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 완화 축소로 자본 대미 유턴, 각국 절상 압력 벗어나려 몸부림

미국=장진모 한국경제 워싱턴 특파원·일본=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중국=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유로존=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신흥국=정성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불붙은 新환율전쟁-요동치는 세계경제] ‘돈 잔치는 끝났다’…후유증 떠넘기기 경쟁
올 한 해 세계경제의 가장 큰 복병은 환율이다. 양적 완화 출구전략 시행, 아베노믹스로 상징되는 일본의 금융 완화 정책(엔저), 유로존의 금리 인하, 신흥국의 유동성 위기감 고조 등 모든 것이 환율이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모양새다. 글로벌 환율전쟁에 나선 각국의 현황과 환율 방어 전략을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 할 때다.


미국 테이퍼링으로 달러 강세…금리 상승도 강세 한몫
양적 완화 축소와 강한 경제 회복세. 올해 달러 강세를 예측할 수 있는 두 가지 요인이다. 우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통화정책 결정 기구)에서 월 850억 달러 규모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올해 1월부터 월 750억 달러로 줄이는 테이퍼링(tapering)을 시작했다. 수년간 시중에 풀었던 달러 규모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Fed가 작년 6월 처음으로 양적 완화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예고하자 전 세계 금융시장은 출렁거렸다. 금리는 뛰고 주가는 떨어지고 달러는 강세를 보였다. Fed가 금융 위기 이후 시중에 풀었던 달러를 거둬들이는 출구전략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확산되면서 시장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당시 원·달러 환율도 급등(원화 약세)했다.

Fed가 작년 12월 막상 테이퍼링의 방아쇠를 당겼지만 시장 충격은 제한적이었다. 지난해 여름 글로벌 시장이 이미 한 번 충격을 받은 데다 벤 버냉키 Fed 전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점진적이고 신중한’ 테이퍼링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Fed는 양적 완화 축소가 금리 급등을 초래하고 글로벌 자금 흐름에 역류를 일으킬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고수익을 찾아 이머징 마켓으로 유입된 글로벌 자금이 대거 미국으로 유턴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버냉키 전 의장이 신중한 출구전략을 강조한 이유다.

점진적으로 채권 매입을 축소하고 정책금리(연방기금 금리)의 제로 금리 정책을 유지하더라도 시장금리 상승은 막을 길이 없다. 시장금리는 Fed의 정책금리에 영향을 받지만 결국에는 경기에 좌우된다. 요즘 미국 경제는 장밋빛 일색이다. 부동산·주택, 소비지출, 기업 투자 등이 일제히 개선되고 있다. 증시는 대세 상승장을 지속하고 있다. 그동안 경기 예측에 신중하던 버냉키 전 의장조차 “낙관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미국 경제에는 태양과 달과 별이 한 줄로 서는 행운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중소기업·주식시장·주택 시장 등 어느 한 곳에서도 취약한 부분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2014년 미 경제성장률을 지난해(1.9%)보다 높은 2.8%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전망치보다 0.2% 포인트 높은 것이다. 이 같은 경기 낙관론은 시장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금리 상승은 곧 달러 가치의 상승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1995~2000년 나타난 달러 강세가 올해 재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경제가 호황을 누리면서 글로벌 금리가 상승하는 반면 이머징 마켓 경제는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였던 당시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에서다.

