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은 저고리 아래로 젖무덤을 모두 드러내고 있다. 젖꼭지들은모두 발갛게 열이 올랐다. 재미있는 것은 단원이나 혜원이 그린 춘화들은 대부분이 여성들이 적극적이라는 점이다.단원이 그린 한장의 그림은 이런 점에서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여인은 적어도 50세는 넘었음직하고 남자는 성을 연상하기에는 이미 너무도 늙어버린 70대 이상의 얼굴을 하고 있다. 젊었을 때는팽팽하게 긴장감이 흘렀을 가슴도 쪼그랑 망태처럼 변했고 팔뚝이며 목둘레에도 모두 굵은 주름이 잡혀있다. 할멈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부부인듯한 이 한쌍의 남녀는 대낮에 문도 없는 대청마루 또는 툇마루에서 그짓을 막 시작한 모양이다. 노인은 옷을 벗은채 한손을 바닥에 댄채 다리를 길게 뻗고 앉아 있다. 재미있는 것은 노파의 자세다. 역시 볼이 이미 쪼글쪼글해진 노파는 옷을 모두 입고있다. 노파는 한손으로 치마를 걷어올려 그곳을 드러낸채 지금 막엉거주춤한 자세로 다가서고 있다. 앉은채 즐기는 여성상위의 자세다. 노인의 얼굴이나 노파의 얼굴이나 아무런 감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의 그것을 노인의 물건에 갖다대는 노파의 자세도 재미있지만 왼손으로 물건을 떠받치고 있는 노인의 모습은 가관이다.물건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모양이지만 노파의 노력이 가상하다.처마밑으로 장독대가 놓여있고 쟁기가 비스듬히 걸쳐있다. 그렇게무심한 여름이 흘러가고 있다.재미있는 것은 바로 김홍도 자신의 발상법이다. 노인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하고 그는 이런 춘화도를 그렸을까. 노인들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상적인 젊은 남녀를 내세우기에는 낯뜨거워서인지는 물론 단원 자신만이 알 것이다.단원의 익살은 또 한장의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번의 주인공은 늙은 중이다. 벌써 눈썹이 뻗치는 노인이 된지 오래인 중이다. 창밖에는 동자승이 있고 중의 상대는 젊은 여인이다. 절간을찾아온 것인지 중이 탁발을 나선 것인지 애매하다. 여인은 얼굴이발그레 달아올랐지만 한손은 중의 등에 올라와 있고 두 다리로는중의 허리를 꽉 조이고 있어 이미 수준에 올라 있는 여인이라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중은 이미 막 운동(?)을 시작한 모양이다.늙은 중은 어지간히 다급했던지 윗옷은 입은채 그대로이고 바지 역시 흘러내린 다리에 걸치고 있다. 물건은 훌륭하게 묘사되어 있다.패랭이와 장삼은 지팡이와 함께 한쪽으로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다. 역시 단원 김홍도 다운 장면은 그 다음인데 까까머리 동자승이발을 걷고 빼꼼히 들여다 보고 있다.들여다 보는 장면은 단원 그림의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요즘이나 그때나 관람자적 요소는 그림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이중의 엿보기인 셈이다. 그러나 엿보기 장면을 굳이 삽입하고 있는 것은 장면이 주는 긴장감을 해소하고 그림에 여유를 주기 위한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의 작가 김홍도가 풍속화가로서 자리를 지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