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MC는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한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재석은 그저 ‘인기 MC’였다. 하지만 요즘 그에겐 ‘MC 유’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이제 시청자들은 보다 큰 즐거움을 위해 ‘MC유’ 브랜드에 충성하며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댄다. 인기 연예인에게 따르는 안티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 때문인지 그는 강호동 신동엽 김용만 등 MC계의 강호들을 제치고 단연 톱을 차지하고 있다.선후배들은 그의 진행에 몸을 실으면 인기의 바다로 나갈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학교나 기업과 마찬가지로 연예계에도 다양한 ‘라인’이 있다. 유재석에게도 이른바 ‘유 라인’이 있다. MBC의 <무한도전>을 통해 친분을 쌓게 된 박명수 하하 노홍철 정준하 등을 말한다. 이들은 물론 여러 연예인들이 각종 인터뷰를 통해 ‘유재석’에 대한 애정을 항상 강조한다. 심지어 프로그램 안에선 ‘무한재석교’라는 이름을 가진 사이비종교(?)의 교주로 ‘모시기’도 한다.얼마 전 한 인터넷 사이트가 재미있는 조사를 진행했다. 전국의 아르바이트생 1107명을 대상으로 ‘만약 우리 사장님이 된다면 가장 좋을 것 같은 연예인’을 고르라는 질문이었다. 이 조사에서 최고의 사장님 감으로 꼽힌 사람은 다름 아닌 유재석(34.7%)이었다.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유재석은 이미 ‘리더’다. 시청자에게, 연예계 선후배에게, 그리고 기업의 말단 직원들에게 그는 특유의 ‘무언가’로 그를 따르게 만들고 있다. 대선주자로 나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마저 그를 “정치인들이 배워야 할 리더십”이라며 찬사를 보냈다.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큰 특징이 없는 게 특징”이라는 그의 리더십은 과연 어디서 나올까. 우경진 수원대 경상학부 교수는 그를 조직 위에 군림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조직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리더십, 조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그들의 성공을 지원하는 데 역점을 두는 ‘서비스형 리더십’의 전형으로 평가했다.서비스형 리더십의 핵심은 바로 ‘겸손’이다. 우 교수는 “서비스형 리더십, 즉 겸손의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려와 친절, 그리고 나눔”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남에 대한 배려는 그 자신이 스마트함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남의 가려운 곳을 정확히 감지해 시원스레 긁어줘야 하는 ‘배려’라는 덕목은 그저 ‘착하기만’하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유재석의 배려는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잘 나타난다. <무한도전>의 출연자들은 건방지거나, 호통을 치거나, 이리 튀고 저리 튀는 멤버로 가득 차 있다. 그대로 놔두면 과연 방송이 가능할까 하는 수준으로 막나간다.이들의 장단점을 잘 살려내 제각기 독특한 ‘캐릭터’로 승화하는 건 바로 유재석의 몫이다. 그는 절대 ‘나서지’ 않는다. 진행이 필요한 경우에만 출연자들의 한발 앞으로 나설 뿐 대부분의 상황에선 물러서서 그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조율할 뿐이다. 말솜씨가 밀리는 출연자가 있다면 돕고 ‘오버’하는 출연자는 기분 상하지 않게 ‘응징’한다. 그렇다고 도망치지도 않는다. 함께 ‘몸개그’를 보여주며 철저히 망가진다. 배꼽티를 마다하지 않고 음악이 흘러나오면 다리가 풀릴 때까지 과격한 막춤을 선보인다.뒤처지는 인물이 있다면 격려하거나 조언한다. ‘어리버리 캐릭터’로 성공한 가수 김종민은 한 인터뷰에서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 나오기 시작했을 무렵 난감했던 속내를 꺼내 놓았다. 그는 “방송 처음엔 언제 말을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다”며 “프로그램 내내 입도 벙긋 못했다”고 했다. 그에게 손을 내민 건 유재석이었다, 그는 “유재석 형이 나를 보듬어 주면서 ‘말해 말해…괜찮으니까 말해, 형이 있으니까 말해’라며 힘을 줬다. 그래서 그때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용기를 북돋워주고 편하게 ‘끼’를 발산하도록 도와줬던 유재석에 대해 김종민은 “내가 방송인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라며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지난 2005년 연세대 리더십센터 소속 연세리더십클럽 학생들은 유재석을 ‘차세대 리더’로 선정했다. 