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로심리학으로 본 직장인 사이코패스

사이코패스(psychopath)의 한국어 번역은 정신병질자(精神病質者)로, 일본과 같은 한자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언론에서 영어 명칭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어 그 쪽이 더 익숙하게 들리는 듯하다.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된 지 아직 100년도 되지 않은 사이코패스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 사이코패스는 사고방식이 다르다 = 2008년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남자 대학생 중 사이코패스 성향을 묻는 설문지를 작성하게 한 다음 즐거운 표정과 슬픈 표정을 한 남성과 여성들의 사진을 다양하게 보여주었다.

각 사진에는 그 사람의 소득수준도 설명돼 있었다. 놀랍게도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할수록 슬픈 표정의 여성, 그중에서도 저소득층 여성의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해 내는 경향이 있었다.
잡아먹기 쉬운 사냥감을 찾는 짐승의 사고방식과 닮아 있다는 것이 연구자의 해석이었다.

2009년의 또 다른 연구에서 사이코패스 성향의 어린이와 그렇지 않은 어린이에게 무표정·분노·슬픔 등의 감정을 띤 얼굴 사진들을 번갈아 보여주고 뇌단층촬영(fMRI)을 한 결과 사이코패스 성향의 어린이들이 감정적인 반응이 약했고 편도체의 활동도 적었다.

즉, 이들은 타인의 감정을 느끼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사이코패스가 정신분열증과 비슷한 유형의 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큰 오해다. 환각이나 환청을 경험해 사고를 일으키는 정신분열증 환자와 달리 사이코패스는 어느 정도의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하다.

2008년 말 서울시 논현동의 한 고시원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사람들을 미리 준비한 흉기로 찔러 13명의 사상자를 낸 정모 씨나 자신의 금전적·성적욕망을 채우기 위해 계획적으로 아내를 생명보험에 가입시켜 살해한 뒤 그 돈으로 구입한 고급 승용차로 여성들을 납치·살해한 강호순 등은 모두 범죄 동기는 일반인이 납득하기 어려워도 범죄의 실행 절차는 치밀하고 냉혹했다.

이들보다 덜 극단적인 사람들이 회사에 있다고 한다면? 직장에서 어떤 동료나 하급 직원이 더 손쉬운 ‘먹잇감’일까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발견 즉시 접근해 친한 척하면서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도록 인간적 관계를 만들려고 할 것이다.

또 ‘눈먼 돈’이 있다고 판단되면 회계장부를 약간 조작해서라도 가져다 쓰는데, 보통 저축하기보다는 유흥비로 탕진한다. 이것은 사이코패스들이 쾌락 추구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리고 부정이나 업무상 실책이 드러나면 끈질기게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다가 더 이상 발뺌할 수 없게 되면 잠적하는 등 상식적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책임을 회피한다.

자기 정당화의 측면에서 사이코패스는 어떤 사고 구조를 가지고 있을까. 사이코패스들은 어떤 잘못이나 실패를 타인의 탓으로 돌릴 때 이를 본인이 실제로 믿는 경향이 강하다.

가상적인 예를 들어 사이코패스인 당신의 새로운 상사가 오늘 사장단 회의에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늦게 제출한 것은 자신이 회의 1시간을 남겨두고 늦게 지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그 자료를 제때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발목을 잡기 위해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자신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기 때문에 이 해석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면 그로서는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사보타주를 감행하는 당신에게 선제 타격을 가할 필요성이 생긴다. 제거 대상에게 인정을 보일 필요는 없다. 그 결과 사장단 회의가 끝난 순간부터 당신은 죄도 없이 생지옥에 떨어지는 경험을 맛보게 된다.

당신이 인간으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굴욕적인 태도로 잘못을 빌거나 그 부서를 떠날 때까지.
경쟁 부추기는 조직, 사이코패스 키운다
◇ 현대 기업은 사이코패스의 양성소 = 조엘 베이칸(Joel Bakan)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법학과 교수는 법률상 기업을 사람(법인)으로 본다는 점에 착안해 기업들의 ‘인격적인 특징’을 분석한 결과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도덕적 관념이 없고 무책임한 측면 등이 사이코패스를 닮아 있다고 2004년에 발간한 저서 ‘기업: 병적인 이윤과 권력의 추구’에서 밝히고 있다.

