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기업가 정신이 희망이다] 3부 100년 기업을 키우자
-빠른 결단·추진력 등 장점 살려야…영미 모델 잣대로 일방적 비판은 무리
‘오너 경영’이 모든 문제의 근원일까?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기업의 경영 체제는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기업이 사업을 영위하는 분야의 전문가를 영입해 최고경영자(CEO)로 앉히는 ‘전문 경영’ 체제다. 다른 하나는 기업의 최대 주주가 직접 CEO까지 맡아 기업을 이끄는 이른바 ‘오너 경영’이다.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은 대부분 오너 경영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 분위기를 살펴보면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오너 경영인들에게 쏠리는 ‘부의 집중’과 ‘대물림’,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등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 방식은 기업이 선택할 문제

특히 최근 들어 하루가 멀다고 기업 오너 경영인들의 전횡이나 ‘갑질’ 이슈 등이 불거지면서 자연스럽게 오너 경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점차 커지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전문 경영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일고 있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이처럼 오너 경영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지나치게 커지는데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막연하게 오너 경영은 나쁘고 전문 경영은 좋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자본주의에서는 기업이 어느 경영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논의돼서는 안 됩니다. 기업의 경영권도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이건 기업의 선택에 맡겨야 합니다. 오너 경영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는 있어요. 그렇다고 정부나 사회에서 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면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격이 되죠. 또 두 가지 경영 방식 중 어느 것이 더 좋다고 결론 내릴 수도 없어요.”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의 말이다.

그의 얘기처럼 오너 경영과 전문 경영 체제는 누가 나은지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각각 모두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다.


우선 전문 경영 체제를 살펴보자. 전문 경영 체제에서는 뛰어난 경영 역량을 갖춘 이를 선임해 회사를 이끌게 함으로써 기업의 실적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전문 경영 체제로 전환하게 되면 객관적 견제 장치가 갖춰지게 되고 기업 구조가 투명해지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하지만 단점 또한 만만치 않다. 일단 전문 경영인은 임기제로 선임된다. 그러다 보니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추진하기보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실적 향상에 치중할 가능성이 높다. 경영 실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성향을 보일 수도 있다.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했다가는 자칫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큰돈을 주고 전문 경영인을 영입했지만 결과적으로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오너 경영은 주로 가족 단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기업을 이끌 역량이 부족한 이가 경영권을 잡게 될 수도 있다. 또 독단적인 경영이 가능해 경영권을 오·남용할 수 있고 사익 추구 행위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 단점이다.

◆몸에 맞는 옷 입는 것이 중요해

하지만 신속하면서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여러 연구 결과마다 분석이 다르긴 하지만 이런 점에 기인해 경기가 불황이거나 경영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오너 경영이 더 효율적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기도 하다.
‘오너 경영’이 모든 문제의 근원일까?
전문 경영인과 다르게 ‘주인 의식’을 갖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것 역시 오너 경영인이 기업을 이끌었을 때 나타나는 효과 중 하나다. 이처럼 전문 경영과 오너 경영을 서로 비교할 때 어느 쪽이 더 좋은 방식이라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결국 몸에 맞는 옷을 입는 것이 중요한데 한국에서는 전문 경영보다 오너 경영이 보다 적합하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한국 경제를 이룩해 온 밑바탕은 오너 경영의 성과인데 이를 불인정할 수는 없다”며 “삼성이나 현대차 같은 기업들이 지금처럼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오너 경영에서 나타나는 장점인 빠른 결단과 추진력이 밑바탕이다. 한국 정서와 맞는 기업 형태를 구축하며 성공했고 그 방식이 지금까지 잘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병태 교수는 “전문 경영인이 더 나을 수 있다는 평가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간과한 것일 수도 있다”며 “대한민국은 오너 경영이 압도적으로 성과를 잘 낼 수밖에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 오너가 없는 공기업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정권을 잡는데 도움을 줬다고 전문성 없는 이를 사장에 앉히는 일이 빈번하다. 주인 없는 기업들도 전문 경영인이 노조와 결탁해 회사가 부실해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곳도 많다”고 지적했다.

국내 주요 투자자들의 생각도 이들의 견해와 비슷하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지금도 주주들이 힘을 모아 오너 경영자의 경영권을 빼앗을 수 있는 기업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며 “기업을 이끌어 온 오너가가 물러나면 해당 기업의 주가가 크게 떨어지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많은 오너 경영자가 그간 기업을 잘 이끌어 왔고 미치는 영향력 또한 막대하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국내 기업들의 오너 경영 체제가 마냥 옳다는 것은 아니다.

안 본부장은 “국내 오너 경영 체제를 들여다보면 경영진을 대표하는 대표이사가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이사회 의장까지 겸직을 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감사위원회도 경영진의 입김이 작용하는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것이 일반적이다. 경영자에 대한 제대로 된 견제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외국계 투자자들이 국내 기업들의 주주총회에 개입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움직임도 이런 구조 때문이라고 그는 분석한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들은 경영권 소유권이 분리됐다. 경영자들이 경영하지만 외부 투자자들이 경영진을 견제한다. 이런 모습에 익숙한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기업의 구조를 보면 이해가 되지 않고 생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국 잡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한국형 지배 구조에 대한 구체적인 모듈 도출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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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잊힌 ‘기업가 정신’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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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모험이 혁신을 부른다’…다시 읽는 슘페터와 드러커
②재도약의 성장 엔진 ‘기업가 정신’
-“CEO 되는 법이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다는 걸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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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가치 1조’ 스타트업 성공 신화를 쓴 창업자들
③100년 기업을 키우자
-‘오너 경영’이 모든 문제의 근원일까?
-‘문 닫는 장수 기업들’…높은 상속세가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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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제2 창업’ 나선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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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7호(2019.03.25 ~ 2019.03.3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