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글로벌 고급차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폭스바겐그룹이 아우디·포르쉐·부가티 등을, 도요타가 렉서스를, 닛산이 인피니티로 럭셔리 플래그십 브랜드를 운용해 온 것과 같은 개념이다. 2015년 11월 처음 공개된 ‘EQ900’은 2004년 1세대 제네시스 개발 시점부터 10년여의 담금질 끝에 모습을 보였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개발에 처음 나선 2004년부터 독자적인 고급차 브랜드 론칭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2006년에는 국내와 미국에서 고급차 관련 태스크포스팀(TFT)이 운영됐고 외부 전문 컨설팅 업체를 통해 시장조사와 수익성 분석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1세대 제네시스 차량의 성공적인 출시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브랜드는 출범하지 못했다. 당시 글로벌 금융 위기로 고급차 시장이 현저히 위축됐기 때문이었다. 또한 현대차 내부적으로도 완벽한 기준 충족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초대형·대형·중형·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쿠페 등 복수의 라인업 확보가 필수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브랜드 론칭이 미뤄졌다. 2008년 첫선을 보인 1세대 제네시스 모델부터 이번 EQ900 론칭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고급차 시장에 대항할 현대차의 노력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품질 제일주의’에서 출발했다. 현대차는 2006년 TFT 시절부터 EQ900 개발까지 연구·개발(R&D) 비용만 1조 원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급차 시장 개척을 위한 최고경영자(CEO)의 의지 없이는 이러한 시도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운전자 자세 분석해 최적의 시트 제공
정 회장은 EQ900 개발 과정에서 연구원들에게 “세계 최고의 명차를 만들자”는 주문부터 “엔진 배선을 간단히 고치라”거나 “내·외장 마감재를 최고급 소재로 쓰라”는 등 세부적인 주문을 직접 내놓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정 회장은 2015년 12월 9일 열린 신차 발표회장에서 직접 단상에 올라 “그동안 축적해 온 기술을 총동원해 최고 성능과 품질관리로 탄생한 신차가 세계 명차들과 당당히 경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10여 년의 담금질 끝에 첫발을 뗀 제네시스 EQ900은 품질과 주행 성능은 물론 감성까지 사로잡을 비장의 무기들로 전열을 정비했다. EQ900에 최초로 적용된 사양들과 첨단 기술을 보면 현대차가 제네시스 브랜드의 성공적인 시장 안착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내장형 서스펜션, 완벽한 승차감 구현
전 세계 최초로 적용된 ‘스마트 자세 제어 시스템’은 제네시스 EQ900이 추구하는 인간공학적 설계의 결정판이다. 독일척추건강협회(AGR)의 공인을 받은 ‘모던 에르고 시트’는 고장력강 구조를 적용해 시트 프레임 떨림을 개선했다. 또 몸에 닿는 부위별 패드를 최적화해 장거리 안락감을 극대화하는 등 기본 구조부터 기존의 시트 개념과 완전히 달라진 안락함을 제공한다.
특히 EQ900 개발진과 서울대 의대가 산학 합동 연구를 통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스마트 자세 제어 시스템’은 운전자가 키·앉은키·몸무게 등 신체 정보를 입력하면 현재의 운전 자세를 분석해 자동으로 시트, 스티어링 휠, 아웃사이드 미러, 헤드업 디스플레이 자리를 최적의 자세에 맞춰 변경해 준다. 편안하고 건강한 자세를 제공하는 첨단 시스템으로 전 세계 어떤 고급차에도 적용된 적이 없는 신기술이다.
‘고속도로 주행 지원 시스템(HDA)’도 국산차 최초로 탑재했다. 고속도로 사고 예방은 물론 운전 편의를 지원해 운전자의 피로까지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HDA는 차간거리 제어 기능(ASCC)과 내비게이션 정보가 복합적으로 융합된 첨단 기술이다. HDA를 작동하면 ▷시속 150km까지의 속도 범위 내에서 차량이 스스로 차간거리 및 차로를 유지하고 ▷전방 차량이 정차하면 자동으로 정지한 뒤 재출발하며 ▷고속도로 구간별 속도 제한에 따라 자동으로 속도를 조절하는 등 안전한 주행 보조를 받게 된다.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면 일정 시간 경과 후 경고음이 울린다. 운전자가 주행에 관여하는 상황에서만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한 안전 대책으로 사고 위험을 최소화했다.
차량의 주행 성능을 좌우하는 엔진에는 국산차 최초로 람다 3.3 V6 터보 GDi 엔진이 장착됐다. 고강도 엔진 내구 시험을 통과한 람다 3.8 V6 GDi, 람다 3.3 V6 터보 GDi, 타우 5.0 V8 GDi 등 총 3개 엔진 라인업으로 운영된다. 람다 3.3 터보 GDi는 3기통씩 독립적으로 제어하는 2개의 터보차저를 적용한 ‘트윈 터보 시스템’을 적용해 실제 주행 시 5.0 GDi 엔진 수준의 가속력을 구현하면서도 3.8 GDi 엔진에 근접하는 연비 효율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람다 3.3 터보 GDi는 최고 출력 370마력, 최대 토크 52.0kg·m으로 동급 최고 수준의 강력한 성능을 확보했다. 정부 기준 복합 연비는 리터당 8.5km다.
