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채식주의자 700만 명 중 90만 명이 비건…전문 매장 등 관련 비즈니스 성업 중

[헤이그(네덜란드)=김민주 객원기자] 독일이 엄격한 채식주의를 뜻하는 비거니즘 트렌드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비건(vegan)은 고기는 물론이거니와 동물에게서 얻어지는 유제품·꿀 등도 전혀 먹지 않는 이들을 지칭한다. 독일채식주의자협회는 현재 독일 채식주의 인구가 700만 명을 넘어섰고 이 가운데 90만 명이 완전한 채식주의자인 비건에 속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민텔이 지난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 전체 비건 푸드 마켓에서 독일은 36%의 시장점유율을 기록, 1위에 올랐다. 영국(21%)·프랑스(7%)·이탈리아(4%) 등과 비교해도 단연 높은 수치다.

◆ ‘채식주의 거리’로 변신한 쉬벨바이너

영국은 2013년 40%의 점유율로 유럽 내 비건 푸드 마켓을 이끌었지만 당시 2위였던 독일(22%)의 맹추격으로 2년 만에 리더 자리를 내주게 됐다.

전문가들은 건강과 환경에 해로운 육류 중심 식단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젊은 층들의 인식 변화가 독일 내 비거니즘 열풍을 이끌고 있다고 분석한다. 예전보다 건강하고 윤리적인 식습관을 추구하려는 독일인들이 늘며 관련 상품의 소비도 증가하게 된 것이다.

민텔의 카트야 위트엄 애널리스트는 “고기 없는 식생활에 대한 독일 소비자들의 관심이 지속됨에 따라 비건 푸드는 독일의 식품 및 음료 산업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 중 하나”라고 말했다.

보고서는 독일 내 육류 대체 식품 부문의 고성장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 고기와 맛과 크기가 비슷한 가짜 고기 제품을 찾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또한 독일 소비자의 35%가 인공 첨가물이나 방부제가 포함된 식품은 피하며 33%가 식품을 구입할 때 포장지에 적힌 함유 성분 구성표를 읽는다고 응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비거니즘 열풍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만 60곳 이상의 채식 관련 식당이 영업 중이며 채식주의 거리로 불리는 곳도 있어 눈길을 끈다.

비교적 젊은 연령층이 거주하고 있는 쉬벨바이너 길은 채식주의 식료품점·카페·아이스크림가게·서점·옷가게 등이 있으며 심지어 채식주의 강아지 사료 숍도 있어 이른바 비건 로드로 통한다.

이곳의 대표적인 매장으로는 세계 최초의 비건 슈퍼마켓 체인으로 유럽 내 10개 매장을 보유한 비건즈(Veganz)다. 이미 독일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에서 채식주의 관련 상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매장 내 모든 제품을 비건을 위한 것들로 채운 것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2011년 문을 연 비건즈에서는 고기 대체 식품, 비건 아이스크림,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70종류 이상의 치즈를 비롯해 수천 가지가 넘는 채식주의 식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식음료뿐만 아니라 화장지·세제·콘돔도 구비돼 있다. 독일에서의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비건즈는 올 초 미국 포틀랜드에도 진출했다.

◆ 비건 의류·액세서리도 판매

채식 슈퍼마켓의 근처에는 비건 의류와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디얼굿즈(Deargoods), 두유나 쌀로 만든 디저트를 선보이는 구디즈카페(Goodiescafe)가 자리하고 있다.

면이나 코르크, 재활용 재료를 이용해 신발과 가방을 만드는 비건 신발 숍인 아비즈(Avesu)의 관계자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아동을 착취하지 않는 공정한 작업 환경에서 생산된 제품을 선보인다”며 “제품의 가격은 평균 100유로이며 기성 숍들보다 비싼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격대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또한 베를린에서 시작된 비건 호텔도 성업 중이다. 이 숙박 업체들은 손님에게 고기나 생선이 없는 식사를 제공하며 채식 요리 강좌를 비롯해 명상·요가나 하이킹 등 비건들이 추구하는 건강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비건 호텔은 유럽 내에 344업체를 비롯해 전 세계 500여 곳으로 영역을 넓혔다. 몸과 마음의 쉼이 필요한 이들이 주요 타깃이다.

베를린 내의 로컬 비건들은 베를린 비건 가이드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고 있다. 해당 앱에는 170곳 이상의 레스토랑, 두유를 판매하는 90곳 이상의 카페, 230곳의 베이커리 숍, 100곳의 비건 화장품과 식료품 숍 등에 대한 정보들이 담겨 있어 비건으로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길잡이가 돼 주고 있다.

한편 비건 라벨도 있다. ‘유러피언 브이-라벨(European V-Label)’은 프랑스에서 통용되는 대표적인 공식 채식주의 라벨로, 1996년 스위스에서 최초로 등록된 이후 유럽 전역에서 통용되고 있다.

라벨은 채식주의 제품이나 채식주의 식당에서 사용 중인데 ▷고기 및 생선(소·양·돼지고기 등 붉은 살코기, 가금류, 생선, 해산물) ▷동물의 고기 혹은 뼈에서 유래한 제품(수프·소시지 등 기타 조제식품) ▷동물성 지방 및 기름(유지 제외), 프라이 지방, 생선 기름이 포함된 마가린 혹은 파스타·파이·케이크 ▷젤라틴·아스픽 ▷로열젤리 ▷도축장으로부터 생산된 제품 ▷양계장 달걀 등의 성분을 포함하지 않아야만 라벨을 획득할 수 있다.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국제 비영리기구에서 시행 및 발급하는 라벨 ‘크루얼티프리(CRUELTY FREE)’도 있다.

이 라벨은 생산공정 전체에서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제품에 한해 부여된다. 동물실험 대신 과학자들에 의해 개발된 대체 실험법을 통해 보다 적은 비용으로 빠른 테스트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