이렇게 기업 자체가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띠고 있을 때 기업을 이끌고 나갈 최고경영자(CEO)나 중간 관리자들이 사이코패스적인 기질을 보이는 것이 승진 등에 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물며 단순히 몇 가지 기질만 보이는 사람보다 애당초 타고난 사람이 더 유리한 것 또한 당연하지 않을까. 이는 당초 수감자를 대상으로 사이코패스 연구를 시작했던 로버트 헤어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교수도 느끼는 부분이었다.

헤어 교수는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현대 문화가 사이코패스의 자기중심적 거만함을 자신감으로, 무자비함을 용기 있는 과감함으로 곡해해 이들이 활개 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헤어 교수의 지난 10여 년간의 연구도 범죄자인 중증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기업에 기생하고 있는 중간 수준의 사이코패스 회사원들로 초점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런던대학의 에이드리안 펀햄(Adrian Furnham) 교수는 2002년도 미국 기업의 생산성 축소의 요인으로 직원의 횡령이나 절도 행위 등 사내 인력의 부도덕 행위에 의한 것이 48%나 차지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들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2007년 학회에서 ‘독성 간부(toxic manager)’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경쟁자(기업)를 무자비하게 제압하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적인 사이코패스의 특성은 기업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양심이나 도덕적 규범을 따를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므로 기업으로서는 사이코패스 사원에 의한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 손해가 더 클 수 있다.

◇ 섣부른 예단은 절대 금물 = 누구도 ‘나는 사이코패스’라고 선전하고 다니지 않으며 당사자 본인도 자신이 남들과 어딘가 다른 것 같다고 생각하는 정도일 뿐, 명확하게 사이코패스라는 것을 인지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본인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결국 면밀한 관찰과 그에 따른 차분한 대응이 최선의 보호책이 될 것이다.

필요할 때만 친한 척하고 필요가 없어지면 안면 몰수하는 것은 내면적인 깊이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본능적으로 재빨리 알아채는 것은 눈치가 빠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신의 작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타인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는지 신경을 쓰지 않는 태도는 성격 자체가 무심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직장 동료나 상사가 ‘약식 사이코패스 직장인 테스트’에 소개된 특성을 두어 가지쯤 가지고 있다고 해서 성급하게 ‘역시 사이코패스였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비전문가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이며 위험천만한 행동이기도 하다.

단순히 성격이 나쁜 사람은 최소한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 것을 가슴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갱생의 여지가 있다. 반면 태생적으로 반사회적인 사이코패스는 머릿속으로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 다른 사람(일반인)들은 이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반응하더라’고 생각해야 한다.

도덕이나 윤리를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를 자발적으로 지키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른다.

인사 담당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사이코패스 성향은 10여 분간에 걸친 면접에서 인지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거만과 패기가 구분되지 않는다고 신입 사원을 모두 소심한 성격의 사람으로 뽑을 수는 없으니까.

국내 굴지의 제약 회사는 인성을 보기 위해 고교 생활기록부 사본을 입사 지원 서류에 첨부하도록 한다는데, 이런 접근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고교 시절은 교사가 1년간 성인이 다 된 학생을 관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1년간 지내면서 다소 부정적인 면을 봤다고 생활기록부에 혹평을 쓰는 교사도 없겠지만, 사이코패스 같은 인성 장애가 있다면 이를 기록에 남기지 않는 교사 역시 드물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가 사이코패스일까 두려워졌다면? 과거에 영화 속 주인공의 역경을 보고, 또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의 어려움을 가슴으로 함께 느끼면서 눈물이 핑 돈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라. 그런 감정이입을 느껴보았다면 안심해도 된다. 적어도 당신은 사이코패스가 아닐 것이기에.

경쟁 부추기는 조직, 사이코패스 키운다
박병호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


약력 : 1970년생. 93년 고려대 전산과학과 졸업. 1993년 삼성전자 입사. 2006년 미국 인디애나대 박사. 2006년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 2008년 KAIST 경영대 교수(현). KAIST 뉴로 마인드 연구실 운영(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