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topic 제 747호 (2010년 03월 29일)

‘일자리 빼앗겼다’…외국인 집중 공격

기사입력 2010.03.26 오후 02:28

#1. 지난 2월 27일 러시아 제3의 도시인 역사적 고도 니즈니 노브고로드. 시내의 한 조그만 카페로 30여 명의 스킨헤드(극단적 인종주의자)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한가로이 카페에 앉아 주위 풍광을 바라보던 국적 미상의 외국인은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짐작조자 가지 않는 스킨헤드의 집단 구타로 그만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경찰 조사에선 독이 묻은 칼에 의한 자상도 발견됐다.

#2. 러시아와 리투아니아의 접경 도시 칼리닌그라드에선 지난 3월 4일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6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스킨헤드로부터 집단 공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앙아시아 출신 외국인에 대한 축출을 표방한 6개의 스킨헤드 단체가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이날 테러에선 칼·도끼·해머가 등장하는 살벌한 장면이 연출됐다.

최근 한 달 사이 두 차례나 러시아에서 연수 중이던 한국인 유학생이 러시아 극우 민족주의자들에게 피습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러시아에선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출신 외국인을 중심으로 한 스킨헤드들의 각종 테러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박탈감’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인종 테러가 잦다.

20여 개 단체 구성돼 활동

‘일자리 빼앗겼다’…외국인 집중 공격
1991년 구소련 붕괴 후 민족적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데다, 경제난이 겹치면서 양산된 러시아 스킨헤드는 현재 20여 개 단체가 구성돼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대 초반 블라디미르 푸틴이 정권을 잡고 고유가를 바탕으로 반짝 경제성장을 이룬 뒤에는 ‘러시아인은 위대하다’는 극우 애국주의가 번지면서 스킨헤드 양산에 기름을 부었다.

약 7만∼10만여 명이 활동 중인 것으로 파악되는 러시아 스킨헤드에는 여성을 포함한 다수의 미성년자들이 가담하고 있으며 러시아 청년층 15%가량이 넓은 의미의 스킨헤드에 속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 사법부는 스킨헤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잇따라 외국인에 대한 테러 용의자들에게 중형을 선고하고 있지만 경제난으로 악화된 러시아 내 반외국인 정서는 진화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경찰 등 공권력이 마피아 등과 밀착된 러시아에서 스킨헤드에 대한 단속은 시늉만 이뤄질 뿐이라는 비관적 해석마저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 스킨헤드들의 외국인에 대한 린치는 많은 경우 우발적이라기보다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사태의 심각성이 더하다. 러시아 일간 콤소몰스카야프라브다와 코메르산트는 최근 스킨헤드 단체 ‘하얀 늑대 소속’회원들에 대한 6년 6개월~23년형의 중형 선고 소식을 전하면서 국가 첩보기관이 연상되는 테러 활동상을 전하기도 했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하얀 늑대’는 지난 2007년부터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볼고그라드 등 주요 도시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무차별 테러를 가해 12명의 외국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외국인을 살해한 장소도 모스크바 시내 한복판 카페에서부터 교회·기차역 등 주요 공공장소를 택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특히 ‘하얀 늑대’는 인터넷 지령을 통해 외국인에 대한 집단 테러와 암살을 조직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드러나 러시아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타깃으로 삼은 외국인에 대한 1차 암살 시도가 실패했을 경우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해 끝까지 따라가 외국인을 살해하는 집요함도 보였다. 러시아 내 이슬람 사원에 폭탄을 설치하기도 하는 등 사실상 비정규 조직의 수준을 넘어 준국가 수준의 무장 능력을 과시하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들은 자신들이 정당한 행위를 했다는 일종의 종교적 확신을 가지고 있어 근절이 힘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슬라브 민족 순혈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은 인종주의 정책을 적극 시행했던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를 우상으로 삼고 히틀러의 생일인 4월 20일 더욱 극단적으로 준동하는 경우가 많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히틀러 생일을 앞둔 3월과 4월은 러시아 내 인종 테러가 극성을 부리는 시기로 알려졌다.

러시아 경찰 관계자는 “스킨헤드들은 외국인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잔혹한 테러를 가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 외국인 희생자의 시체에선 79군데의 자상(칼자국)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동욱 한국경제 기자 kimdw@hankyung.com



당사의 허락 없이 본 글과 사진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입력일시 : 2010-04-01 1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