세계적 명차와 겨룰 수준인 승차감은 국산차에 처음 적용된 ‘제네시스 어댑티브 컨트롤 서스펜션(GACS)’으로 구현해 냈다. 서스펜션(현가장치)은 차량이 달릴 때 차체에 전달되는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로 편안한 승차감을 결정짓는 핵심 장치다. 곡선 주로, 과속방지턱 등을 넘을 때 서스펜션의 성능에 따라 고급차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다.
이번 EQ900에 적용된 GACS는 전자제어 서스펜션 시스템과 섀시 통합 제어 기능이 융합된 첨단 기술이다. 평소 안락한 승차감은 물론이고 충돌 회피를 위해 스티어링 휠을 급격히 틀 때에도 안정성이 유지된다. 승차감과 조종 안정성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어려웠던 기존 전자제어 서스펜션의 단점을 개선하고 쇼크업소버 내부에 유압을 독립적으로 제어하는 내장형 밸브를 적용한 것이 핵심이다.
EQ900 개발진은 GACS 개발 당시 국내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유형의 도로에서 테스트를 진행했다. 영암 서킷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가장 험난한 트랙인 독일 뉘르부르크링 및 아우토반, 미국 모하비 사막 등 전 세계에서 실시한 철저한 성능 검증을 통해 어떠한 주행 환경과 도로 조건에서도 완벽한 주행 성능을 제공할 수 있도록 완성했다.
‘중공 공명음 알로이 휠’도 국산차에는 처음 시도됐다. 도로를 연결하는 부위나 파손 도로의 돌출부 같은 턱을 지날 때 발생하는 타이어 공명음을 최대 5데시벨(dB)까지 개선하는 등 철저한 소음·떨림·충격 대책 설계로 동급 최상의 정숙성을 실현했다.
‘후측방 충돌 회피 지원 시스템(SBSD)’과 ‘부주의 운전 경보 시스템(DAA)’ 등 첨단 주행 지원 기술도 그간 국산차에선 볼 수 없던 시스템이다. SBSD는 차로 변경 중 후측방 사각지대의 차량으로부터 추돌 위험 상황이 감지되면 변경하려는 차로의 반대편 바퀴만 멈추게 해 차로를 벗어나지 않게 해주는 첨단 기술이다. DAA는 주행 중 차량의 조향각, 조향 토크 등 차량 신호와 차로 내 차량 위치 같은 주행 패턴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운전자의 운전 위험 상태를 5단계로 클러스터에 표시해 주는 기능이다. 또 운전자의 피로에 따른 부주의 운전 패턴이 나타나면 휴식을 권하는 팝업 메시지와 경보음이 울려 주의를 환기시키고 운전자 휴식을 유도하는 안전 편의 시스템이다.
고객 만족 위한 첨단 편의 사양도 눈길
주행 능력, 승차감 등 본질적인 성능 외에도 고급차를 구분 짓는 주요한 요소는 첨단 편의 사양이다. EQ900에는 최고급 멀티미디어 시스템과 각종 편의 사양이 적용돼 초대형 럭셔리 세단만이 줄 수 있는 만족도를 시현했다는 평가다.
최적으로 튜닝된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섬세하고 박진감 넘치는 음원을 제공하는 ‘렉시콘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은 최상의 멀티미디어 환경을 제공한다. 이 시스템에는 휴대성을 위해 품질을 낮춰 압축한 MP3, ACC 파일 등의 손실된 음원 부분을 실시간으로 복구해 최상의 음질로 향상시키는 첨단 알고리즘인 ‘클라리파이(Clari-Fi)’가 적용됐다.
이 밖에 12.3인치 광시야각 정전식 터치 패널에 앞뒤 좌석 조그 다이얼로 편의성을 더한 DIS 내비게이션, 뒷좌석 9.2인치 광시야각 모니터, 스마트폰을 차량에 두고 내리면 알람을 울려주는 ‘전후석 스마트폰 무선 충전 패드’를 탑재해 고객 편의성을 한층 높였다. 특히 스마트폰 무선 충전 패드는 국산 대형차에 최초로 적용한 기술이다.
100만 화소급 카메라와 표시 기능 개선으로 사용성이 향상된 어라운드 뷰 모니터링 시스템, 표시 영역 확대로 시인성이 향상된 풀 컬러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승하차 시 문을 완전히 닫지 않더라도 스스로 닫아주는 고스트 도어 클로징, 제네시스 엠블렘이 적용된 퍼들 램프로 야간이나 지하 주차장에서 차별화된 개성을 표출하는 아웃사이드 미러 로고 패턴 퍼들 램프 등 다양한 고객 선호 사양이 대거 적용됐다.
EQ900에는 정보기술(IT)을 적용해 스마트폰을 통한 원격제어, 안전 보안, 차량 진단 등의 첨단 서비스가 5년간 무료로 제공되는 최첨단 텔레매틱스 서비스 ‘블루링크 2.0’도 적용됐다. 블루링크 2.0은 내비게이션에 없는 목적지도 인터넷 검색으로 자동 연결돼 목적지 설정이 가능한 ‘인터넷 목적지 검색’, 실시간 교통 정보 및 지역, 시간대별 예측 정보가 보다 정확히 반영된 ‘빠른 길안내’ 기능 등이 탑재돼 있다.
한편 지난해 12월 23일 EQ900을 비롯한 아이오닉·아반떼·투싼·쏘렌토·K5·콘셉트카 산타크루즈·트레일스터 등 현대차의 8개 차종이 미국 디자인상인 ‘2015 굿디자인 어워드’의 운송 디자인 자동차 부문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특히 EQ900은 제네시스 브랜드의 최상위 모델로 품격 있는 디자인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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