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원광석 수출 금지·최저임금 인상에 투자 급랭…규제 풀릴지 관심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자원 부국’ 인도네시아의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수년째 이어진 국제 원자재가 하락과 수출 감소 영향의 여파다.

인도네시아는 수출의 60%가 석유·석탄·팜유·고무 등 원자재이며 중국 수출 비율이 높다. 중국의 저성장 기조에 따른 원자재 수입 제한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인도네시아는 자국 경제 발전을 위해 2014년 1월부터 실시한 원광석 수출 금지, 정광(精鑛 : 1차 잡성분을 제거한 광물) 수출 누진세 부과, 수입 규제 정책 등의 보호정책이 엇박자가 나면서 해외투자 기업들의 이탈현상까지 겹치고 있다.

◆ 한국 자원 개발 기업들도 투자 ‘올스톱’

실제로 인도네시아 인베스트먼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7월 미국계 광산 업체인 뉴몬트는 바투 히자우 금·구리 광산의 지분을 현지 업체에 13억 달러(약 1조5000억원)에 매각하고 사업에서 철수했다.

원자재 가격 하락에 수익성이 떨어진 데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원광석 수출을 금지하고 제련한 정광 수출에 대해 누진세를 매기는 등 경영 환경이 나빠졌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셰브런과 프랑스 토털SA 등도 인도네시아 현지 사업을 축소하기로 했다. 셰브런은 동부 칼리만탄 광구의 석유·천연가스 자산을 2018년 10월 인도네시아 정부에 모두 반환하기로 했다.

칼리만탄 마하캄 광구의 지분을 50%씩 나눠 갖고 있었던 토털SA와 일본 자원 개발 업체인 인펙스도 인도네시아 정부와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하면서 올해까지만 영업을 하게 됐다.

영국계 오빌과 스웨덴 룬딘, 호주 코퍼에너지, 프랑스 가스공사(GDF) 등도 사업을 접거나 접을 예정이다. 이들이 반환한 자산은 대부분이 인도네시아 국영기업들이 인수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들의 철수도 이어지고 있다. 우선 지난해 11월 SK이노베이션이 인도네시아 석유 개발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03년 인도네시아 광구 탐사에 나선 이후 본격적인 개발을 위해 SK이앤피아시아라는 인도네시아 광구 탐사 법인을 설립했지만 탐사 결과 예상보다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추 비용과 자재 조달, 인력 공급 등 개발비가 과다하게 들어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 광구 개발을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중소 광산 업체의 이탈이다. 원광석을 제련해 정광으로 만들기 위한 전기 등의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인도네시아 정부가 원하는 제련소 건설이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사업을 중단하거나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에서 니켈 체굴 광산업을 운영하는 한 광산업자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원광석 수출 금지로 2014년부터 사업을 잠정 중단했다. 제련소 건설은 둘째 치고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지역에 발전소를 개별적으로 지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대표는 “중소업체가 광산이 있는 오지에 제련소와 발전소를 만들기는 불가능하다”며 “현재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있는 대부분의 중소 광산업체들이 사업을 중단 또는 철수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또 있다. 해외투자 기업들의 이탈로 생긴 공백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것. 실제로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해 9월 새로 추진하거나 투자 기업들의 이탈로 생긴 석유·천연가스 광구 개발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15개 광구를 입찰에 부쳤지만 낙찰자가 나오지 않았다.
“돈이 안 된다” 인도네시아 떠나는 기업들
◆ 제약·의류 제조업 공장도 이탈 가속화

그런가 하면 인도네시아 정부의 자국 보호 정책으로 제조·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외국계 기업의 이탈 현상까지 이어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글로벌 제약사들의 이탈이다. 잇따라 공장을 철수하고 있다.

지난해 산도스는 인도네시아 공장 노동자 300명 중 200여 명을 해고했다. 노바티스도 300명 중 100명을 해고했다. 또한 사노피-아벤티스, 머크와 GSK, 존슨앤존슨 등이 정리해고 혹은 공장 폐쇄 결정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그동안 자국 산업 발전을 위해 현지 생산을 하는 제조자에게 원재료를 수입할 수 있는 권한과 함께 생산업체에 추가 인센티브를 부여해 왔었다.

하지만 정부가 보호정책의 일환으로 수입 규제 정책을 추진하면서 수입 원재료에 대한 높은 관세를 부과하자 철수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외국 기업 이탈 현상은 의류 가공·제조 산업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 한인봉제협의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북부 까벤 지역의 내년 최저임금이 전년 대비 8.25% 오른 335만 루피아(약 29만4000원)로 결정됐다.

