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한경비즈니스 공동 기획 - 노사관계, 선진화로 가는 길 ⑥

“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를 빼놓을 순 없겠죠.”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으며 곧바로 최근 가장 민감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복수노조 설립과 노조 전임자 이슈를 꺼내놓았다. 노동연구원장을 지낸 최 연구위원은 현재 한국노사관계학회장을 맡고 있는 노동문제의 석학 중 하나다. 최 연구위원의 두 이슈에 대한 생각은 확고했다.“복수노조 설립은 지난 1987년 이후 정체돼 왔던 한국의 노사 관계에 변화의 물꼬를 트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최 연구위원은 회사당 하나의 노조만을 인정하는 그간의 체계가 한국 노사 관계를 경직시키는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그의 설명에 따르면 단일 회사 노조는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이라는 상급 단체에 가입해야 하는데 이 두 단체의 성격이 너무 이분법적으로 갈린다는 것이다. 즉, 양 노총의 성격이 너무 뚜렷하고 또 이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막강한 ‘기득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변화의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좀 더 다양한 생각과 입장을 가진 노조가 생겨날 테고 이들이 모여 제3의 길을 걷는 새로운 노동운동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아직 섣부르지만 이렇게 되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아울러 제3의 노총이 모두 연대한 보다 강력하고도 합리적인 노조가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전임자 임금 문제 역시 최 연구위원은 “회사가 아닌 노조에서 주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는 “가끔씩 터져 나오는 노조 운영의 비민주성은 전임자들이 임금을 회사에서 받기 때문일 수도 있다”며 “노조원들의 조합비를 통해 임금을 받는 간부가 어떻게 마음대로 조직을 이끌 수 있겠나”라고 되물었다.그는 그간의 노동운동이 지나치게 ‘이익 분배’ 문제에 매달려 있었다고 지적했다. 사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회사의 이익을 경영자들이 독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업 경영의 투명화가 빠르게 이뤄지면서 경영자들이 회사의 이익을 직원들 몰래 챙기기가 쉽지 않다.이 때문에 지금은 이익의 분배보다 고용 안정성이나 사원의 재교육 등 복지 문제에 더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이 경우 회사에서도 노조의 주장에 반대할 이유가 별로 없다. 사실 뻔한 이익을 직원들에게 더 나눠줘야 하는 건 경영진에게도 큰 부담이다. 하지만 일례로 사원들의 재교육 같은 사안들은 회사의 생산성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된다. 또 노측과 사측의 복지 문제에 대한 생각에 비슷하다면 이를 정부에 강력히 요구할 수도 있다. 최 연구위원은 “노사 관계 선진화라는 말은 노측이나 사측 어느 한쪽이 양보하라는 말은 아니다”며 “이보다 둘 사이에서 함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이슈를 찾고 그 이슈를 강력히 추진하는 게 선진화”라고 말했다. 그는 “아마도 양측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슈는 ‘사회적 복지 시스템의 강화’일 것”이라고 주장했다.최 연구위원이 최근 관심을 두고 연구 중인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한국의 복지 시스템은 지나치게 회사 위주로 돼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의 한국은 사회적 부는 적었지만 완전 고용이 이뤄졌었다. 이 때문에 이른바 4대 보험 등에서 보듯 부를 창출하는 집단인 회사가 직원들의 복지를 책임졌었다. 하지만 최근엔 다르다. 사회적 부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쌓였다. 반면 기업들은 점점 고용을 줄여가는 추세다. 결국 비정규직, 미취업자·자영업자들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또 복지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은 고용을 더 줄이고 사각지대는 더 커지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최 연구위원은 “회사 별 복지 시스템에서 개인별 복지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며 “국가의 역할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1952년생. 77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88년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 경제학 박사. 88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2004년 한국노동연구원장. 09년 한국노사관계학회장(현). 경기개발연구원 수석연구위원(현).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