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goods’ 마케팅의 성공]
‘1000억 시장’ 아이돌 상품은 기본…‘문재인 굿즈’까지 등장
소비자 ‘덕심’ 자극하는 굿즈의 세계
(사진) 스타벅스커피코리아가 매년 출시하는 12간지 동물 굿즈(위)와 플래너./스타벅스코리아 제공

[한경비즈니스=김영은 인턴기자] 여행지 기념품·우표·딱지를 수집하거나 빵에 담긴 캐릭터 스티커를 모아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품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자신이 좋아하거나 기억하고 싶은 콘텐츠가 담긴 상품은 모두 ‘굿즈(goods)’라는 개념으로 재정립되기 시작했다.

‘굿즈’를 그대로 해석하면 상품이라는 뜻이지만 한국에서의 ‘굿즈’는 문화 장르 팬덤계 전반에서 사용되는 단어다.

굿즈는 아이돌·영화·드라마·소설·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문화 장르에 소속된 특정 인물이나 그 작품 및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낼 수 있는 모든 상품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즉 굿즈는 모든 콘텐츠가 담길 수 있는 기념품이며 판촉물이자 그 자체로도 상품이 되는 것이다.
소비자 ‘덕심’ 자극하는 굿즈의 세계
(사진)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의 굿즈 / 호해리씨 제공

◆ 굿즈, 콘텐츠 산업 전반으로 확대

한국의 굿즈는 ‘덕후 문화’에서부터 시작됐다. 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표기한 ‘오덕후’에서 온 ‘덕후’는 주로 ‘광팬’ 또는 ‘마니아’라는 뜻으로 쓰인다.

초반에는 주로 연예인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광팬이라는 좁은 의미에서 쓰였던 ‘덕후’가 개성이 뚜렷하고 가치 소비를 즐기는 젊은 세대에게 하나의 주류 문화로 자리 잡게 됐다. 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상품을 수집하면서 새로운 소비 행태를 이끌고 있는데 그 예가 바로 ‘굿즈’다.

굿즈의 시작은 아이돌 ‘팬덤(fandom)’이었다. 팬덤은 거대한 소비 계층으로 가요계의 음원 시장과 공연 매출뿐만 아니라 아이돌과 관련된 모든 파생 상품 매출까지도 책임졌다. 과거에는 가수의 얼굴이 프린팅된 책갈피나 콘서트에서 사용할 풍선·우비 등이 거의 전부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굿즈가 식품·의류에서부터 정보기술(IT) 기기까지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 제품으로 진화했다.

업계에 따르면 아이돌 굿즈 시장은 연간 1000억원대의 매출을 달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음원이나 공연 수익만으로는 어려운 가요계에 새로운 수익 모델로 굿즈가 떠오르면서 엔터테인먼트업계도 몇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굿즈 사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는 2013년부터 본격적인 굿즈 사업에 돌입했다. SM은 롯데영플라자 명동점, 동대문디지털플라자(DDP) 등에서 굿즈 숍을 운영하며 소속 아티스트들을 활용한 다양한 상품을 판매했다.

이후 2015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복합 문화 공간을 지향하는 SM타운을 세웠다. SM의 오프라인 굿즈 숍은 전 세계에서 서울 4곳(SM커뮤니케이션센터 포함)밖에 없어 지방 팬들은 물론 해외 팬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코엑스 SM타운에서 만난 엑소 팬 윤혜인(23·여) 씨는 “SM 굿즈를 살 수 있는 곳이 전 세계에 4곳밖에 없다는 점이 오히려 굿즈의 희소성을 높여주고 굿즈를 구입한 팬의 자부심을 고취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굿즈는 마케팅의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곧 ‘팬심’을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때로는 굿즈의 용도로 나오지 않은 상품도 덕후가 의미를 부여함에 따라 굿즈가 되기도 한다.
소비자 ‘덕심’ 자극하는 굿즈의 세계
(사진) 등산복·넥타이·선거 포스터까지 문재인 대통령과 관련된 모든 아이템이 '문재인 굿즈';라고 불리며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연합뉴스 제공

이제는 아이돌을 넘어 정치권에서도 굿즈 바람이 불고 있다. 얼마 전 ‘문재인 타임지’, ‘문재인 넥타이’, ‘문재인 등산복’ 등 이른바 ‘문재인 굿즈’가 매진을 기록하며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문재인 대통령이 표지를 장식한 타임지 아시아판은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분당 16.6권씩 팔리며 역대 최다 일간 판매량 기록을 세웠다.

