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품질은 물론 사회적 의미 반드시 갖춰야 기업 성장 가능
유럽의 핫 트렌드, ‘착한 소비와 개념 소비’
(사진) 코스메틱 브랜드 '스톱더워터 와일 유징미'는 제품을 통해 물을 아끼는 생활 습관을 갖도록 유도한다. /스톱더워터 공식 홈페이지

[한경비즈니스=김민주 객원기자]유럽에선 소비자들의 착한 소비를 이끄는 기업이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제품을 구입하면서 사회적 명분까지 얻는 이른바 ‘코즈 마케팅(cause marketing)’이 여전히 핫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2011년 세계 물의 날에 론칭한 독일 코스메틱 브랜드 ‘나를 사용하는 동안 물 끄기(Stop The Water While Using Me!, 이하 스톱더워터)’는 그 직설적인 회사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물 절약 캠페인을 기업 활동의 전면에 내세운다.

이 브랜드의 제품을 통해 물을 아끼는 생활 습관을 갖도록 유도하며 제품 구입이 물 부족 국가 시민을 돕는 기부로 이어지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소비가 물 부족 국가를 돕는다

스톱더워터는 독일의 디자인 에이전시 코레페(Korefe)의 크리에이티브 부서에서 처음 만들었고 현재는 34세의 젊은 여성 기업인 카야-라인 크누스트가 대표직을 맡고 있다.

독일 북부의 히피 공동체에서 성장한 그는 음식이든 옷이든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을 자급자족하며 살았던 배경 때문에 ‘날것 그대로’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크누스트 대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물은 삶의 본질이며 귀중한 자원인 만큼 보호해야 한다”며 “우리의 활동을 통해 물 부족과 가뭄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일상 속 사소한 습관의 변화를 통해 얼마든지 물을 아낄 수 있다며 자신들의 브랜드가 소비자의 행동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독일 함부르크에 기반을 둔 스톱더워터는 샴푸·샤워젤·보디로션·비누 등 욕실 용품을 주로 생산한다. 이 브랜드의 제품들은 패키징에서부터 기성 제품들과 확연히 다른 행보를 보인다. 별도의 디자인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용기의 표면에 검정 잉크로 ‘나를 사용하는 동안 물 끄기’라는 회사명을 크게 써놓은 것이다.

최근 유행하는 미니멀리즘 스타일이다. 화려한 문구로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대신 소비자들이 해당 제품을 사용하는 내내 물 절약을 떠올릴 수 있는 데에만 집중했다. 친환경 기업의 제품답게 해당 용품들은 천연 재료들로만 제작됐다.

제품들은 함부르크와 독일 남부에서 생산되며 100% 생분해성 원료로 만들어져 물에 부어도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다. 용기 또한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를 사용한다.

스톱더워터는 욕실 용품을 만드는 기업인 만큼 론칭 초기부터 지역 호텔들을 자신의 캠페인에 동참시킬 계획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보다 호텔에서 물을 더 많이 쓴다는 점에 착안해 숙박 시설에 이를 비치해 두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론칭과 맞물려 독일의 유명 호텔 체인인 25아워스(25Hours)호텔의 대표가 이들의 발상에 공감하며 욕실 제품을 스톱더워터로 교체했다. 그 역시 지나친 물 소비를 심각한 문제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독일을 넘어 벨기에·영국·네덜란드·스위스·이탈리아 등 유럽 내 많은 호텔들도 이 제품으로 투숙객을 맞고 있다.

스톱더워터는 물 사용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과 함께 물 부족 국가를 돕는 일에도 적극 동참할 수 있도록 기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브랜드는 2014년부터 아프리카 지역에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글로벌 기부 사업인 ‘좋은 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소비자가 온라인 숍을 통해 스톱더워터의 제품을 구입하면 그 돈의 일부가 식수 사업에 사용되도록 하고 있다.

첫 프로젝트는 비영리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탄자니아에 안개 그물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스톱더워터는 공기 중의 안개가 그물에 맺히면 이를 풀어 물로 변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자 물탱크에 매일 1000리터의 식수가 생겼다. 먹는 물을 해결하는 것은 더 큰 효과를 낳았다.

물을 저장할 수 있게 된 학교가 학생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면서 학생들이 학교에 더 오래 머무르며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여자 아이들도 마실 물을 구하기 위해 먼 거리를 걸을 필요가 없어졌다. 스톱더워터는 이처럼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하는 착한 소비를 해달라고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세제 구입으로 경험하는 ‘개념 소비’

사회적 기업들의 활동이 유난히 활발한 네덜란드에서는 착한 소비를 유도하는 기업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20대의 경영학도 두 명이 만든 친환경 세제 기업 세이피여(Seepje)다.

이는 비누를 뜻하는 네덜란드어 ‘제이프(zeep)’를 귀여운 어감으로 만든 말이다. 소비자들은 이 세제를 구입함으로써 환경오염을 막고 네팔 노동자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해 주는 일에도 동참하는 등 개념 소비를 경험할 수 있다.

올해 25세인 젊은 창업가 야스퍼와 멜빈은 2014년 히말라야의 과일로 만든 세제 브랜드를 론칭했다. 두 사람은 한 TV 프로그램에서 과일 껍데기로 옷을 빨고 있는 네팔 여성들을 보며 사업의 영감을 얻었다.

이 여성들이 사용한 것은 무환자나무(soapberry) 열매다. 이 나무는 중국 남부·대만·히말라야·인도 북부에서 주로 자라며 껍데기가 물에 닿으면 천연 비누 성분인 사포닌이 생성된다.

네팔로 현지 조사를 떠난 야스퍼와 멜빈은 네팔인들이 이 열매 껍데기를 짜내 세제로 사용하고 심지어 머리를 감거나 피부를 치료할 때도 요긴하게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들은 무환자나무 열매를 사용한다면 화학 세제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이들은 과일 껍데기를 벗기는 농부인 하리 씨와 현지 파트너 계약을 하고 재료를 공급받고 있다.

세이피여는 현지 노동자를 30명 이상 고용하고 있다. 세이피여는 네팔인들에게 보다 개선된 노동·생활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정기적으로 안전 교육을 실시했고 생활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만큼의 임금을 지불했다. 남녀 간의 임금 차등을 두지 않았고 모든 계약을 문서화했다.

이와 함께 네팔에서 생산, 제조된 껍데기의 포장은 네덜란드 아른헴 지역의 장애인 지원 단체 시자(Siza)에 맡겨 자국 내 장애인들의 고용 증진에도 힘쓰고 있다. 세이피여는 품질과 기업의 정신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네덜란드와 벨기에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