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허우적거리고 있다. 빈사상태에 빠진 시장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이미 자생력을 잃은지 오래다.종합주가지수를 보자. 지난 80년대 후반 「3저(유가·국제금리·환율)」의 호황을 밑거름 삼아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 89년 4월 대망의 1천선을 처녀비행했던 기억도 아련할 뿐이다. 이내 시장은 대세하락으로 접어들어 92년 8월의 4백58까지 반토막이 나야 했다.시쳇말로 주식을 「빨리 사」라는 「8.24 증시종합대책」이 나오던 때였다.물론 달이 차면 기울듯 내린 종합주가지수는 다시 상승가도를 달려94년 9월엔 네자리수시대를 맞아 11월 8일엔 1천1백38까지 올랐다.이어 잠시 조정을 보였지만 95년 10월엔 1천선을 밟았다.그러나 이게 또 문제다.전체 지수는 올랐다고 하지만 일반서민들이느끼는 주가수준은 기껏 6백선이나 7백선에 머물렀던 탓이다. 당시시장을 주도했던 것은 삼성전자를 필두로한 블루칩(대형우량주)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많이 보유하고 있는 중소형주들은 오히려 내림세를 보이기 일쑤였던 것이다. 경기양극화를 본딴 듯 주가양극화현상이 극으로 치달았다.때문에 종합지수가 다시 네자리수를 맞았느니 해도 일반인들에겐사치스런 말장난이나 다름없었다. 80년대 후반을 풍미하며 일반인들이 톡톡히 재미를 보았던 트로이카(금융·건설·무역)주들도 마찬가지다.종합주가지수가 93년 10월이후 2년10개월만에 다시 7백50선으로 되밀린 지금에 와서도 92년 8월의 대세바닥 때의 주가를 밑도는 종목이 무려 1백88개나 된다.아직도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당시 상장종목 5개중 1개꼴이라는 얘기다.특히 증권주나 은행주들의 주가는 명함을 내밀기가 쑥스러울 지경이다. 요즘 일반인들의 체감지수는 5백선을 밑돈다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3년간 주식시장 공급물량 절반은 정부몫이미 자생력을 잃은 증시는 그야말로 손만 대도 푹하고 쓰러질 지경이다. 주식수요가 워낙 취약해 제한된 매수세가 움직일 수 있는곳은 소형 개별종목들밖에 없다는 인식에 소형주들이 상대적인 상승세를 보였지만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다. 지난 8월 28일 1백63개의 하한가 종목중 무려 1백54개가 소형주였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그나마 지수를 떠받쳐 주는 것은 대형주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이사실이다. 대형주 주가가 하방경직성을 보인다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올들어 8월 28일까지로 보면 대형주들은 시가총액기준으로 연초보다 22%나 떨어졌다. 같은 기간에 중형주들은 11.2% 하락에 그쳤고 소형주들은 오히려 3.1% 올랐다.대형주 움직임의 대표주자인 삼성전자는 지난 8월 26일엔 하한가를기록하면서 연중최저치로 미끄러졌다. 지난 2월 1일만 해도 14만원대였던 이 회사의 주가가 6만원대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추락한 것이다. 작년엔 2조5천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상황이 딴판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주가하락의 가장큰 요인이다. 올상반기 순이익은 작년상반기보다 60%나 줄어든 4천5백억원에 그쳤던 것이다.◆ 그렇다면 주식시장이 이토록 비틀대는 이유는 무엇일까.우선은 실물경기다. 주가는 경제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불리듯이 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경제의 건강상태라고 할 수있다. 경기가 한풀 꺾이고 경기바닥이 언제쯤일는지도 예측불허인상황에선 주가가 다시 크게 오르기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주가는경기에 6개월정도 선행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이미 올상반기중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은 7.3%로 작년 같은 기간의 9.8%에서 뚝 떨어졌다. 특히 올 2/4분기엔 6.7%로 추락해 경기연착륙에 대한 우려감마저 자아내는 실정이다. 12월결산 상장사들의 올상반기 매출액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17.7% 늘어났지만 반기순이익은 39.4%나 줄어들어 3년만에 처음으로 감소한데서도 경기부진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더구나 이같은 실물경기의 둔화는 수출부진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엔화대비 달러화의 강세가 지속되면서 우리나라의 수출경쟁력이 떨어진데다 반도체같은 부문에선 공급초과에 따른 수출단가하락현상이 뚜렷하다. 