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트렌드]
-‘적이자 동지’ 안드로이드 진영…제조사 의존 벗어나 자체 생태계 조성 노려
‘메이드 바이 구글’의 숨겨진 진실은
(사진) 순다 피차이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5월 17일 열린 ‘구글 개발자회의’에서 ‘인공지능’ 서비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형욱 IT 칼럼니스트] 구글은 2017년 10월 4일 픽셀이라는 새로운 브랜드의 스마트폰 2종을 선보였다. 기존에 안드로이드 제조사들과 함께 진행했던 넥서스(Nexus)가 구글 폰이라고 불리면서 안드로이드 레퍼런스폰의 역할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구글이 내놓은 새로운 브랜드는 시장에서 뜻밖의 발표로 받아들여졌다.

구글의 스마트폰에 대한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구글은 자체 스마트폰 개발을 위해 모토로라 모바일 사업 부문을 125억 달러라는 거액에 인수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제품이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결국 인수 3년 만인 2014년 레노버에 29억 달러라는 초라한 가격에 재판매하기에 이른다.

구글로선 하드웨어 사업에 대한 실패를 인정하는 상황이었고 시장에서는 이런 구글의 실패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기존의 안드로이드 제조 진영과 좀 더 긴밀한 협력을 진행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구글이 스마트폰 개발에 다시금 뛰어들지 않을 것이란 시장의 예상은 빗나갔다. 구글은 하드웨어를 직접 개발하고 제품에 대한 마케팅과 판매까지 직접 진행하는 의미의 ‘메이드 바이 구글’을 선보였다. 2016년 픽셀 스마트폰을 처음 선보이게 된 것이다.

이는 구글이 하드웨어 시장에 직접 뛰어들겠다는 신호탄이자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선언이다.

◆하드웨어 시장 뛰어든 구글
‘메이드 바이 구글’의 숨겨진 진실은
(사진) ‘메이드 바이 구글’ 시리즈.

구글은 보란 듯이 둘째 픽셀 시리즈를 시장에 공개했다. 이번에는 기존 스마트폰의 둘째 제품뿐만 아니라 픽셀이란 이름하에 노트북(픽셀북), 무선 이어폰(픽셀 버즈), 액션 카메라(픽셀 클립스), 인공지능(AI) 스피커(픽셀 홈 미니, 맥스)까지 다양한 종류의 하드웨어를 선보였다.

시장의 관심은 둘째로 선보이게 된 픽셀2 시리즈와 AI 번역 기능이 들어간 무선 이어폰 픽셀 버즈에 쏠렸다. 여기에 순다 피차이 최고경영자(CEO)가 행사 시작에 앞서 말한 구글의 AI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인공지능 우선(AI first)’에 대한 관심이 대부분이었다.

시장은 구글의 AI 서비스인 구글 어시스턴트와 발표된 제품이 어떻게 연동되는지에 좀 더 중점을 두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같은 날 발표자로 등장한 구글 하드웨어 수장인 릭 오스텔로 부사장은 향후 구글의 좀 더 큰 전략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을 발표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공지능 우선’을 만들기 위해 구글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펼칠지에 대한 분명한 그림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발표에서 AI와 이를 연동하는 플랫폼과 서비스인 소프트웨어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접점이 될 제품들인 하드웨어의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글의 복안을 공개했다.

구글은 이미 삼성전자와 같은 스마트폰 제조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하드웨어 제조사들에 안드로이드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안드로이드를 통해 구글의 서비스를 보급하고 소비자들을 구글의 생태계 안에 가둬 두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구글의 AI 서비스인 ‘구글 어시스턴트’의 확대 또한 꾀하고 있다. 우리에게 구글의 AI는 이미 인간과의 바둑 대전에서 승리한 AI 컴퓨터 ‘알파고’로 잘 알려져 있다.

구글은 이 모두를 엮었다. 소비자에게 직접 제공할 수 있는 제품의 개발·판매 등 스마트폰 생태계를 아우르는 수직 계열화를 통해 구글의 영향력을 시장에 좀 더 확실하게 확대하려는 전략으로 판단된다.

◆칼 겨눈 안드로이드 진영

구글은 이미 경쟁력 있는 글로벌 하드웨어 개발·제조업체와 협력하고 있다. 이러한 협력이 안드로이드를 보급하는 데 가장 큰 성과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구글은 기존 안드로이드 개발·제조업체의 우려를 들으면서 직접 하드웨어를 개발하고 생태계를 확대하려는 걸까.

구글의 속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구글이 발표한 픽셀 스마트폰의 위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글은 2016년과 2017년 2년 동안 픽셀 스마트폰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당시 다른 스마트폰 회사들의 전략 폰이라고 불리는 수준의 하드웨어를 탑재했다.

한마디로 픽셀은 플래그십 제품이다. 가격 또한 과거 넥서스와 달리 700~800달러를 웃돌 만큼 고가의 제품이다. 제품 판매 지역 역시 미국을 중심으로 영국이나 서유럽과 같은 일부 지역에서만 판매하고 있다.

결국 픽셀의 경쟁 상대는 삼성전자로 보면 갤럭시 S나 갤럭시 노트와 같은 제품이고 애플로 보면 최신 아이폰 등 프리미엄 스마트폰이 그 대상이다. 소비자층 역시 이러한 프리미엄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대상이다.

