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양말회사 가업 이어 최고의 기업 문 턱까지 진출… 올 600억 매출목표

“인따르시아가 세계적인 패션브랜드가 되는 날 크게 한턱 내겠습니다.” 인천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인따르시아 김현제 사장(48)의 외침이다. 이미 국내 브랜드양말시장을 꽉 잡은 그다. 패션에서만은 남다른 감각을 갖고 있다. 김사장은 “인따르시아를 베네통과 견줄 만한 브랜드로 키우겠다”며 오늘도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다.김사장은 2세 경영인이다. 그렇다고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사업을 유지하는 경영인은 아니다.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며 ‘인따르시아’라는 브랜드를 개발, 최고의 브랜드로 만들어가고 있는 사업가다.충남 천안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충남대를 졸업한 78년 부모님이 운영하는 양말공장(원창물산)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라는 부모님의 성화를 무릅쓰고 택한 일이었다.“우동집을 몇 대째 하며 가업을 잇는 일본인들처럼 부모님이 하는 일을 가업으로 잇고 싶었습니다.”당시 부모님은 편직기 10대를 놓고 직원 50여명과 함께 수출용 양말을 생산했다. 매출이래야 10억원 남짓. 그는 처음에는 공장에서 막일을 하며 기술을 하나씩 배워나갔다. 3년 후 무역과 판매를 맡았다. 당시 국내 양말산업은 섬유산업의 한축이 될 때였다. 전국에 3,000여개의 양말공장이 있었다. “한집 건너 하나씩 있을 정도로 양말공장이 많았어요.”생산량의 85%는 수출하고 나머지는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에 팔았다. 수출은 바이어가 한국을 찾아와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 계약을 하던 때라 영업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국내 영업이 문제였다.브랜드가 없는 소기업이다 보니 항상 도매상의 횡포에 휘둘려야만 했다. 품질에 상관없이 가격을 터무니없이 깎는 게 다반사였다. 김사장은 “반드시 브랜드를 개발해 얼굴 있는 상품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그는 우선 디자인 강국인 이탈리아를 둘러보기로 했다. 81년 이탈리아의 양말공장을 둘러보다 김사장은 깜짝 놀랐다. 평상시에 만들고 싶었던 손으로 짜는 핸드메이드 양말(일명 뜨개양말)과 똑같은 양말을 기계로 짜내고 있는 게 아니가. 김사장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핸드메이드 제품을 만들고 싶었지만 국내에서는 인건비가 많이 들고 생산성이 떨어져 도전할 수 없다고 포기한 상태였기에 더욱 그랬다.김사장은 기계에 대한 설명을 꼼꼼히 듣고 귀국한 후 부친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기계 수입을 강행했다. 그는 “당시 이탈리아산 기계를 도입한 국내 양말업체들 모두가 실패했기에 부친의 반대는 당연했다”고 회고했다.주변으로부터 ‘미친놈’이라는 말도 들었다. 이탈리아산 기계는 우수했지만 한국까지 애프터서비스망이 갖춰져 있지 않아 국내에서의 이탈리아산 기계 도입은 무리였던 시기였다.부친을 설득한 김사장은 이탈리아의 콜로시오에서 83년 10월 12대의 편직기를 도입했다. 자금은 인천 본사건물을 은행에 담보로 넣어 마련했다. 6개월 후 추가로 12대를 도입하기로 하고 추가도입분 비용까지 제공한 상태였다.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팽팽 돌아야 할 기계가 쇳덩어리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아무리 손을 써 봐도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잘 돌아가던 기계가 한국에서는 고물이라니….” 김사장은 난감해했다. “한동안 밤을 뜬눈으로 지냈습니다. 살도 빠지고 입술은 갈라지고 정말 힘들었습니다.” 회사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파고드는 절박한 상황이었다.김사장은 직접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이탈리아로 달려갔다. 그는 6개월 동안 콜로시오에서 기름때를 묻혀가며 기술을 익혔다. 귀국해서는 기계와 싸우며 원인을 찾아나섰다. “공장구석에 마련된 침대에서 잠을 잤습니다. 끼니는 라면과 김밥으로 때웠죠.”이렇게 한 지 6개월 만에 해법을 찾아냈다. 이탈리아산 기계는 섬세한 원사만 가능한데 국산 원사는 거칠어 이탈리아제 기계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직접 국내 원사에 맞게 기계를 설계하고 개조했다.“윙윙 하고 기계가 돌아갈 때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이 기계를 이용해 김사장은 84년 7월 ‘입체양말’을 내놓았다. 입체양말은 고양이, 곰 등 동물모양을 양말에 단 패션양말로 김사장이 국내에 처음으로 내놓았다. 그동안 보아왔던 기계양말이 아닌 뜨개양말이 나오자 국내 양말업계는 반신반의했다. “당시만 해도 흰색이나 검정색 양말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럴 만도 했어요.”김사장은 기쁨에 지인들에게 양말을 선물했다. 하지만 뜻밖의 일이 생겼다. 일주일도 안돼 모두 선물한 양말을 다시 가져온 것. 친구들이 학교에서 ‘괴물양말 신었다’고 놀려 안 신는다는 게 이유였다.김사장은 실수요자인 어린이가 싫어한다면 실패한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망연자실했다.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그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미주 유럽지역으로 물건을 내보냈다. 해외에서는 반응이 괜찮아 매년 수출물량도 늘어갔다. 최고에 달했던 지난 93년에는 20여개국에 1,000만달러 이상을 내다팔았다.내수는 88서울올림픽 이후 조금씩 팔리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반응이 있자 김사장은 89년 ‘인따르시아’라는 브랜드를 개발, 상표등록을 했다. 이후 98년에는 법인명을 인따르시아로 바꿨다.그는 94년부터 양말전문점을 내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런데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은행에 전문점을 열 자금지원을 요청하자 브랜드 성공 가능성이 없다며 모두 기피했다. 부모님도 “망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며 기계 도입 때처럼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감을 갖고 밀어붙였다.어렵사리 자금을 마련한 김사장은 95년 10월 인천 본사 1층에 전문숍을 열었다. 그해 크리스마스 때까지 모두 6개로 늘렸다. 이때 예상치 못한 행운이 따라왔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매장마다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넘쳐났다.이듬해부터는 백화점 입점도 시작했다. 현재 전국에 360여곳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홈쇼핑에서도 인기 최고”라고 자랑했다.인따르시아는 지난 2000년부터 바쉬(속옷), 라반떼(스타킹), 인스바이오프리(탈취제) 등의 브랜드 런칭에 성공, 품목을 늘려가고 있다.김사장은 올해 중국에 10여개의 매장을 내고 러시아에도 이탈리아 속옷업체인 라반떼와 공동으로 매장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따르시아는 올해 수출 500만달러를 포함해 60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인따르시아를 세계 최고의 패션 명품브랜드로 키울 작정입니다.” 김사장의 당찬 각오다. (032-501-7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