당시 리더십클럽의 회장을 맡으며 유재석을 강력히 추천했던 사람은 조현민 씨(SK네트워크 근무)였다. 방송 현장에서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는 당시 X맨 촬영 현장에서 유재석의 조용한 한마디에 강호동 등 쟁쟁한 스타들의 목소리가 잦아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유재석 씨의 리더십은 배려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보니 다른 스타들이 쉬고 있는 시간에도 경험이 없는 신인이나 방송 감각이 떨어지는 컴백한 연예인들에게 다가가 항상 말을 붙이더군요. ‘이럴 땐 이렇게 하는 게 어떤가’, ‘내가 이렇게 할 테니 네가 저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말이죠. 방송 중에도 그래요. 인기가 떨어지는 출연자에겐 다른 출연자보다 더 자주 말을 건넵니다. 프로그램 내의 출연 비중을 묘하게 조율해 나가요. 그러니 그들은 유재석 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을 테고, 의지하는 사람이 많아지니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배려’의 힘을 갖게 된 게 아닐까 합니다.”유재석은 ‘MC 중독증’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청산유수의 재치 있는 언변을 자랑한다. MC로선 가장 중요한 요소인 출연자에 대한 특징과 장단점을 파악하는 데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이석휘 한국리더십센터 본부장은 “특히 신인들이 나왔을 때 그를 잘 지켜보라”고 한다. 프로그램에 잘 적응하도록 이끄는 것은 물론 가수라면 웬만한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노래의 가사를 외워 불러주고, 탤런트라면 출연했던 작품의 목록을 줄줄이 읊어준다는 것이다. 특유의 영민함을 바탕으로 출연자의 호감과 신뢰를 얻어내는 장면이다. 유재석이 데뷔한 해는 그가 스무 살에 불과했던 1991년이다. 비슷한 또래의 개그맨 중에 가장 데뷔가 빨랐다. 개그맨으로서의 재능은 누구 보다 빨리 인정받았다.하지만 유재석은 한 인터뷰를 통해 “당시 장려상으로 호명되었을 때 ‘내가 제일 웃겼는데’라는 생각에 귀를 후비면서 수상하러 나갔었다”고 말했다. 당연히 그는 ‘왕따’가 됐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가 겪은 10년간의 무명 생활은 이런 거만함에서 비롯됐다. 재능에서 오는 거만함이었다.지금 유재석은 누구보다도 ‘친절한’ 연예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언제나 웃고 있다. 개그맨들이 즐겨 쓰는 ‘비난개그’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 본부장은 “그가 짓는 미소는 ‘뒤센(Duchnne:角조壕봉?신경학자 이름) 미소’의 전형이다”라고 설명했다. 사람의 미소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가 뒤센 미소인데, 이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짜 웃음이다. 이 웃음을 지을 때는 양 입아귀가 위로 올라가고 눈초리에 주름살이 생긴다. 또 다른 웃음은 ‘팬아메리칸(Pan-American; 미국의 항공사) 미소’다. 스튜어디스나 엘리베이터 걸의 미소 같은 가짜 웃음을 말한다.행복학의 창시자인 마틴 셀리그먼 교수는 이런 뒤센 미소는 다른 사람에게도 점염돼 행복한 느낌을 갖게 한다고 한다. 시상식장에서 귀를 후비던 그가 10년 동안의 왕따 무명 개그맨이었던 것과 달리, 지금 그가 짓고 있는 ‘뒤센 미소’는 ‘행복 바이러스’에 점염되고 싶은 사람들을 따르게 만든다.이 본부장은 유재석이 가지고 있는 리더십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로 ‘친절함’과 더불어 ‘성실함’을 꼽았다.“연예인들은 보통 사람들에 비해 기본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화려한 재능에 열광하는 것처럼 그들도 자신의 재능에 도취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다 무너지곤 하죠. 유재석 씨도 웬만한 연예인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 아시죠. 성실함에서 비롯된 자기 관리는 많은 연예인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갖고 있지 못한 부분’을 갖고 있는 그를 연예인들이 더 따르고 있는 게 아닐까요.”조진만 연세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은 최근 들어 학생 조직 안에서 “기존의 권위적 리더십이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예전엔 복학생들이 학생회를 좌지우지했다면 오히려 ‘복학생’이라는 전통적 권위를 내세웠다간 조직 내에서 조롱거리만 될 뿐이라고 강조했다.“‘너도 잘나고 나도 잘난’ 시대입니다. 머리도 좋고 외국어도 한두 개쯤 할 줄 아는 학생들은 숱하게 많아요. 