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ncial business] 죽음의 계곡에 빠진 카드사
최근 국내 신용카드 사업은 유례없는 혹독한 위기를 겪고 있다. 일부에서는 주요 카드사 매각설이 떠도는 등 삭막하기 그지없다. 과연 위기에 몰린 카드 산업의 탈출구는 있을까?

국내 신용카드 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졌다. 수십 년간 수익의 원천이었던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7000억 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된다. 최근 소액결제 비중의 지속적인 증가와 수익성 낮은 체크카드 비중 상승, 카드론 수수료율 인하 등 악재가 겹치면서 2016년 카드 산업은 어느 때보다 혹독한 보릿고개를 겪을 수밖에 없다.

지불결제 업종은 소비자에게 신용공여 등 편익을 제공하고 일정 수수료를 받는다. 하지만 소비자는 이를 카드사가 부당이득을 가져가는 것처럼 혼동해 여론이 우호적이지 못하다. 카드업계는 생존을 위한 각종 서비스와 프로모션 축소, 희망퇴직 등 인력 감축을 고민한다. 시장에는 두세 개 카드사 매각설까지 있다.

사면초가 카드사, 역마진 고착화

신용카드사가 영위하는 사업은 카드 가맹점 결제, 금융 서비스(현금서비스, 카드론), 체크카드, 비카드 사업(보험, 여행) 등으로 구분된다. 이 중 대표 사업인 가맹점 결제 영업이익은 마이너스 상태로 결제금액이 증가할수록 카드사에 손실이 발생하는 ‘역마진’이 고착화돼 있다. 역마진을 해소하기 위해 그동안 카드사는 현금서비스와 카드론 등 신용대출 사업에 집중했다. 이마저도 최근 높은 대출금리 등을 통해 서민 가계부채를 양산해내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실제 이용도 해마다 줄고 있다.

지속적인 수수료 인하 압력과 수익성 낮은 체크카드 이용 증가로 카드사 영업이익은 2016년부터 추락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정치 논리에 빠진 가맹점 수수료 인하는 카드사에 재앙 수준이다. 최근 금융당국은 영세·중소가맹점에 대한 법정 수수료율 적용을 의무화하고, 적격 비용을 반영한 수수료 산정 방식을 채택했다. 핵심은 영세·중소가맹점 우대수수료율을 0.7%포인트 인하하고, 소액·다건결제가 많은 가맹점 수수료율 상한을 2.7%에서 2.5% 인하하는 것이다. 체크카드의 경우 영세·중소가맹점 우대수수료율을 평균 0.5%포인트 인하하고 일반 가맹점은 겸영·전업계 구분 없이 ‘1.5%+계좌이체 수수료율’로 조정했다.

그동안 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율은 적정성 논란과 함께 감독당국의 강력한 규제 대상이었다. 일각에서는 가맹점 수수료 인하가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선심성 공약의 산물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시장 중심의 경제 논리보다는 포퓰리즘에 부합하는 정치 논리라는 것이다.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기업 자율과 경쟁에 맡기지 않고 외부에서 개입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최근 10년간 가맹점 수수료율은 내린 적은 있지만 오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카드사의 이익이 감소하면 수수료율을 올린다는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현재 가맹점 수수료 인하는 시장과 괴리된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또 하나의 해결 과제가 있다. 바로 부가서비스 축소다.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영화관, 패밀리 레스토랑, 놀이공원 등은 신용카드 할인 혜택이 많다. 카드사가 제공하는 부가서비스 혜택은 평균 연간 50만 원이 넘는다. 해외에서도 유례없는 혜택이다. 비용 감소를 위해 카드사는 부가서비스 축소를 꾀하려고 하지만 감독기관의 과도한 규제로 인해 이마저 눈치를 봐야 한다. 카드사 과열 경쟁으로 그동안 꾸준히 상승한 부가서비스 비용은 현재 카드사 영업이익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할부금융업·해외 진출로 부활 노려

그나마 금융당국이 부수 업무 규제를 네거티브로 전환한 것이 카드사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틈새시장 공략과 핀테크(fintech) 시장 진입, 해외 시장을 겨냥한 차별화 전략만이 살아남을 길이다.

최근 카드사는 자동차 할부금융업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2015년 상반기 카드사와 캐피털사가 복합 할부금융 취급 중단 이후, 신한카드는 상품을 재정비하고 있고, 후발 카드사는 할부금융업 라이선스를 추가로 취득 등 자동차금융을 확대하고 있다. 다만 신규로 진입하는 카드사는 자동차 제조업체와 유통사 등 관계 형성 기간이 필요해 초기 진입이 까다로울 수 있다.

포화상태인 국내 카드 시장을 벗어나 해외 진출도 적극 꾀해야 한다. 최근 신한카드가 카자흐스탄 법인을 설립하고, 비씨카드도 인도네시아 시장에 진출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의 신용카드에 대한 낮은 사용률과 모바일 결제 확산은 카드 산업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는 현금이 강력한 지급결제수단이며, 신용카드 선호 비율이 매우 낮다. 한국의 선진화된 카드 인프라를 현지에 적용하고, 모바일 결제 분야에서 은행과 통신, 유통사 등과 동반 협업이 필요한 때다.

최근 삼성페이, 카카오페이 등 비금융 기업이 지급결제 시장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카드사와 협력하는 모양새지만, 결국 플랫폼 장악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수익 배분도 결정된다. 카드업계는 결제 고객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어 이용 가치가 높지만, 자칫 이들 기업에 종속될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틈새시장 공략과 함께 카드사의 리스크관리가 수반돼야 한다. 먼저 과도한 부가서비스 비용의 축소가 절실하다. 부가서비스 축소를 통해 금융 서비스 수수료 인하에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비정상적인 모집 비용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일부 모집인이 고객에게 지원하는 연회비는 시장 내 모집 단가를 기형적으로 상승시키고 그 피해는 대부분 일반 고객에게 돌아간다. 또한 소액결제 비중의 급증에 따른 밴(VAN) 수수료 체계 개편도 숙원 사업이다. 삼성페이로 촉발된 비서명 확대에 따라 전표 수거료 문제를 조속히 매듭지어야 한다.

무엇보다 카드 산업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좋지 않은 여론을 호도해 엄청난 부대 수익을 올리는 잘못된 조직으로 카드사를 인식하는 국민 정서는 이해하지만, 국내 결제 산업 인프라를 이끌어 온 카드사의 공도 있다. 물론 그동안 카드사가 교묘한 편법으로 부대 수익을 올리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 결제 산업을 이끌어 온 노력과 인프라, 그 성과도 무시할 수 없다. 무조건 한쪽이 잘못됐다는 일방적인 정책보다 시장 논리에 기반을 둔 공생 정책이 필요하다.

길재식 전자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