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가격으로 필리핀 가기’, ‘필리핀 어학원, 선착순 10명에게 득템의 기회’ 등‘필리핀 전문’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는 유학원들의 홈페이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문구들이다. 이들이 하나같이 ‘가격’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는 이유는 필리핀 어학연수의 가장 큰 장점이 ‘저렴한 가격’으로 손꼽히기 때문.

물론 적은 비용으로 연수를 떠나 영어 실력을 높이고 올 수 있다면야 금상첨화.
하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학생들을 현혹시킨 뒤 돈만 받아 챙기는 악덕 필리핀 유학원들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최근 들어 해외연수 관련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2월 한국소비자원에서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해외연수 관련 소비자 피해는 총 203건 접수됐으며, 2013년에만 84건이 접수돼 전년(53건) 대비 58.5%나 증가했다. 특히 어학연수 피해는 2013년에 전년보다 3배나 증가했다. 그중 가장 많은 피해 사례로 꼽히는 것은 ‘필리핀 어학연수’다. 2011년부터 3년간 어학연수 피해 사례 통계를 살펴보면, 총 56건의 피해 사례 중 필리핀 어학연수가 20건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미국, 호주, 캐나다 등의 어학연수에 비해 짧은 기간 저렴한 비용으로 영어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한때 국내에는 ‘필리핀 어학연수 붐’이 일었다. 이 시기 ‘필리핀 전문 유학원’이라 간판을 내건 유학원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경제 불황과 필리핀 내 자연재해 등의 사정으로 최근 필리핀 유학 시장은 과거와 같은 호황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일부 유학원들은 생존을 위해 필리핀 어학원에 과도한 광고비를 요구하거나, 최악의 경우 학생들의 등록금만 받아 챙긴 뒤 잠적하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


실제 가보니 열악한 환경에 프로그램 질은 ‘꽝’
A군은 필리핀 유학원에서 저렴하고 시설 또한 좋다는 한 어학원을 추천받았다. 다른 곳보다 저렴한 가격에 솔깃해 바로 등록을 결정했다. 들뜬 마음으로 필리핀 현지에 도착했는데 이게 웬걸. 시설은 한국에서 보았던 브로슈어의 사진과는 완전히 딴판이었고, 프로그램의 수준은 너무 낮았다. 유학원에 항의를 해보았지만 “우리도 현지 상황을 잘 몰랐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A군은 울며 겨자 먹기로 4주간의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친구들에게 “필리핀 어학연수는 절대 비추”라고 말하고 있다.

필리핀 어학연수를 다녀온 이들 중 일부는 ‘싼 게 비지떡’이라며 필리핀 어학연수를 극구 말리고 있다. 유학원에서 홍보한 내용과 달리 터무니없이 열악한 환경과 낮은 수준의 커리큘럼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 조사 결과에서도 어학연수 개시 후 피해 사례 중 ‘당초 설명과 프로그램 내용이 상이’한 경우가 58건(67.5%)으로 가장 많았다. 왜 유학원에서는 굳이 프로그램이 엉망인 어학원을 소개해주는 것일까?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광고비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유학원도 그러한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유학원에서는 광고비를 많이 제공한 필리핀 어학원을 주력으로 홍보한다. 하지만 많은 광고비를 주는 곳은 신생 어학원인 경우가 대부분. 문제는 이러한 신생 어학원들은 아직 자리가 잡혀 있지 않은 상태라 프로그램이나 시설적인 면에서 수준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학원에서는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좋은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어학원보다도 광고비를 많이 지불한 신생 어학원을 과대 포장해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있다.

혹은 유학원에서조차 모르고 있던 경우도 많다. A군에게 어학원을 추천했던 유학원 담당자의 “우리도 현지 상황을 잘 몰랐다”라는 말은 정말 사실인 것. 많은 유학원에서는 현지답사 없이 필리핀 어학원에서 보내주는 자료만 가지고 모집 안내를 한다. 업계 관계자 K씨는 “필리핀 전문 유학원에 근무하는 상담사 중에는 한 번도 필리핀에 가보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보내주는 자료만 외워 홍보하기 때문에 현지 사정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는 것. 이 때문에 필리핀 어학원이 과대 포장해 홍보하는 자료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지 못한 채,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달해 피해가 커지고 있다.


어학연수 등록금 다 지불했는데, 어학원은 어디로?
B양은 지난해 여름 지인을 통해, 유학원을 운영한다는 C원장의 메일 주소를 받았다. 필리핀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아 직접 만나기 어려우니 메일로 연락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C원장에게 메일을 보내자, 그는 ‘4주 코스 144만 원’이라는 필리핀 어학연수 견적을 보내줬다. B양은 바로 C원장에게 등록금을 보냈다. 하지만 등록금이 입금되자 C원장과의 연락은 힘들어졌다. 약속했던 출국일이 되었지만 항공권은 받을 수 없었다. B양은 계속해서 연락을 피하던 C원장에게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제야 그는 “현지 상황이 좋지 않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답장을 보내왔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B양은 어학연수를 떠나지 못했고 등록금도 환불받지 못했다.

유학원 사기 피해의 가장 심각한 사례는 B양처럼 등록금 전액을 납부했지만 어학연수를 떠나지도 못한 경우다. 유학원에서 학생들의 등록금만 받아 챙긴 뒤 잠적해 버리는 것. 최근 경제 불황으로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 유학원이 늘고 있어 이 같은 피해도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 K씨는 “보통 유학원에서는 한 달에 30명 이상의 어학연수를 진행해야 사무실 임대료를 내고 유학원을 유지할 수 있는데, 현재 유학 시장의 상황이 좋지 않아 그만큼의 성과를 내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슈체크] 내 등록금을 찾아주세요 필리핀 유학원 주의보
어학연수를 무사히 떠난 뒤 갑작스레 날벼락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유학원에서 등록금을 받은 뒤, 필리핀 어학원으로 전액 입금을 하지 않는 것이다. 유학원에서는 어려운 자금 사정을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먼저 충당한 후, 필리핀 어학원에는 “분납으로 입금하겠다”고 통보한다. 그러다 유학원이 문을 닫을 경우, 어학원에서는 “학비를 받지 못했다”며 학생을 내친다. 학생들은 이 같은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갑작스레 쫓겨난 뒤 보상받을 곳을 찾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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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어학연수, 제대로 다녀오려면
한국소비자원에서는 어학연수 피해 사례를 줄이기 위해 사업자의 허위·과장 광고에 현혹되어 계약서 작성 없이 대금만 결제하지 않을 것을 당부했다. 귀찮다는 이유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피해를 입었을 때 보상받는 것이 더욱 어렵기 때문에 계약서를 필히 작성한 후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연수 희망 국가의 생활환경, 문화 등에 대해 사전 정보를 숙지하는 것도 필수다. 필리핀 어학연수를 준비하면서 필리핀에 대한 기본 지식 없이 무작정 유학원을 찾아가 저렴한 가격만 따지고 있으니 피해를 입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제대로 된 상담을 받기 위해서는 본인이 연수 계획을 먼저 세우고, 사전 조사를 한 뒤 유학원을 찾아가 제대로 된 정보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해외연수 관련 피해 발생 시, 당사자 간 해결이 어렵다면 소비자상담센터(국번 없이 1372)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글 박해나 기자|참고도서 〈유학원이 알려주지 않는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