수출이 여의치 않아 올해 경상적자 규모는당초 정부의 연간예상보다 4배로 불어난 2백억달러로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경상적자는 시중의 유동성을 떨어뜨려 전반적인 주식매수세를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자금시장 또한 만만치 않다. 주식시장이 침체국면을 보이자 유상증자 등을 통해 조달할 수 있는 자금규모가 줄어들어 기업들은 은행이나 콜시장을 통해 자금마련에 나서고 있다. 게다가 자금수요가집중되는 추석을 앞두고 있어 돈을 미리 마련해 두려는 자금가수요현상마저 일어나 시중실세금리가 완만한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과연 이같은 거창한 거시경제 요인들 뿐일까. 그동안 일반투자자들이 증시에 「환멸」을 느끼며 떠나갔던 이유는 무엇일까.이같은 의문이 던져지면 자연히 정부의 증시정책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3년간 주식시장에 풀린 공급물량의 절반가량이정부몫이었다는 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바로 공기업민영화라는 명목으로 공급된 물량이다.◆ 투신사, 신설투신 제외하고는 관망세기업들이 재투자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유상증자 등을 통해 공급한물량이라면 그래도 해당기업의 향후 성장성을 뒷받침하기에 주가엔오히려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문제는 정부가 비싼값(시가)에 주식을 팔아 그 자금을 딴 곳에 썼다. 증시에서 벌어들인 돈이 주식시장에 재투자된다면 증시유동성이라도 높일 수 있지만 이건 숫제 밑빠진 독이었다는 얘기다.기업들은 기업들대로 경영에 따른 알맹이를 투자자들에게 돌리지않고 다른 곳으로 빼돌리는데 앞장섰다는 점에 대해 부인하기 어렵다. 각종 대여금이나 증여 등을 통해 상당한 순이익의 물줄기를 계열사나 다른 곳으로 돌렸다.이처럼 다른 곳으로 넘겨지는 지출내역이 투자자들에게 알기 쉽게공개되는 것도 아니다.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이자부담이 생기는데 반해 주식시장을 통해 조달하는 자금은 「공짜」라는 인식도 강했다. 언제까지나 투자자들이 이같은 풍토에 속아주기를 기대한다면 틀려도 크게 틀렸다.그렇다고 앞으로 주식시장이 공급물량 부담에서 해방된 것도 아니다. 오는 9월중 유상증자와 기업공개를 통해 7천억원이 넘게 공급되고 4/4분기엔 분기별로는 사상최대 규모인 2조원 규모가 쏟아질전망이다.이들 물량을 무리없이 받아들일만한 시장의 소화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기관투자가들은 또 그들대로 발목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은행이나증권사들은 그동안의 주식투자로 지금 가지고 있는 주식들이 무더기 평가손을 면치 못하고 있어 옴쭉달싹하기가 힘든 실정이다. 투신사들도 신설투신을 제외하고는 거의 관망세를 벗어나지 않는다.그나마 다른 기관보다 뒤늦게 본격적인 주식매수에 참여했던 보험사들도 이제는 지친 표정이 역력하다. 이들 기관은 기대한 수익률을 거두기가 어려운 주식보다는 오히려 실세금리 상승을 틈타 채권매수쪽으로 돌아서는 분위기다.9월부터 2부종목에 대해서도 신용투자가 허용되지만 일시적인 수요창출 효과가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길게 보면 또다른 신용만기매물이라는 악성매물을 부르게 될 것이 뻔하다.또 빠르면 10월말부터 도입한다는 근로자주식저축과 가계장기저축도 신규수요창출이라는 효과를 발휘하려면 우선 주가상승추세가 눈으로 확인돼야 한다. 이들 저축으로 2조~3조원가량이 증시에 추가유입될 것이라는 관측도 결국은 시장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물론 외국인한도가 추가로 확대되고 한일 이중과세방지 협정체결로일본자금이 새로 유입된다면 주가상승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주가를 끌어올리기 보다는 시장이 제구실을 할 수 있도록 체질을 바꾸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점이다. 지금같은기형아상태로는 외국의 애날리스트들이 제아무리 한국시장을 저평가된 시장이라고 주장해봐야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 권태신 증권제도 담당관『주가가 떨어져도 정부의 인위적인 시장개입은 없습니다. 다만 간접적인 수요촉진정책을 적절히 펼쳐 주식시장이 제기능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증권정책의 실무책임자인 재정경제원 권태신 증권제도담당관은 국내증시가 시장기능에 따라 자율적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증권정책을 펴겠다고 강조했다. 물론 얼어붙은 투자심리를 진정시키기 위한 간접적인 노력도 기울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권태신 증권제도담당관으로부터 증시침체에 대한 정부진단과 투자자들의 관심사를들어봤다.▶ 최근 침체장의 배경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주식시장은 경제의 얼굴입니다. 