 “아모레성수 같은 체험형 매장은 고객의 감성과 감각을 자극해 구매 욕구를 끌어올린다”며 “특히 소비자가 물건보다 시간을 소비하게 함으로써 브랜드에 더욱 깊숙이 관여할 수 있게 만든다”고 말했다.

특히 이런 접근법은 아모레퍼시픽이 주력하는 고객층인 ‘밀레니얼 세대’에게 통한다. 아모레퍼시픽이 강남이나 명동이 아닌 성수에 자리 잡은 이유도 밀레니얼 세대와 만나기 위해서다.

아모레성수는 ‘화장품’이라는 상품보다 ‘아름다움’에 본질에 집중하며 브랜드의 가치를 전달한다. 아모레퍼시픽의 역사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그동안 아름다움을 위해 걸어온 길을 자연스럽게 어필한다.

화장품뿐만 아니라 카페·정원·전시·체험 등 다양한 요소를 공간에 넣어 더 많은 소비층을 그러모으고 더 다양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 속에 ‘판매’라는 과정은 생략했다. 그 대신 제품에 QR코드를 부착해 아모레퍼시픽 온라인몰로 연결했다.

노 교수는 “행동경제학 관점에서는 소비자들이 편안하게 체험하는 동안 그 제품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아모레퍼시픽의 새로운 시도는 오프라인에서는 소비자의 오감을 만족시킨 후 결국 온라인으로 소비가 이뤄지는 O2O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6호(2019.12.23 ~ 2019.12.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