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 호텔은 남대문 시장과 가까워 쇼핑엔 제격이다.”(미국인 A)

“대림산업 호텔 방에서 여의도 벚꽃 축제를 볼 수 있어 좋다.” (일본인 B)

아마도 2015년 이후라면 한국을 찾는 관광객들끼리 주고받을 법한 대화다.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서울 도심 내 숙박 시설의 공급 부족 현상이 벌어지자 기업들의 뭉칫돈이 비즈니스호텔 사업 쪽으로 대거 유입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통신사·항공사·생활용품 업체 등 타 분야 기업들이 처음으로 깃발을 꽂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기존의 대형 호텔을 운영하던 대기업도‘경제적인’ 관광객의 지갑을 열기 위해 비즈니스호텔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비즈니스호텔은 비즈니스 수요가 많은 도심에 있는 호텔로 식당 등의 부대시설을 최소화하고 객실 위주로 영업하는 호텔이다. 특급 호텔보다 가격을 30% 정도 저렴하게 낮춘 게 특징인데 엄밀히 말하면 버짓(Budget) 호텔이란 용어가 더 정확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말을 기준으로 수도권 호텔 수요는 3만6378실이지만 공급은 2만8046실(객실 가동률 80% 기준)이어서 외래 관광객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돈맥’을 좇는 기업의 입장에선 ‘관광객 연 1000만 명 시대’의 호재를 놓칠 리 만무하다.

우선 담배와 인삼 사업이 주력인 KT&G는 2015년까지 서울 남대문시장 인근에 특2급 비즈니스호텔(객실 390개 규모)을 짓겠다는 계획안을 지난 2월 서울시에 제출하고 중구청에 건축 인허가를 신청한 상황이다. 통신 기업인 KT도 유동인구가 많은 중구 흥인동의 KT 동대문지점을 비즈니스호텔로 용도를 변경한다.

KT는 자회사인 KT에스테이트를 설립하고 건설·부동산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롯데건설 대표이사 출신의 이성배 최고경영자(CEO)를 영입, 향후 새로운 먹을거리인 부동산 관련 사업을 집중 육성해 KT의 또 다른 캐시카우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대림산업도 올해부터 호텔 사업에 주력할 계획이다. 우선 여의도의 옛 대림산업 사옥 자리에 2014년 3월 준공을 목표로 260실 규모의 호텔 신축 공사를 진행 중이다. 또한 중구의 장교4지구에 2015년 12월 430실 규모의 호텔을 열기 위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향후 을지로 인근과 동대문을 비롯해 강남 지역의 비즈니스 고객을 잡기 위해 테헤란로 부근의 호텔 운영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비즈니스호텔 사업에 뛰어드는 대기업들] 캐시카우 부상…통신·식품 회사도 군침
담배 주력 KT&G도 특2급 신청

대림산업 관계자는 “자회사인 오라관광을 통해 제주 그랜드 호텔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대림그룹 내에서 건설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대림산업이 사업 개발과 호텔 시공에 참여하고 호텔과 리조트 분야를 전담하고 있는 오라관광이 호텔 운영을 맡을 계획이다. 앞으로도 장기적으로 서울에서 약 2000실 규모의 비즈니스호텔을 운영할 계획이다. 비즈니스호텔 사업이 향후 충분히 수익성을 보장한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임대주택 건설의 대표적 업체인 부영건설도 비즈니스호텔 사업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해 삼환기업으로부터 사들인 1700억 원 규모의 중구 소공동 112의 9 일대 토지와 건물에 비즈니스호텔을 짓는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부영의 관계자는 “어차피 주택 임대가 주력 사업인 우리에게 비즈니스호텔 사업 또한 광의의 의미에서 단기 수요를 위한 ‘임대’에 해당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부영은 2011년에 무주리조트를 인수하면서 리조트 내의 티롤호텔을 운영 중이며 제주도의 앵커호텔 인수를 비롯해 서울숲 부지에 호텔을 짓는 방안도 검토하는 등 호텔 사업 확장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삼성화재 또한 인사동 내에 비즈니스호텔을 연다는 계획이다. 2011년 서울 종로구 관훈동 155의 2를 사들인 삼성화재는 풍문여고와 200m 이내에 붙어 있어 학교 인근에 호텔 등 학습 환경을 저해하는 건축물을 세울 수 없다는 학교보건법에 묶여 호텔 건립이 어려웠지만 올 초 중구교육청의 승인을 받은 상황이다. SK네트웍스도 서울 오장동에 비즈니스호텔을 지을 예정이다.