그동안 미국을 떠났던 글로벌 자금이 다시 미국으로 회귀하면 달러 강세를 부추길 수 있다. 특히 중국·인도·브라질 등 신흥국 경제의 회복 속도가 더딜 경우 달러 강세는 더욱 심화될 수 있다.
<YONHAP PHOTO-0252> U.S. Federal Reserve Vice Chair Janet Yellen testifies during a Senate Banking Committee confirmation hearing on her nomination to be the next chairman of the U.S. Federal Reserve, on Capitol Hill in Washington November 14, 2013.      REUTERS/Joshua Roberts    (UNITED STATES)/2013-11-15 05: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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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달러가 강세 흐름을 유지하겠지만 강세 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보다 환율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데, 미국의 단기금리가 현재로선 2015년 초까지 상승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Fed는 실업률이 6.5% 밑으로 떨어진 이후에도 한동안 단기금리는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일본 올해도 확실한 엔저, ‘110엔’ 뚫을지 관심
일본이 꽤 달라졌다. 퇴색했던 종이호랑이의 심상치 않은 보폭 때문이다. 변모를 추동한 에너지는 강력한 의지의 경기 부양책, 아베노믹스다. 금융 완화·재정 투입·성장 전략의 동시다발적인 정책 세트는 2013년 일본 경제에 부활의 희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적어도 금융 지표만 놓고 봤을 때 최근 가장 드라마틱한 성장 신호를 내보낸 곳이 일본이다. 상승률 약 60%의 주가지수를 필두로 ‘디플레이션→인플레이션’을 반영하는 ±1%의 물가 상승률, 22%의 환율 상승(평가절하)이 그렇다. 이는 버블 붕괴 후 20년 넘게 꿈쩍하지 않던 지표 변화였기에 특히 주목된다. 선두주자는 환율 상승이다. 바로 엔저 유도다. 떨어진 엔화 가치로 수출 환경을 개선해 경기 회복의 불씨를 확산시키겠다는 포부다. 근린 궁핍화 전략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엔저 유도는 올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2013년 엔·달러 환율은 19엔 상승(엔저)으로 마감됐다. 연초 86.52엔으로 시작해 105.41엔으로 한 해를 마쳤다. 연중 100엔대를 전후해 공방이 거셌지만 10월부터 엔저 추세가 굳어진 분위기다. 2013년 엔화 향방은 몇몇 키워드로 정리된다. 먼저 독립성 훼손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와 보조를 맞춘 일본은행의 이(異)차원적 금융 완화다. 즉 양적·질적 금융 완화가 주가 상승과 함께 환율 상승을 견인했다. 강력한 부양 카드의 효과다. 반면 아베노믹스에 물음표가 붙을 때는 여지없이 방향 전환이 이뤄졌다. 엔고로의 전환이다.

또 다른 키워드는 달러 변수다. 여름부터 가시화된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 논의가 그렇다. 즉 달러 회수 경계감이 신흥국 증시를 하락시켜 안전 통화로서 엔화 선호도를 높였다(엔저 퇴색). 다만 가을부터는 미국의 경기 회복이 되레 엔저 심화로 연결됐다.

올해 엔화 환율의 기본 추정은 엔저 유지다. 연말에 가까워질수록 110엔 돌파 시도도 예측된다. 대형 재료는 역시 미일 양국의 금융정책이다. 양국 모두 경기 회복 에너지로 활용해 온 금융 완화책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최대 관건이다. 예고됐듯이 미국은 완화 축소가 시행될 예정이다. 마지노선이었던 실업률 6.5%와 물가 상승률 2.5%에 근접한 회복 성적표가 목격돼서다.

미국이 당장 대규모로 달러를 흡수하진 않겠지만 거둬들일 것은 명약관화하다. 결과는 역시 엔저 심화다. 한편 일본 정부의 엔저 정책은 당분간 유지될 확률이 높다. 아직 2% 타깃 물가에 미달한 가운데 올 4월 소비세 증세로 경기 감속이 심화될 경우 이를 저지할 추가적인 완화 정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화제가 됐던 경상수지 적자(2013년 11월)도 엔저 추세에 무게중심을 싣는다. 에너지 등 수입 확대로 소득 흑자가 무역 적자를 벌충하기 힘들어지면서 발생한 경상 적자는 결국 엔화 매도(평가 절하)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대세는 엔저이지만 그럼에도 엔고 재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의 완화 축소가 자국은 물론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야기할 개연성이다. 특히 신흥 시장의 조정 압박이 글로벌 경기 감속을 심화시킬 수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엔저 수준의 결정 여부도 관심사다. 엔저가 교역 상대국인 미국의 무역 적자를 가속화할 수 있어 언제까지 미국의 배려가 지속될지 알 수 없다.