이러한 픽셀 스마트폰의 구체적인 목표 층은 누구일까. 일부 사람들은 같은 안드로이드 진영의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말할 것이다. 물론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제품이나 다른 안드로이드 제조사의 프리미엄 제품의 타격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구글의 목표 층은 이러한 프리미엄 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애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구글의 본질은 광고다. 다시 말하면 모바일 광고를 통해 수익을 내는 회사다. 그리고 광고를 집행하는 광고주는 자신들의 제품을 구매력이 좋은 사람들에게 좀 더 효과적으로 광고하길 원할 것이다.

여기에서 구글의 고민은 시작됐다. 이는 구글이 하드웨어, 특히 스마트폰 사업을 직접 하고 싶었던 이유가 된다. 스마트폰 시장을 지역별로 들여다보면 미국·영국·일본과 같은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지역의 아이폰 점유율이 매우 높다.

프리미엄 스마트폰이라고 불리는 시장에서의 아이폰의 점유율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물론 이 시장에도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스마트폰이 있지만 사실상 삼성전자의 갤럭시 S나 갤럭시 노트 시리즈 정도가 시장에서 눈에 띄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역시 단일 제품군의 판매 비교에서는 애플의 아이폰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그 성적이 초라하다.

구글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싶어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안드로이드 제조사와 좀 더 긴밀히 협력하고 특별한 프로젝트도 추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안드로이드 제조사들 역시 자신들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시도들이 모두 구글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말 그대로 ‘실패’였다.

또 다른 이유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숙에 따른 안드로이드 제조업체의 이탈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안드로이드라는 모바일용 운영체제로만 보면 구글은 시장 지배자가 분명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운영체제의 중요성보다 그 안에서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중요성이 훨씬 더 부각되고 있다. 제조사 역시 하드웨어만으로는 다른 제조사와의 차별화를 꾀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각자의 독특한 서비스로 수익을 내길 바라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조사 고유의 서비스는 결국 구글의 서비스들과 대치된다. 협력 업체가 구글에 칼을 겨누게 된 상황이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자사의 AI 비서 서비스인 빅스비의 확대를 위해 별도의 물리적 버튼을 제품에 추가했다.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 스마트폰 제품에는 구글의 AI 비서 서비스인 구글 어시스턴트도 함께 탑재돼 있다.

소비자가 구글의 AI 서비스를 쓰기 위해서는 빅스비보다 좀 더 복잡하고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는 불편이 생긴 것이다.

간편 결제 서비스 역시 마찬가지다. 제조사는 자체적으로 구축한 간편 결제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 간단히 화면을 밀어 올리면 지불이 가능한 서비스를 적용했다.

구글 역시 간편 결제 서비스가 존재하지만 어디에 배치돼 있는지 소비자가 확인하기 어려울 만큼 접근성에서 멀어져 있는 상황이다. 즉 안드로이드의 확대를 위해선 협력자의 관계였지만 서비스의 확대 시점에 돌입하면서 경쟁자 위치로 바뀐 안드로이드 제조사에 대한 견제 장치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구글의 야심, 생태계의 확대

여기에 사용자 데이터 확보라는 문제도 함께 수반되기 시작했다. 구글엔 사용자 데이터가 광고를 좀 더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주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문제로 떠오른 AI의 고도화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하지만 같은 안드로이드 진영의 제조사 역시 이러한 데이터의 중요성을 알고 이를 확보하기 위한 구글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든 사용성에서부터 사진을 찍는 부분이나 어떤 지역을 방문하고 어떤 행위를 하는지까지 스마트폰이나 스마트 기기를 통해 행해지는 모든 소비자들의 데이터는 향후 다가올 미래에 가장 중요한 가치다. 이를 확보하기 위한 구글과 안드로이드 제조사와의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결국 이러한 몇 가지 이유들로 구글의 픽셀을 통한 수직 계열화가 시작됐다. 지금까지와 다른 시장 상황의 도래와 함께 데이터와 AI의 화두는 플랫폼 시장 지배자로서도 소비자와 접점을 만들 수 있는 제품, 하드웨어가 필요하게 된 상황을 만들었다.

그리고 구글의 광고 수익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프리미엄 시장에 대해 구글이 직접 애플이 가지고 있는 시장을 빼앗기 위한 새로운 프리미엄 생태계 조성에 나섰다.

분명한 것은 여기에서 얻어진 소비자 데이터와 사용성 분석이 중고가 시장을 대응하고 있는 안드로이드 원 프로젝트나 저가와 초저가 시장 대응을 위한 안드로이드 고에도 반영된다는 것이다. ‘메이드 바이 구글’을 좀 더 깊게 지켜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넥서스(Nexus)는…
넥서스는 구글의 레퍼런스 디자인 스마트폰이다. 새로운 운영체제가 출시되기 전에 시장에 출시 예정인 스마트폰 하드웨어의 레퍼런스 가이드를 제공함으로써 안드로이드 제조사들이 운영체제와 하드웨어를 개발하고 최적화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구글이 일부 개발에 관여했지만 대부분이 안드로이드 제조사에서 개발했고 판매나 마케팅은 구글이 맡아 진행했다. 이 역시 구글 온라인에서만 판매하고 마케팅 역시 특별하게 진행하지 않는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