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몇해를 살아온 나의 조국이 이런 나라인가.(중략) 94년 6월 어느날 건널목 표시가 있는 길에서 한 유치원생 아이가 손을 들고 길을 건넜습니다. 택시 한 대가 달려오다 급정거를 하고 아이는 쓰러집니다. 다행히 아이는 자기 힘으로 일어났는데 튀어나온 택시기사는 오히려 아이를 야단칩니다. 주위의 아무도 그 일에 관여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한 유학이민사이트에 willampark이라는 아이디로 올라온 글이다. 그는 유학생활 뒤 귀국한 한국에서 부닥친 부조리 무경우를 보고 이민을 결심했다고 한다.어린이나 신체장애인 여성 등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적은 각박한 사회. 아무렇지도 않게 숨쉬며 살아가는 사회적 부조리를 ‘느끼는’ 사람들은 한국에서의 삶이 고통스럽다. 그래서 이들은 탈출을 결심한다.최근에는 여기에 ‘광기어린’교육열, 부유층의 영어교육 광풍까지 가세하고 있다. 그 넓은 미국대륙 동부에서 서부까지, 밴쿠버에서 몬트리올까지 미국판 ‘8학군’, 캐나다판 ‘8학군’이 만들어진다. 명문대 진학비율이 높은 지역에 한국인들이 귀신같이 몰려든다.한국학생들이 몰린 지역에는 미국의 대입학력평가시험인 SAT과외학원이 성업을 이룬다. 조금만 공부해도 70∼80년대에 명문대에 갈 수 있었던 미국학생들도 대입과외를 한다. “동양애들 때문에 내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부유층, 사회지도층, 한국내 안정된 직위와 수입이 있는 아빠는 아내와 자녀를 미국에 보내고 번 돈은 송금한다. 지도층이 아닌, 부유층이 아닌 아빠는 직장을 버리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가족과 이 땅을 떠난다.IMF 이후 월급쟁이의 고용안정 신화가 붕괴됐다.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상태에서 강요된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40대 이후엔 미래가 없다’는 절망감을 직장인에게 준다. 근무 이외의 일, 이른바 ‘정치’로 불리는 인간관계에 업무보다 더 많은 정력을 소모해야 하는 분위기도 ‘비정치적’인 사람들을 몰아낸다.엔지니어들의 두뇌유출도 심각하다. 산업경쟁력의 핵심인력이면서도 기업경영의 비주류로 떠도는 현실, 본업과 관련없는 관리업무 요구에 대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다.한국 탈출, 해외 이주가 충분한 문제해결 방안이 될 수 있을까. 미국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이민자들은 “국가적으로 이민을 더 장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도전을 권한다. 맞는 말이다.그러나 새로운 도전에는 훨씬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최근 투자이주로 무작정 갔다가 돈도 날리고 이국 땅에서 신용만 망가진 사례가 너무나도 많다. 캐나다 뉴질랜드 등에서는 할 일이 많지 않아 한국에서보다 어렵게 사는 가정이 부지기수다.조기유학에 대해 현지교민들은 한 목소리로 반대한다. 박태호 샌호제이주립대 교수는 “특히 부모없이 애들만 오는 조기유학의 대부분이 실패로 끝난다”고 지적한다. 아무리 ‘한국 교육시스템의 경쟁력이 떨어진다 해도 한국에서 못하던 아이가 미국이라고 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엔지니어들 두뇌유출 심각LA에 거주하는 교포 김양희씨는 “아이만 혼자 와서 문제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알려져서인지 최근에는 엄마가 아이와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고 밝힌다. 이 경우에도 엄마가 관광비자로 오면 아이들 학교 진학이 어렵다보니 편법으로 엄마가 학생비자를 냈다학교를 다니지 않는 것이 밝혀져 문제가 되기도 한다. 부수적인 가족 해체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한 치과의사 가족은 아이의 조기유학으로 이혼할 뻔했다. 지난해 아내와 아이들을 캐나다에 유학보내고 한국에 남아 돈을 송금하던 그가 바람이 난 것이다.인종차별도 여전히 존재한다. 서부보다는 동부, 동양인들이 많은 곳보다 적은 곳에서 이 경향은 더 두드러진다.98년 임시영주권을 받아 합법적으로 미국 시카고에서 취업했다 지난해 돌아온 박모씨는 ‘절대 이민가지 말라’고 주장한다. 그는 시카고에 살 때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아들이 백인아이에게 자기 물건을 빼앗기고 상처도 받았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백인아이가 아들 가위를 빼앗아 갔는데 영어가 짧은 아들은 자기 것이라는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아들은 가위도 잃어버리고 선생님으로부터 남의 물건 빼앗으려는 아이로 오해를 받아야 했다.박씨는 오는 9월 임시영주권을 재연장할 수 있지만 미국에서 살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미국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백인에게 해당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