책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걸친 모든 아이템도 화제가 됐다. 문 대통령이 북악산 산행 때 입었던 등산복과 야당 원내대표와 회동할 때 착용한 ‘강치넥타이’도 모두 매진됐다.

문재인 대통령 관련 아이템들은 ‘이니굿즈’라고 불리며 아이돌 굿즈 못지않은 인기를 끌고 있다. 젊은 지지자가 많은 문 대통령의 특성상 이례적으로 대통령을 향한 ‘덕질’과 굿즈 문화가 생겨난 것이다.

◆ 굿즈로 ‘덕후’ 양성하는 기업들
소비자 ‘덕심’ 자극하는 굿즈의 세계
(사진) CGV의 포토티켓(왼쪽)과 영화 '미녀와 야수'의 굿즈들/ CGV제공

덕후가 굿즈를 사는 이유는 사용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수집’하기 위해서다. 본인이 좋아하는 콘텐츠와 관련 있는 물건은 효용성이나 합리성보다 그 물건에 담긴 가치와 의미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이돌 시장뿐만 아니라 도서나 영화 등 다른 콘텐츠 업계도 굿즈를 통해 ‘수집’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소비층을 공략하고 나섰다. 콘텐츠를 활용한 굿즈는 그 콘텐츠를 사랑하는 팬들을 공략함과 동시에 굿즈로 인한 새로운 덕후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굿즈 시장은 이미 전성기를 맞았다. 영화 굿즈를 판매하는 플리마켓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굿즈만 따로 제작하는 업체들도 생겨났다.

제작 업체뿐만 아니라 영화사·수입사·영화관 등 다양한 영화 관련 업계에서 굿즈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블루레이부터 에코백·향초·팝콘통 등 굿즈의 스펙트럼도 넓어졌다. 이에 따라 영화업계는 굿즈를 적극 활용한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CJ CGV는 영화 덕후들 사이에서 늘 ‘덕질할 맛 나는’ 굿즈를 내놓기로 유명하다. CGV가 디즈니와 손잡고 지난 3월 선보인 ‘미녀와 야수’ 캐릭터 굿즈도 큰 인기를 끌었다. 엽서·펜·티백·키링·캔들 등 영화의 주요 모티브를 상품화해 ‘굿즈’에 관심이 있는 소비자와 ‘미녀와 야수’ 영화를 사랑하는 팬 모두를 사로잡았다.

그뿐만 아니라 굿즈가 포함된 팝콘 콤보를 구성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다. CGV는 아예 티켓 값에 굿즈가 포함된 ‘스페셜 패키지’ 티켓을 판매하기도 한다. CGV에서 영화 티켓을 포토 카드 형식으로 만든 ‘포토 티켓’도 영화 팬들의 수집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굿즈의 용도로 내놓은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본 여운과 추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 하는 관객들에게 포스터가 프린트된 포토 티켓은 CGV의 가장 상징적인 ‘굿즈’가 됐다.
소비자 ‘덕심’ 자극하는 굿즈의 세계
(사진)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매번 독자들을 사로잡는 굿즈를 내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도서업계에서는 ‘굿즈를 사니 책이 왔네’라는 말이 있다. 예쁜 디자인과 높은 퀄리티로 유명한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굿즈를 두고 독자들이 재밌게 표현한 말이다.

