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깃한 콘텐츠 비즈니스 이야기 ⑪ ]
모바일 서재 ‘밀리의서재’, 서재→서점→도서관으로 수익 창출 도전

[한경비즈니스 칼럼 = 길덕 이노션 미디어컨텐츠팀장] 서영택 웅진씽크빅 전 대표가 스타트업을 시작했다는 소리에 적잖이 놀랐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웅진씽크빅 대표를 지냈던 그는 법정 관리에 있던 이 회사를 정상화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3월 웅진씽크빅을 떠날 때도 그의 거취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컸다.

경쟁사들이나 헤드헌터들은 그가 어디에서 일할 것인지, 자신들과 같이 일할 수 있는지 관심을 뒀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일할 곳은 얼마든지 있어 보였다. 보통 사람의 시각으로는 쉰 살이 넘은 그가 전문경영인의 길을 계속 걷는 것이 안정적으로 보였다.

그랬던 그가 선택한 것은 스타트업이었다.
서영택 밀리의서재 대표, ‘콘텐츠 플랫폼’으로 도서 불황 넘는다
(사진) 서영택 밀리의서재 대표. / 밀리의서재 제공

◆콘텐츠 플랫폼으로 제2 인생 시작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더 늦기 전에 내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돌이켜 보니 10년을 넘게 출판업과 콘텐츠를 갖고 씨름해 왔더군요. 그래서 독자·작가·출판사 모두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기획했습니다.”

그와의 인연은 15~16년 전, 필자가 수습기자를 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보스턴컨설팅그룹 팀장이었던 그는 이동통신사나 대형 은행들에 관한 컨설팅을 하고 있었다.

보통은 그를 만나 조언을 듣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그가 스타트업을 시작한다는 소리에 우선 걱정이 앞섰다. 물론 무엇인가 대단한 것이 나올 것 같은 기대감도 컸다.

이에 따라 ‘쫄깃한 콘텐츠 비즈니스 이야기’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에 모바일 서재 서비스인 밀리서비스의 대표이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그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서 대표는 “새로운 서비스명을 ‘밀리의서재’로 정했고 3월 15일부터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며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밀리의서재’가 어떤 서비스인지 묻자 서 대표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TV와 연결하며 이같이 말했다.

“독자·작가·출판사가 참여하는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참여자들은 이 안에서 각자의 서재를 만들고 전자책을 볼 수 있고 종이책과 전자책을 팔 수도 있죠. 자기 서재에 대한 유료 구독자를 모집할 수도 있어요. 자기 서재에서 책이 팔리거나 유료 가입자가 생기면 서재 주인이 수익을 나눠 가질 수 있습니다. 개인들의 서재가 서점이 되고 유료 도서관도 되는 것이죠.”

◆개인 서재를 서점으로…수수료 수익도

TV에 밀리의서재 홈페이지 시작 화면이 보였다. 페이스북·카카오톡·네이버의 아이디로 간단하게 가입할 수 있다.

밀리의서재 회원이 되면 자기만의 ‘모바일 서재’를 가질 수 있다. 서재는 △글을 쓸 수 있는 ‘포스트’ 공간 △책 정보를 등록할 수 있는 ‘도서’ 공간 △친구들의 서재를 등록하는 ‘이웃’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다른 사람의 서재를 방문하면 서재 주인이 쓰고 고른 포스트와 책을 구경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포스트와 책을 자신의 서재에 스크랩할 수 있어 마치 친구 집에서 책을 빌려 보는 느낌을 준다.

다른 사람들의 서재나 포스트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면 구매하거나 전자책으로 볼 수 있다. 현재 1만여 권의 전자책이 준비돼 있고 계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밀리의서재는 누구든지 일반 회원으로 무료로 가입할 수 있다. 일반 회원은 자신의 서재를 만들어 책과 연관된 포스트를 쉽게 만들 수 있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의 서재를 알릴 수 있다. 이는 기존 블로그 서비스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향후 유료 회원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유료 회원은 매월 일정 수량의 전자책을 읽을 수 있다. 이는 아마존 등에서 이미 유사한 서비스를 하고 있다.

모든 회원들은 자신들의 서재에서 종이 책을 팔 수 있고 판매가의 일정액(약 2%)을 수수료로 받을 수 있다. 회원 개개인이 책을 선정하고 소개하고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다. 포털 등에서 블로그나 동영상의 소비가 많아지면 콘텐츠 제작자에게 광고 수익을 나눠 주는 방식과 유사하다. 서재가 서점이 되는 순간이다.

차별화되는 서비스가 하나 더 있다. 개별 서재의 주인이 유료 구독자를 모을 수 있는 것이다. 한 서재의 주인이 자신이 선별한 책들과 포스트를 볼 수 있는 자신만의 유료 회원을 모을 수 있다. 유료 회원들은 그 서재의 책들을 전자책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한 플랫폼 안에서 개인이나 기업이 유료 구독 서비스를 실시할 수 있는 것이다.

수익의 절반은 콘텐츠 사업자에게 돌아가고 4분의 1은 서재 주인에게, 4분의 1은 밀리의서재에 돌아간다. 서재가 유료 도서관이 되는 순간이다.

“한 해에 나오는 책은 수만 종에 이릅니다. 유료 구독 서비스는 이 중 읽어야 하는 책을, 믿을 만한 사람들이나 회사·단체 등에서 추천받고 경제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기획한 것입니다.”
서영택 밀리의서재 대표, ‘콘텐츠 플랫폼’으로 도서 불황 넘는다
◆웅진씽크빅 성공 노하우 담아

서 대표의 설명에도 다양한 볼거리들이 넘쳐나는 요즘 세상에서 책이란 콘텐츠가 이렇게까지 이용될지 의문이었다.