이런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잘남’을 내세우는 건 ‘왕따’가 되겠다는 뜻이겠죠.”조 선임연구원은 그 이유로 ‘의식의 성숙’을 꼽았다. 리더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정보력이다. 통제된 사회에서 정보는 소수 엘리트의 몫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촉발된 정보 혁명은 누구든 고급 지식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요즘엔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유재석형 리더십’을 가진 리더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소심하고 내성적이니 리더로서 부적격이라고 할 만한 이들의 리더십은 강압이나 주장보다 설득과 행동을 통해 조용하고 은밀하게 조직을 목표로 움직여 갑니다. 트레이닝이 된 것인지 본능적인 것인지는 몰라도 분명한 사실은 학생들이 ‘유재석형 리더십’을 훨씬 따른다는 것이죠. 이들이 사회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되면 권위에 의존하는 리더십은 크게 흔들릴 것입니다.”우경진 수원대 교수는 ‘유재석형 리더십’을 주목하는 이유를 “현대사회에선 더 이상 리더가 모든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통적 리더십에선 리더가 모든 의사결정을 해야 했다.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선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복잡한 현대사회에선 누구도 그만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 우 교수는 “유재석이 가지고 있는 겸손의 리더십의 특징 중 하나가 ‘나눔’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그때그때 들어오는 정보의 처리를 하위 리더에게 믿고 맡기며 생산물을 조합해 성과를 다시 나누는 이른바 ‘슈퍼 리더십’이 ‘유재석형 리더십’의 핵심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이다.기업 환경도 마찬가지다. 김범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조직의 창의성이 중시되는 기업 환경에서 수직적 리더십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예전엔 TV를 만드는 회사라면 경쟁사는 기껏해야 타 TV 제조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노트북, PMP, 휴대폰 등등 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회사든지 경쟁의 대상이다. 이 같은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내놓는 일, 즉 조직의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이다.물론 창조적인 사람들만 모여 있다고 해서 창조적인 결과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창조성의 핵심은 ‘시너지 효과’다. 1+1=2가 아닌 1+1=5가 되는 게 시너지 효과다. 이들을 아우르는 리더십이 없다면 오히려 마이너스로 전락할 수도 있다. 김 연구위원은 “<무한도전>에 유재석이 없다면 아마도 ‘난장판’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개성이 뛰어난, 곧 창조적인 출연자들을 실력은 물론 배려, 친절, 신뢰 등의 요소로 아우르는 ‘유재석형 리더십’을 기업들도 눈여겨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물론 ‘유재석형 리더십’이 만능은 아니다. 먼저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는 데 오랜 기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일례로 <무한도전>이 20%를 넘나드는 지금과 같은 시청률을 보이는 데는 무려 2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와는 대척점에 있다 할 수 있는 ‘강호동형 리더십’은 <무릎 팍 도사>나 <야심만만>의 예처럼 불과 한두 달 만에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낼 수 있다. 또 위기 상황을 헤쳐 가는 힘도 전통적 리더십에 비해 약하다. 한때 어색한 드라마 형태의 콘셉트를 잡았던 <무한도전>의 뚝뚝 떨어지는 시청률을 다시 궤도에 올려놓았던 건 유재석의 힘이 아니었다.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마음으로 ‘정말로’ 불구덩이 뛰어드는 몸개그를 제안했던 건 ‘호통’치고 ‘화’를 내는 전통적 리더십의 대표 격인 박명수였다.하지만 모두가 똑똑하고 잘난, 그렇지만 누구도 알 수 없을 만큼 복잡해진, 창조적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기업 환경에 ‘유재석형 리더십’은 수많은 리더십의 정의 중에서 가장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