알라딘이 작년 17주년 이벤트로 진행한 ‘고객이 가장 좋아하는 알라딘 서비스 투표’에서도 ‘알라딘 굿즈’가 1위에 올랐다. 굿즈가 알라딘을 대표하는 서비스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굿즈의 인기가 많다 보니 알라딘은 홈페이지에 굿즈 숍 항목을 따로 만들어 굿즈와 함께 책을 판매하고 있다. 알라딘은 일정 금액 이상의 도서를 구매하거나 이벤트 도서를 구매하면 굿즈를 증정하거나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책을 살 때 알라딘을 주로 이용한다는 이성진(여·24) 씨는 “같은 책을 사더라도 굿즈 때문에 알라딘을 이용하게 된다”며 “얼마 전에는 비틀스 노트를 얻으려고 책을 5만원어치나 구입했다”고 말했다. 알라딘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알라딘이 어떤 책의 굿즈를 만들어야 덕후를 양산할 수 있는지 잘 파악하고 있다고 말한다.

◆ 경험과 가치에 대한 소비의 상징
소비자 ‘덕심’ 자극하는 굿즈의 세계
(사진) 스타벅스가 매년 봄을 맞아 선보이는 '체리블라썸' 굿즈(MD상품).

브랜드 자체가 콘텐츠화된 굿즈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도를 높이는 역할도 한다. 지난해 매출 1조28억원을 기록하면서 독보적으로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스타벅스커피가 대표적이다.

스타벅스는 MD(기획) 상품이라는 굿즈를 통해 수익을 내면서도 고객들에게 다른 업체와 차별화된 브랜드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스타벅스는 매년 사계절에 맞춰 진행되는 시즌 프로모션과 주요 기념일에 맞춰 해당 시기에 어울리는 상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프로모션이 한 달 이내에 완판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2014년부터 신년에 선보이고 있는 ‘뉴이어 MD’는 출시 1주일 내에 매진될 정도다. 눈여겨볼 점은 한국이 전 세계 75개국 스타벅스 중 미국 본사를 제외하고 디자인팀을 갖춘 유일한 나라라는 것이다.

로컬 디자인 팀을 적극 활용해 스타벅스의 아이덴티티를 정확히 표현하고 한국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 디자인하는 것이 가장 큰 성공 요인 중 하나다. 스타벅스코리아 관계자는 “다양한 트렌드와 전통문화를 반영한 상품 디자인이 한국에서의 현지화 전략과 조화를 이루면서 많은 호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비자 ‘덕심’ 자극하는 굿즈의 세계
(사진) 스타벅스는 MD상품, 플래너 외에도 매번 다양한 디자인의 충전카드를 선보여 고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스타벅스를 자주 이용하는 고객 윤나영(24)씨는 다른 국가에서 출시하는 카드까지 총 146종을 모아 보관하고 있다./ 윤나영씨 제공.

스타벅스의 다양한 MD 상품은 브랜드 경험을 지속적으로 이어 갈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로 연결되고 있다. 스타벅스는 다양한 굿즈 판매와 별도로 충성심 높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매년 스타벅스 플래너(다이어리) 마케팅도 펼치고 있다.

스타벅스 플래너를 받기 위해서는 프로모션 기간 안에 17잔(시즌 음료 3잔 포함)의 커피를 사 마셔야 한다. 플래너 프로모션 또한 인기 있는 색상은 금방 품절되고 소비자들 사이에서 돈을 주고 거래될 만큼 덕심을 자극하는 굿즈 마케팅이다.

지금 이 시대에 굿즈가 뜨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향은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교수는 ‘가치에 대한 투자’와 ‘의미를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참’을 이유로 들었다.

그는 “소비자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져 물건을 팔 때 단순히 ‘싸다’, ‘합리적이다’라는 것만으로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살 수 없다”며 “잊힐 수 있는 경험과 가치를 기억하고 싶기 때문에 그 기억에 대한 투자로 ‘굿즈’를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치와 경험을 물질화한 상품에 지불하는 것이 바로 굿즈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굿즈가 의미를 함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이 사람을 좋아한다’, ‘나도 이것을 의미있게 생각한다’는 동참이자 표식을 상징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덕심’ 자극하는 굿즈의 세계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