“출판 시장에 전자책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소비 방식이 나왔지만 국내시장은 활성화되지 못하고 불황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여전히 도서는 문화 콘텐츠의 중심이고 규모 면에서도 수조원에 달하는 큰 시장입니다.

현재의 출판 시장 부진을 ‘사람들이 점점 책을 읽지 않아서’라고 치부하지만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책과 연관된 요약본·서평·카드뉴스를 소비하는 데 보내고 있어요. 하지만 이것이 책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아요. 밀리의서재는 이런 2차 저작물과 원작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고 경제적 부가가치를 발생시키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것입니다.”

그가 지금까지 해 온 이력들은 서 대표의 주장에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는 남들이 한번쯤 생각했을 법한 아이디어를 실제 사업이 될 수 있게 정교하게 기획해 결국 돈이 되게 만들어 왔다.

서 대표는 25세에 창업해 라디오 프로그램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ARS로 듣는 사업을 했고 통신 장비도 만들어 판매했다. 미국 켈로그 MBA 재학 중 기업 컨설팅 업무를 알게 됐고 보스턴컨설팅 그룹에서 일했다.

2005년 웅진그룹에 입사해 2007년 웅진패스원 대표를 맡았다. 취업 교육, 자격증 교육, 직장인의 온·오프라인 사내 교육 등을 사업 모델로 하는 이 회사는 50억~300억원 규모의 인수·합병(M&A) 7건을 통해 온라인 교육 플랫폼 회사로 성장했다.

서 대표는 이 회사를 회원 300만 명에 매출 1000억원까지 키웠다. 그리고 이 회사는 2012년 다른 기업에 매각됐다.

2012년부터 웅진씽크빅 대표로 일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구조조정이었기 때문이다.

3200명의 직원을 2100명으로 감원해야 했고 11개의 사업을 3개로 축소했다. 부채 2500억원을 800억원으로 줄였고 적자 회사를 연간 400억원의 영업이익이 발생하는 회사로 턴어라운드시켰다.

이와 함께 기존 사업 모델을 바꿀 수 있는 회원제 디지털 독서 플랫폼인 ‘웅진북클럽’을 2014년 8월 출시했다.

“성숙기를 지나 쇠락하고 있는 교육 출판 사업의 수익구조를 혁신하기 위해 코웨이 렌털 사업과 비슷한 회원제 방식을 도입했어요. 북클럽 출시 전에 웅진은 자신들이 만든 책만 팔았고 회원 이탈이 사업의 가장 큰 약점이었기 때문이죠.”

웅진북클럽은 200여 개 출판사가 참여했고 2~3년 약정 고객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했다. 현재 회원이 50만 명에 이른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사업을 이해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웠어요. 특히 종이책에는 지불 의사가 있는 부모들이 디지털 콘텐츠에 대해서는 지불 의사가 없는 이가 많았어요.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시판 전 제품을 만들어 일산 지역에서 테스트를 실시했고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기존 출판사와 다른 수익 혁신 기대

출판업계 사람들도 대형 콘텐츠 플랫폼 서비스를 두 번이나 성공시킨 서 대표의 노하우가 ‘밀리의서재’에 담길 것이라고 기대하는 눈치다. 밀리의서재는 웅진씽크빅·미래엔 등의 출판사가 주주로 참여했고 다양한 출판사와 저자들이 ‘밀리의서재’에 자신의 서재를 만들 계획이다.
이 플랫폼이 성공한다면 출판사들은 기존 대형 온·오프라인 유통사를 통해 수익을 올리던 방식과 다른 이점을 챙길 수 있다.

무엇보다 독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서재를 통해 책을 구매했고 어떤 포스트가 책 판매에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다. 전자책 구독 서비스, 북클럽 운영, 자체 독서 판매 등을 별도의 서비스를 준비하지 않고 밀리의서재를 통해 큰 비용 없이 진행할 수 있다.

작가들 역시 자신들의 서재를 통해 독자가 누구인지 알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 유료 구독 서비스를 실시하면 새로운 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

스타트업답게 시장 진입도 마케팅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화제성 있거나 충성도 높은 회원들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우선 서비스 출시 기념으로 ‘잠룡들의 서재’를 만들어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다. 대선 후보자들로 이야기되고 있는 정치인들이 집필한 책들이 소개되고 읽힐 수 있다. 오는 4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재’를 오픈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필·추천·보유했던 도서로 서재를 꾸밀 예정이다.

로맨스·판타지·무협 등 충성도 높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장르 출판사들도 참여한다. 오디오북의 구독 서비스도 실시한다. 특히 밀리의서재는 기업의 독서 경영을 지원한다. 특정 기업이나 최고경영자(CEO)들이 서재를 만들고 직원들을 구독 회원으로 초청할 수 있다. 직원들은 책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CEO에게 전달할 수 있고 CEO들은 이에 답할 수 있다.

게다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인 ‘김영란법’으로 회사의 홍보 잡지 발행이 어려운 기업들이 책을 주제로 자신들을 알릴 수 있는 웹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밀리의서재 측은 기업이 서비스 초기 주요 고객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차분하게 시장에 진입한다는 전략이지만 이미 사용자 반응이 좋고 SNS 등을 통해 입소문이 나고 있어요. 100만 개의 서점과 1만 개의 도서관(유료 구독 서비스)을 만드는 것이 1차 목표입니다.”

서 대표는 밀리의서재를 통해 앞으로 책의 지속 가능성에 도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밀리의서재가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기도 하지만 10년 이상 걸릴 때도 있습니다. 책에 대한 소비 형태가 어떻게 변화할지 아무도 모르죠. 중요한 것은 사업이 지속 가능할 수 있게 방향성을 제시하고 실행해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