과거 미국의 중간선거가 엔고(달러 약세)를 원했다는 미즈호은행의 분석 결과도 주목된다. 1990년대 이후 6회의 중간선거 중 5회에 걸쳐 해당 선거 연도에 엔고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들 엔고 재료를 감안하면 올 4월(소비세 증세)과 11월(중간선거)을 전후해 조정 여지가 있으며 그럼에도 엔화의 향방은 추세적인 엔저 시도가 계속될 것이란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중국 전망 엇갈린 가운데 ‘절상’ 압력 거세
중국의 위안화 환율이 앞길을 내다보기 힘든 베이징 거리처럼 스모그에 갇혀 있다. 장기 전망은 대체적으로 위안화 절상으로 모아진다. 하지만 올해 전망은 엇갈린다. 위안화가 달러 대비 절상할 것이라는 전망(스탠타드차타드은행)과 절하할 것이란 관측(푸단대)이 맞서 있다. 위안화 절상과 절하 여건이 엉켜 있기 때문이다.

위안화는 2013년 달러 대비 3% 절상됐다. 중국이 이중환율제를 단일화한 199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횟수도 지난해에만 41차례에 달했다. 올해는 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6위안에서 5위안 시대로 들어갈 확률이 매우 높다(장강상보)는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 최근 인민은행이 고시한 위안화 환율은 달러당 6.05위안(1월 22일 기준) 수준이다.

위안화 절상 전망에 힘을 싣는 쪽은 중국 정부의 정책 변화가 환율에 미칠 영향을 중시한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올 2분기에 인민은행이 기준 환율 대비 상하 1%인 달러 기준 하루 환율 변동 폭을 1.5%로 확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저우샤오촨 인민은행장이 지난해 11월 “기본적으로 일상적인 시장 개입을 중단하고 환율 변동성을 확대하겠다”고 한 발언과 맥이 닿는다.
[불붙은 新환율전쟁-요동치는 세계경제] ‘돈 잔치는 끝났다’…후유증 떠넘기기 경쟁
위안화 국제화 행보를 가속화하는 정책도 절상 기대를 높인다. 지난해 11월 중국 공산당 18기 3중전회에서 발표된 개혁안에는 “위안화 자본 계정 태환을 가속화한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2012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발표된 정부 업무 보고에 “점진적으로 위안화 자본 계정 태환에 나서겠다”는 것에 비해 확실한 진전(노무라연구소 중국 사무소의 진구 다케시 수석연구원)이라는 분석이다.

무역 흑자가 과거에 비해 줄었지만 지속되는 자금 유입으로 외화보유액이 불어나는 것도 위안화 절상 압력 요인이다. 호주의 안즈(ANZ)은행은 지난해 말 3조820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중국의 외화보유액이 올해 말 4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1월 중순 보고서를 통해 위안화 환율이 올해 말 달러당 5.92위안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 데는 이 같은 요인이 깔려 있는 것이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직전 보고서의 올해 말 예측치(6.03위안)보다 위안화가 더 강세를 띨 것으로 본 것이다.

반면 푸단대 금융연구소는 최근 발표한 위안화 환율지수 보고서에서 위안화 가치가 올해 달러 대비 1~2% 절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푸단대가 주목한 부문은 해외다.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와 경기 회복이 달러화 강세로 이어져 위안화 절하 요인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중국의 수출 경기 회복세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도 절하에 무게중심을 둔 이유다. 올해 경기 회복이 뚜렷해지는 것은 선진국이고 신흥국은 조정기에 머무를 것이라는 게 푸단대의 전망이다.