애경그룹 계열의 수원애경역사도 수원역과 AK플라자 수원점 옆 부지에 ‘노보텔 앰배서더 수원(가칭)’을 2014년 7월에 열 예정이다. 마포구청의 한 관계자는 “2010년 마포구에는 관광호텔이 5개였으나 현재는 벌써 10개다. 공덕동·도화동·홍대·상암동 등 공항철도를 따라 비즈니스호텔을 지으려고 기업들의 내방 문의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한편 비즈니스호텔 사업을 추진했으나 고배를 마신 곳도 있다. 대한항공은 경복궁 근처에 7성급 한옥 호텔을 지을 예정이었지만 인근에 덕성여중·고, 풍문여고 등 학교가 세 곳이나 들어서 있어 학교보건법에 발목이 잡혔다. CJ도 지난해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기존의 오피스 빌딩을 비즈니스호텔로 변경하려고 했지만 마찬가지로 학교보건법에 걸려 해당 사업을 접어야 했다.

새로 출사표를 던진 ‘새내기’들의 뜨거운 경쟁도 볼만하지만 대형 호텔 사업자들의 운영 방식 변경도 흥미롭다. 우선 롯데호텔은 일찌감치 비즈니스호텔 사업에 진출했다. 롯데호텔은 2009년 서울 공덕동에 롯데시티호텔마포를 열었고 2011년에 롯데몰 김포공항에 2호점을 냈다.

이 밖에 제주시 연동, 대전 스마트시티, 울산 달동 등의 지방에도 비즈니스호텔 사업을 확장하고 있으며 서울 구로 등 총 6군데에 비즈니스호텔 설립을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외국인 관광객 수요가 특히 많은 명동은 롯데백화점 본점과 호텔이 있는 곳이어서 롯데의 애착이 남다른 곳이다. 2015년 10월을 목표로 을지로2가 사거리 인근 장교빌딩 맞은편에 435실 규모의 롯데시티호텔장교를 열 예정이며 두 달 후에는 명동 하이파킹 주차타워 자리에 272실 규모의 롯데시티호텔명동도 새로 들어선다.


서울 도심 내 숙박 시설의 공급 부족 현상이 벌어지자 기업들의 뭉칫돈이 비즈니스호텔 사업 쪽으로 대거 유입되고 있다.


롯데·신라·조선 … 호텔 빅3도 경쟁 치열

호텔신라도 신라스테이(가칭)라는 비즈니스호텔 브랜드 론칭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직접 건물을 짓고 소유권을 갖는 대신 마스터 리스(Master Lease:장기 임대) 전략을 통해 2020년까지 전국 30여 개의 비즈니스호텔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최근 1년 사이 호텔신라가 펀드·리츠와 손잡고 마스터 리스 계약을 체결한 비즈니스호텔만 서울 7개, 울산 1개 등 총 8개에 달한다.

서울 서초동 뱅뱅사거리 인근 부지, 역삼동 KT영동지사 부지, 서대문 옛 화양극장 부지, 신대방동 옛 중외제약 부지, 도화동 한마음병원 인근 등이 이에 해당하며 지난 2월에는 부동산 개발 업체인 SK D&D와 서울 종로구 수송동의 비즈니스호텔 마스터 리스 계약도 체결했다.

성준원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 수석연구원은 “2013년에 호텔신라는 비즈니스호텔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 2017년에는 20개의 호텔에서 약 250억~300억 원의 위탁 운영 매출이 발생하게 된다”고 전망했다.

신세계 계열 웨스틴조선호텔도 비즈니스호텔 사업에 뛰어든다. 조선호텔은 맥쿼리자산운용이 용산구 동자동에 건립 중인 약 350실 규모 호텔에 대한 20년 장기 임대 계약을 지난해 체결했다.

류광훈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산업연구실 연구위원은 “앞으로도 커다란 외부 환경의 변화가 없는 한 중국 시장과 동남아 시장의 성장이 지속될 것이며 이는 외래 관광객 증가 추세로 이어져 비즈니스호텔 등의 사업여건은 지속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시행된 ‘관광 숙박 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의 영향 등으로 관광호텔의 공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향후 수급 상황을 지속적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