실물경기가 예상보다 급격히 둔화되고 이에따라 국제수지 적자폭이 불어나고 있어 주가가 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금리나 환율 등 증시관련 경제변수들도 부정적으로작용했고요. 경제회복 신호가 보이면 주가는 회복세로 돌아설 것입니다. 저는 증권시장의 주가는 「체온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체온이 좀 높게 나왔다고 체온계를 얼음에 빠뜨릴 생각은 없습니다. 일시적 시장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난 4월총선이후 정부가 성급하게 공기업물량을 처분하겠다고 밝히면서 회복장세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원성도 적지않은데요.공기업민영화는 공공부문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키고사회간접자본(SOC)투자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추진된 것입니다. 공기업의 정부지분 매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증시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입니다. 앞으로는 증권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없도록 매각시기와 방법을 신중히 모색할 방침입니다. 3/4분기에 예정된 5천억원규모의 한통주 매각도 증시상황에 따라 연기할 수 있습니다. 매각을 추진한다해도 장외에서 할 것입니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극소화하기 위해 증권사 투신사 등은 매수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연기금 등에 매각하는 방안이 적극 검토되고 있습니다.▶ 수급을 개선할 수 있는 외국인 한도확대와 근로자주식저축제도는언제부터 실시할 계획인지요.외국인 한도확대는 통화 환율 등 거시경제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시행시기를 잡을 것입니다. 물론 증시상황도 고려의 대상입니다. 세액공제에 따른 이점으로 소액투자자들의 투자를 유인할 수있는 근로자주식저축은 입법과정을 통해 빠르면 10월말께 실시할방침입니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2조원 이상의 자금이 증시로 들어올 것으로 전망됩니다.▶ 간접투자를 확충하기 위해서는 신설투신사에 대한 일부 규제를 풀고 연기금법 개정을 통해 주식보유비중을 늘리도록 해야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신설투신사에 모집식 단위형으로 1년간 환매를 금지시킨 상품만을허용한 것은 장기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것인만큼 이 제도를 유지한다는게 정부의 정책의지입니다. 다만 9월중 신설투신사의 영업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규제완화 사항을 점검할 방침입니다.연기금 등의 투자가 활성화돼야 증시선진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데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장기투자성격의 투자를 유인하기위해서는 법개정보다 배당제도 등을 개선해 주식투자의 안정성을어느 정도 제고하는게 중요합니다. 주식거래제도의 공정성도 향상돼야 하고요. 투명한 증시를 만들기 위해 증권제도를 개편하겠습니다.▶ 한일 이중과세방지협정 체결은 언제쯤 가능할까요.9월중 한일간 협상이 순조롭게 타결된다면 올해말 협정을 맺고 빠르면 내년부터 발효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협정이 발효될 경우일본자금의 국내증시 투자가 활성화될 것입니다.▶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데요, 액면분할이 침체장세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적지않습니다.액면이 분할되면 주식수요가 증가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액면분할은 기업자율을 제고시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증권발행 ·관리비용, 증권거래시스템 개발에 따른 비용부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고가주는 분할후 주가가 다시 올라 주가차별화가 심화된다는우려도 있습니다. 따라서 각계의견을 충분히 들어 신중히 검토한다는게 정부의 입장입니다.▶ 증시침체로 증권업계와 투자자들의 어려움이 적지않습니다. 정책담당자로서 힘이 되는 얘기를 들려 주시지요.증권투자는 투자자 책임입니다. 정부는 선의의 투자자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할 방침입니다. 최근 증시침체는 심리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외국인들도 국내증시를 낙관하는 편이고요. 기관들도 부화뇌동해 섣불리 주식을 파는 것은 잘못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