문제는 위안화 절상과 인건비 상승 등으로 선진국 시장에서 개도국 기업들에 밀리기 시작한 중국 기업들이 최근 수년 새 개도국으로 수출 시장을 다변화한 데 있다. 선진국 중심의 경기 회복 수혜가 제한적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일본의 엔화 절하 정책이 경쟁적 통화 절하를 유발할 경우 화폐 전쟁을 촉발할 수 있다(푸단대). 이런 상황에서 수출 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위안화 절상에 대한 중국 정부의 용인 수준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중국은 지난해 무역액이 전년 대비 7.6% 늘어나는데 그쳤다. 4조1600억 달러의 무역액을 기록,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무역 대국으로 등극했다고 하지만 증가율은 목표치(8%)에 미달했다. 2년 연속 목표치 미달로 올해도 전망은 어둡다.

더욱이 위안화 절상이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크지 않다는 비판도 중국 당국엔 부담이다. 위안화 절상에 따른 구매력 상승은 해외여행을 가거나 해외 원자재를 주로 수입하는 기업 정도가 수혜를 볼 전망이다.

반면 중국 내에서는 물가 상승으로 위안화 구매력이 오히려 떨어졌다. 더욱이 위안화 절상 차익을 노린 핫머니 유입이 물가 상승을 부추겨 국민들의 체감 구매력 감소 폭은 더 커졌다. 중국의 환율 정책도 안갯속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유로존 유로화 약세, 한국 수출의 강력한 경쟁자
유럽 각국, 특히 재정 위기를 겪은 나라들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 가장 중요한 정책 과제는 재정 위기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유럽 주요국 정부들은 재정지출을 지속적으로 축소함으로써 과도한 부채 부담을 줄이려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유럽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되더라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재정 긴축만으로는 경기 회복을 기대하기엔 부족하다. 경제의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언제든지 위기가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이를 통해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정착시킴으로써 민간 부문에서도 외채를 줄여야 한다. 요즘 유럽 각국이 노동시장에 대한 구조조정을 통해 노동비용을 줄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단일 통화로 묶여 있는 이 지역의 특성상 통화가치를 대폭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확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통화가치를 절하를 통해 자국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외적 평가절하’가 아닌 자국 내에서 생산원가를 줄이는 ‘내적 평가절하’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유력한 방법 중 하나가 임금 삭감과 고용 감축 등을 통한 노동비용의 절감이다.

재정지출 삭감과 노동비용 감소로 수입이 줄어들면서 유럽은 만성적인 무역 적자에서 벗어나 흑자 폭이 커지고 있다. 유럽 경제에서 긴축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유럽 기업들의 생산도 다시 늘어날 조짐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경기 회복이 자칫 과도한 유로화 강세로 연결된다면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려는 구상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무역 부문에서 다시 적자 상태로 돌아간다면 민간 부문의 외채도 증가하고 정부의 재정 수입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13년에도 두 차례 금리를 내린 바 있으며 앞으로도 금리를 더 내리거나 시중은행들에 대한 직접 대출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할 의향을 갖고 있다. 이는 유로화 약세로 이어질 전망이다. 유동성 공급 확대 정책은 소비 위축으로 물가 하락의 위험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도 적절한 정책이다. 유럽의 유동성 완화 정책, 그 반대로 가고 있는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를 동시에 고려해 본다면 유로화는 달러화 대비 약세 흐름을 보이면서 달러·유로 환율은 1.3유로 선을 하향 돌파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유럽 경제와 유로화 등에 대한 전망은 한국 경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한국 정부와 한국은행,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바라보는 올해 경제 전망을 보면 대체로 작년보다는 긍정적인 모습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 물론 그 기대의 배경은 선진국의 경기 회복이다. 선진국 경기 회복이 한국의 수출 증가를 가져올 것이고 그에 따라 기업의 설비투자도 늘면서 경기 회복을 주도할 것이라는 점이 긍정적인 기대에 반영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의 저변에 깔려 있는 전제는 미국이 2008년 금융 위기를, 유럽이 2010년 재정 위기를 극복하면서 다시 아시아에서 수입을 늘릴 것이라는 점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유럽은 우리가 원하는 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수출에서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할 것이다.

