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211호 (1999년 12월 20일)

실력으로 정상오른 '커리어 우먼'

기사입력 2006.09.04 오전 11:57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을 통틀어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한국여자. 철두철미하기로 소문난 인사·교육전문가. 외국계 기업 입사를 꿈꾸는 여대생들의 우상…. 그녀를 지칭하는 수식어들은 화려하면서도 강고하다. 한치의 빈틈도 찾을 수 없는 꼿꼿한 여성상이 미리 머리속에 자리잡는다.

전혀 다른 이미지도 있다. 명품브랜드보다 보세상품을 좋아하는 알뜰파 주부. 들판의 야생화를 맘껏 찍고 싶은 사진가 지망생. 화초가꾸기를 좋아하는 소녀같은 어머니…. 딱딱하게 굳으려던 선입관에 부드러운 온기가 더해진다. 그녀는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움과 포근한 중년 여성의 이미지를 모두 지녔다.

HSBC(홍콩샹하이은행) 전태옥 부지점장(55세). HSBC 한국지점의 3백40여 직원들에 대한 인사와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 금융업 특성에 맞는 조직 편제, 능력 중심의 인사, 인재를 갈고 닦는 교육 등이 그녀의 주임무다. 취업난이 피크에 달했던 지난해에는 1백명이 넘는 인력을 채용,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직무수행능력 평가, 인재를 가려내는 눈썰미에 관한한 따라올 자가 없다.

그녀를 가까이서 봐 온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은 그녀를 두고 『탁월한 판단력, 추진력의 소유자』라고 말한다. 오랜 외국생활과 외국계 은행에서의 경험이 합리적인 사고, 효율적인 일처리의 표본이 되게 만들었다는 의견이다.

HSBC 한국지점 부지점장이 되기까지 그녀는 30년이 넘는 세월을 달려왔다. 67년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한 후 외환은행 도서실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73년 남편(한국산업연구원 민경휘 선임연구원)을 따라 영국으로 건너가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마련됐다. 76년부터 주영한국대사관 상무관실, 런던한국무역관, 제일은행 런던지점, 미국 유니온은행, 영국 스탠더드차터드은행을 두루 거쳤다.

인사교육업무를 전문적으로 맡기 시작한 것은 86년 스탠더드차터드은행 한국지점에 입사하면서부터다. 인사부 신설과 함께 책임자로 발탁되었고 싱가포르, 홍콩 등지에서 인사교육, 매니지먼트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이후 「탁월한 인사교육전문가」라는 타이틀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 여성 인력지원 활동

그녀가 주목받는 것은 「여자로서 거둔 성과」때문만이 아니다. 인사와 인재 교육을 독립영역으로 전문화, 특화시켰고 인사부서에 대한 인식도 바꿔 놓았다.

『인사부하면 권위적인 남성중심의 조직을 떠올리죠. 「인사는 곧 권력」이라는 인식도 뿌리박혀 있구요. 하지만 사실 인사부는 서비스 부서입니다. 기업이 잘 돌아가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맡지요. 좋은 사람을 뽑아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하고 교육·관리하는 게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권력과는 거리가 멀어요.』

권력은 커녕 「직원들을 행복하게」하는 밝은 조직이어야 한다는 지론이다. 그래서인지 HSBC 한국지점 인사부는 여성으로만 구성돼 있다. 뿐만 아니라 전체 직원 가운데 여성인력의 비율이 70%에 달한다.

『여대생들이 외국계 기업을 선호하는 이유는 남녀차별 요소가 없기 때문일 겁니다. HSBC 한국지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녀 동등하게 기회를 부여하기 때문에 여성 인재들이 많이 지원하지요. 시험을 보면 여성 지원자의 성적이 월등히 높은 것을 어떡합니까.』

능력과 의욕이 넘치는 여성 후배들이 무척 자랑스러운 눈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이 땅의 여성들이 훌륭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방법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10년전부터 여성인력지원센터인 여성자원금고 이사로 활동하며 틈나는대로 강연과 교육에 나서고 있다. 또 전문직여성클럽 회원을 대상으로 한 강의, 취업안내서 발간 등에도 참여한다. 주로 올바른 직업관, 직장생활 요령 등에 관한 내용이다.

『제가 강조하는 「성공하는 직장인의 성품」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합니다. 상사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과 스스로의 생각이 다를수록 직장생활이 힘들어지기 때문이지요. 서로의 평가가 다르면 불만도 높아집니다. 둘째로 동료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동료의 성공을 질투하다간 자기 자신만 직장에서 소외될 뿐이죠. 마지막으로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즉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자존심을 내세우기 보다 신뢰를 쌓는 게 백배 낫습니다.』

이 세가지만 실천한다면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반면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되 집착하진 말라고 이야기한다.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직업」갖기에 매진하라는 의미다.

그녀는 2001년에 정년퇴직을 하게 된다. 날렵하고 단정한 모습에선 그 나이가 읽혀지지 않지만, HSBC에서는 2년 정도의 시간만이 남아 있다.

『퇴직 이후에도 여성 취업 지원활동을 계속할 겁니다. 취미생활, 주부로서의 역할도 다하고 싶구요. 다행인 것은 정년퇴직때까지 무척 바쁠 것 같다는 거예요.』

그녀는 외국계 은행에서 최초로 정년퇴직하는 한국여성이 될 것이다. 그에 대한 소감은 의외로 간단하다. 「후배에게 좋은 선례가 되길 바란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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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