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급 발탁할 인력 풀 ‘절대 부족’


지난해 현직 검찰총장이 대학 강연에서 한 발언이 많은 직장 여성의 원성을 산 일이 있었다. 그는 “전체 검사의 30%, 신규 임용 검사의 절반이 여성”이라며 여성 검사의 활약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여성 검사들이 일을 잘 해주고 있지만 어려움과 애환이 많다”며 “남자 검사는 집안일을 포기하고 일하는데, 여자 검사는 아이가 아프면 일을 포기하고 간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그리고 “(여자 검사들이) 일을 안 한다는 건 아닌데, 극한 상황에서 (남자 검사와) 차이는 있다. 남성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그런 문제는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발언이 다소 부적절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업과 사회에서 여성 조직원을 바라보는 시선을 잘 반영하고 있다. 아무리 똑똑하고 당당한 여자 검사지만 동시에 ‘일하는 엄마’로서의 삶은 녹록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가 아픈 상황에서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여성은 거의 없다. 기업의 여성 임원도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 출세한 여성들이지만 가정과 직장을 오가며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고단한 삶을 이해해 주는 시선은 그리 많지 않다.

기업에서 임원으로 성장한다는 의미는 연타석 안타를 치는 수십 년 동안의 실적뿐만 아니라 기업 내 정치력, 리더십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임원으로 승진하기 위한 내부의 치열한 경쟁에서도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

검찰총장의 발언과 마찬가지로 아직 국내 기업에서는 경영진이나 인사 담당자의 여성 리더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은 편이다. 김종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채용 단계에서 여성 인력의 역량에 대한 인식은 개선됐지만 여전히 여성 인력의 업무 배치나 교육 훈련, 평가 등 측면에서는 기업이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직도 대부분의 기업은 여성 인력의 생산성과 경영 리더십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성 인력과 여성 리더에 대한 인식이 아직 미흡한 가운데, 구체적으로 여성 임원이 나오기 힘든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축약해 볼 수 있다. 첫째, 기업들이 여성 임원을 늘리고 싶어도 자격을 갖춘 여성 인력을 찾기가 쉽지 않다. 즉 임원급으로 발탁할 여성 인력 풀이 모자라다는 것이다.

1990년대 초 정부가 남녀 고용 평등 정책을 강화하면서 대기업들은 본격적으로 대졸 여직원을 선발했다. 이후 주요 대기업들은 매년 100~200명씩 대졸 여직원을 뽑았고 여성 공채를 따로 실시하기도 했다. 2012년 현재 이때 입사한 여성 직원들은 15~20년 차인 만큼 현재 부장·과장 등 관리자로 활약하고 있어야 할 때다. 하지만 상당수가 중도에 회사를 그만뒀다. 그들이 30대일 때 육아를 위해 힘들게 입사한 회사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의 경력 단절이 30대부터 두드러지는 점에 주목한다.
[30대 그룹 여성 임원] 여성 임원의 확대를 가로막는 장애물
여성의 성취 열망 부족도 걸림돌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출산한 여성의 퇴직 사유 중 68%가 육아의 어려움이라고 답했다. 직장을 그만두는 10명 중 7명이 육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회사를 떠나는 것이다. 결국 수십 년간의 직업을 위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일을 포기하고 만다. 출산·육아기 여성의 경력 단절이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여성 임원 및 리더로의 성장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주희 교수는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막고 리더로 성장시키기 위해 모성보호제도나 육아휴직제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하지만 이러한 제도가 여성에게 ‘양날의 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짚었다. 조직 내 인력의 생산성과 경쟁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업에서 여성에게 이러한 혜택이 집중된다면 기업이 여성 인력을 승진시키는 것을 기피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을 높이는 등 남녀 모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정책이 주목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30대 그룹 여성 임원] 여성 임원의 확대를 가로막는 장애물
둘째, 기업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기존 남성 임원들이 여성들이 임원 자리에 진입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행태도 큰 장애물이다. 여성 인력은 우수한 실적을 거두는 사례는 많지만 기업 내 정치력, 즉 파워게임에서 다소 남성 경쟁자들에게 밀리는 경우가 많다. 여자들이 가정을 희생하면서 일에 몰두하거나 성공에 대한 야망을 보이면 “독하다”, “욕심이 많다” 등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현실이다.

푸르덴셜 사장이자 사단법인 WIN(Women In Innovation)의 회장인 손병옥 사장은 기업 내 남성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정치력 싸움보다 업무 능력에 승부수를 걸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경쟁하는 남성과 능력이 똑같으면 일하는 양을 1.2배로 늘리라”고 여성 기업인 후배들에게 주문한다.

마지막으로 여성 임원의 확대를 가로막는 것은 바로 ‘여성 스스로가 갖고 있는 한계’다. 여성들의 성취 열망이 남성에 비해 낮은 것이 여성들의 성장에 잠재적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장기적인 경력 비전 설정이 남성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가다. 금재호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은 생산성에서는 남녀 차이가 거의 없지만 여러 부분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부족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리더십·충성도·팀워크 등에서 여성이 미흡하며 단지 친화력과 성실성에서 여성이 앞서는 것으로 평가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여성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여성들은 리더십과 팀워크를 향상시키기 위한 자기 계발 노력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적극적으로 멘토를 찾고 네트워크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여성 임원으로 성장하는 비결이라고 꼽았다.
[30대 그룹 여성 임원] 여성 임원의 확대를 가로막는 장애물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