여건이 다르기는 하지만 무역 적자를 줄이려는 의도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이는 우리의 주력 산업이 더 이상 선진국의 수요 회복에 기댄 수출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진국의 체질 개선은 한국에도 체질 변화를 강요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수출에 비해 위축돼 있는 내수를 살리는 데 한국의 역량을 강화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신흥국 브라질·인도, 환율전쟁의 단역배우로 전락
지난해 5월 양적 완화 축소를 공식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미국 Fed의 발표 이후 대부분의 신흥국 금융시장은 몸살을 앓았다. 주식과 채권 가격은 곤두박질치고 환율은 급상승했다. ‘취약한 다섯 나라(Fragile Five)’ 같은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고 언론은 앞다퉈 현지 르포를 내보내기도 했다. 불과 2년 전 기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미 Fed의 양적 완화로 브라질에 너무 많은 달러가 밀려들어 헤알화의 가치가 너무 오른다고 불평한 바 있다. 지금의 브라질 상황을 보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2014년에도 이런 움직임이 계속될까. 신흥국의 공통적인 면을 살펴보자.
<YONHAP PHOTO-0302> Traders work at the Bolsa de Mercadorias e Futuros, Brazilian Mercantile and Futures Exchange (BM&F), in Sao Paulo, Brazil, on Thursday. March 26, 2009. Brazilian stocks rose for a second day, led by metal producers, on speculation a recovering global economy will revive demand for commodities. Photographer: Marcos Issa/Bloomberg News 
/2009-03-27 08:09:21/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Traders work at the Bolsa de Mercadorias e Futuros, Brazilian Mercantile and Futures Exchange (BM&F), in Sao Paulo, Brazil, on Thursday. March 26, 2009. Brazilian stocks rose for a second day, led by metal producers, on speculation a recovering global economy will revive demand for commodities. Photographer: Marcos Issa/Bloomberg News /2009-03-27 08:09:21/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우선 신흥국 경제는 상당히 편중돼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외화 벌이의 대부분을 자원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브라질·러시아·칠레가 있는가 하면 서비스업 수출에 의존하는 인도도 있다. 게다가 이들 국가들 대부분이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인도·인도네시아·터키 등은 저축보다 투자가 많거나 재정 적자가 커서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5~7%에 이를 정도다. 2012년 이후 선진국의 양적 완화로 실물경제에 도움이 되는 해외 직접 투자(FDI)보다 주식·채권에 투자하는 외국인의 포트폴리오 투자가 크게 늘었다. 쉽게 들어온 돈인 만큼 빠져나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또한 이들 국가는 제조업 기반이 취약해 환율이 상승할 때 물가 상승률이 높아져 저성장 속의 고물가 현상인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내년에는 이러한 경제적 혼란기에 대통령 선거나 개헌 등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가 예정된 나라도 많다. 브라질·인도네시아·인도 등은 총선과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고 터키는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성장세가 빠르다면 원자재 가격도 높아질 것이고 외국인 투자도 클 것이어서 이러한 문제점들이 가려질 수도 있다. 하지만 2014년에는 세계경제의 회복 속도가 그다지 빠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문제이며 이에 더해 정치적 이벤트는 부담으로 작용할 확률이 높다.

이러한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 나라로 브라질을 주목할 만하다. 무역수지는 흑자이지만 경상수지는 적자다. 투자를 위한 재원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콩·커피·철광석 등 원자재 수출에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지만 세계경제의 약한 회복세로 인해 수출이 빠르게 늘기 어렵고 미국과 유럽에서의 투자가 많아 통화정책의 자율성도 떨어진다.

돈이 빠져나가면 금리가 오르고 환율이 올라간다. 결국 금리를 낮춰 국내 경기를 방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인도·인도네시아·터키 등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동소이하다. 또한 주요 수출품의 수요가 강하지 않은 상태여서 환율이 높아져 수출이 증가하는 효과도 크게 기대할 수 없다. 결국 이들은 자본 이동, 독자적인 통화정책(현재로서는 금리 인하), 환율의 안정성,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상황(trilemma)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태에 처해 있다. 브라질·인도 등은 환율전쟁에서 가장 심하게 다치는 단역배우일 수밖에 없다고 요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