지난해 11% 인상에 이은 추가 상승이다. 올해 최저 임금 7.7% 상승이 결정된 베트남보다 여전히 높다. 인도네시아의 평균 최저임금은 3년 사이 무려 50%, 2011년 대비 두 배 정도 올랐다.

이 때문에 값싼 노동력을 보고 이곳에 진출한 의류 봉제, 신발 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현재 국내 기업 중 세아상역·한세실업·한솔섬유·노브랜드·신성·신원 등 300여 개 기업들이 이곳에 의류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수출 공장을 가동 중인데, 수년째 인건비 상승으로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 기업들은 인도네시아를 대체할 투자처 물색에 급히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여건이 좋지 않은 인도네시아를 떠나 베트남 등지로 공장을 옮기는 기업도 늘고 있다.

현지 사정에 정통한 한 교민은 “최근 들어 인도네시아 공장을 베트남으로 옮기거나 베트남에 별도 공장을 세우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해외투자 기업의 이탈은 인도네시아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의 감소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발급한 외국인 임시 체류 허가 건수는 2013년 19만4192건에서 2015년 17만1944건으로 감소한데 이어 지난해 상반기에는 7만2399건에 그쳤다.

이에 따라 수도 자카르타와 원자재 생산 중심 도시들에서는 고급 주택과 고가품 시장이 위축되고 국제학교들이 잇따라 문을 닫는 등 종전과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 가정에 운전사나 가정부·유모 등으로 취업해 생활해 오던 서민들도 실업난에 직면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부동산 시장의 타격을 줄이기 위해 외국인의 주택 구매를 일부 허용하는 등 방안을 내놓았지만 당장은 효과가 없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인도네시아 정부가 외국 기업에 문을 연다면서도 보호주의적 정책을 도입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 때문이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돈이 안 된다” 인도네시아 떠나는 기업들
(사진)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 ‘이제 그만 나가’ 3년 만에 규제 풀리나

인도네시아 정부는 외국 에너지 업체들의 이탈이 본격화돼 우선 주력 사업이었던 원광석에 대한 수출을 임시로 허용하는 새로운 법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인도네시아 정부가 추진했던 원광석 수출 금지를 3년 만에 철회하게 되는 셈이다.

사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다국적기업들에 의한 자원 광물의 무분별한 수출을 막고 자국 내 광물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준비해 왔다. 2009년 ‘광물과 석탄 채굴에 관한 법령(2009년 4호)’을 제정해 발표하고 일종의 유예기간까지 부여했던 것.

제련 시설에서 가공되지 않은 원광의 수출을 금지하지만 인도네시아 국내 제련소 시설 부족과 제련소 건설 인프라 부족 문제로 5년의 유예기간을 둬 2014년부터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유예기간이 끝나는 시점이 임박해도 기업들의 제련소 건설이 지연되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세수 감소와 그에 따른 재정 적자 악화를 우려해 2014년 1월 이 법안의 개정안인 ‘광물과 석탄 산업 경영 규제(2014년 1호)’를 본격 시행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17년, 외국 투자 기업의 이탈이 심화되자 인도네시아는 결국 다시 유예기간이라는 카드를 꺼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이그나시우스 조난 인도네시아 에너지광물자원부 장관은 “인도네시아 부처 간에 수출 금지 조치를 완화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고 인도네시아 언론사인 자카르타포스트에 새로운 광물법 초안이 입수돼 공개되기도 했다.

새로운 광물법 초안에 따르면 향후 5년 안에 자체 제련 시설이나 용광로를 갖추는 조건으로 광물 수출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단 제련소 건설을 진행하지 않으면 수출 허가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히 부분 가공되거나 가공되지 않은 니켈·보크사이트·양극슬라임·텔루륨동도 해외 수출이 가능하게 되며 가공하지 않은 금·은·주석·크로뮴은 계속 수출 금지 대상이 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에서 광산을 운영 중인 한 기업의 대표는 “완화된 새 개정안이 발효되면 주요 광산 업체들의 숨통이 조금이나마 트일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중소 업체들은 제련소 건설을 추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지난 3년간의 상황보다는 확실히 좋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직 인도네시아 정부 측이 개정안에 대해 정식 발표하지 않은 상황이므로 우리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cw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