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이면 한국에서 변호사란 직종이 생겨난 지 꼭 100년이 된다. 국내 변호사 제도는 1905년 11월 ‘변호사법’이 공포·시행되면서 도입됐다. 1906년 홍재기, 이면우, 정명섭씨 등이 각각 1·2·3호로 등록함으로써 최초의 변호사가 됐다.그로부터 100년이 지나는 동안 변호사는 변함없이 부와 명예의 상징이었다. 변호사는 가문의 자랑이자 그가 출생한 지역의 영광이기도 했다. 100년은 강산이 10번 변하는 세월. 그사이 변호사의 역할은 소송 위주에서 기업자문으로 서서히 바뀌어갔다.M&A, 자금조달, 특허 관련 컨설팅을 하는 변호사들이 크게 늘어났다. 이들은 각종 법률 서비스를 한꺼번에 제공할 수 있는 로펌(Law Firm)을 태동시켰다. 한국 최초의 로펌으로는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에 첫선을 보인 김·장·리와 김신유를 꼽는 이들이 적잖다.그러나 로펌 전성시대는 70년대 설립된 김&장과 Lee&Ko(현 광장)가 등장하면서 막이 올랐다는 게 정설이다. 김&장의 김영무 변호사와 Lee&Ko의 이태희 변호사는 미국 유학파로 기업자문 변호사의 1세대다.한국의 로펌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이 물밀 듯이 밀려오고 구조조정이 대대적으로 일어나면서 M&A, 자금조달 등의 법률자문이 폭주한 것. 이 과정에서 세종, 율촌, 화우, 바른 등이 신흥강자로 등장하게 된다.1호 변호사가 탄생한 지 100년 만에 변호사수는 8,000여명으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 국내 10대 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가 1,000여명. 사법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예비법조인들 가운데 판검사가 아닌 로펌을 지망하는 경우도 줄을 잇고 있다. 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 중에는 한해 연봉이 수억원 되는 이들이 쏟아지고 있다.그러나 동쪽에서 뜬 해는 서쪽으로 지기 마련. ‘최고 두뇌’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변호사들의 고민도 날로 깊어지고 있다. ‘이제 좋은 시절은 지나간 것 같다’는 푸념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대로라면 한국 로펌의 미래는 암담하다’는 비관론이 한국 변호사시장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위기는 안팎에서 동시에 몰려오고 있다. 우선 법률시장 개방에 따른 불안감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내년부터 문을 열어야 하는 법률시장의 개방폭을 결정하는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데다 한국과 미국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본격화됨에 따라 법률시장 개방 압력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한국보다 먼저 빗장을 푼 독일, 일본 등의 토종 로펌들이 거대 외국계 로펌에 의해 초토화된 사례도 한국 변호사들의 위기감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에도 100여명의 변호사를 거느린 로펌이 없지 않지만 유수의 외국로펌에는 수천명의 변호사가 소속돼 있다. 이들의 공략에 독일과 일본의 로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지난 98년 전면 개방한 독일의 경우 10대 로펌 중 2곳만이 남았다. 2005년 문을 연 일본도 소속 변호사수가 150명이 넘는 1~5위권은 외국 로펌의 타격이 덜한 상태지만, 6~20위 중형로펌 15개 가운데 절반이 넘는 8개가 영·미계 로펌의 품속으로 들어갔다.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대형 로펌의 파트너급 변호사는 한국 로펌의 미래를 무척 걱정스럽게 전망했다. “수입선다변화제도가 없었다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회사들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시장을 개방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자생력을 키운 뒤 단계적으로 개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이뿐만 아니다. 또 다른 로펌의 중견 변호사는 “우리나라 고유의 법률문화가 영·미식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우리나라의 법률문화는 소송을 꺼리는 분위기에요. 대신 대화나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외국 로펌들은 모든 문제를 법적 분쟁으로 끌고 갈 수도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의 약점이 많이 노출돼 있는데 이런 것을 파고들어 돈을 벌어보겠다는 장사꾼 변호사들이 몰려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안으로는 해마다 1,000여명의 새내기 변호사가 쏟아지면서 일자리마저 구하기 어려워졌다. 더구나 2008년으로 예정된 로스쿨제도가 시행될 경우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 뻔하다.변호사들은 “20년 전만 하더라도 기업에서 임원으로 오라고 해도 가지 않았는데 요즘은 대리·과장으로도 서슴없이 가고 있는 현실이다”고 토로한다. 변호사의 수입도 예전만 못하다. 한 중견 로펌 대표변호사는 “신입 변호사의 연봉이 잘나가는 대기업 샐러리맨 수준에 불과하다”며 씁쓰레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위기론이 다소 과장됐다는 시각도 있다. 이들은 법률시장이 개방되더라도 중소 로펌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외국로펌들이 들어오더라도 중소 로펌이 주로 하는 ‘송무’ 분야까지는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로스쿨 문제도 마찬가지다. 장완익 해마루 대표변호사의 말이다. “변호사시장이 더욱 어려워지는 것은 막을 수 없는 대세입니다. 하지만 변호사들이 옛날 생각만 해서는 곤란합니다. 변호사가 늘어나면 보다 다양한 영역으로 진출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국민들에게는 법률서비스 혜택이 더 많이 돌아간다는 장점도 있다는 것입니다.”어쨌든 달라지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중대형 로펌들의 발 빠른 움직임은 이곳저곳에서 포착된다. 로펌간 인수합병이 활기를 띠고 있고, 해외진출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우수한 변호사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도 러시를 이루고 있다. 광장의 김재훈 변호사는 “경쟁력 있는 변호사를 확보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어떤 외국로펌이 들어와도 경쟁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았다.시장개방과 로스쿨 도입 등으로 한국 로펌업계는 한 차례 홍역을 치를 것이 분명하다. 환경변화에 따른 적자생존의 법칙이 조용하던 한국 변호사시장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jun@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