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료화 정책 순항, 장바구니·천 가방 챙겨 오는 소비자 늘어
영국 ‘공짜 비닐봉지’ 퇴출…수익금은 공익 기부
공짜 봉지의 시대는 끝났다. 영국 소비자들도 개인의 혜택 대신 환경보호라는 가치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런던과 리버풀 등 영국 잉글랜드 지역에서 시행 중인 1회용 비닐봉지 유료화 전략이 초반 성공을 거두고 있는 분위기다. 잉글랜드는 영국에서 비닐봉지 유료화를 시행하는 마지막 지역으로 웨일스·북아일랜드·스코틀랜드에서는 이미 해당 정책을 통해 비닐봉지 사용량을 큰 폭으로 줄였다.

비닐봉지 사용량 80% 감소
영국 잉글랜드 내 대형 상점들은 2015년 10월부터 환경보호를 위해 기존에 무상으로 지급하던 비닐봉지를 5펜스(90원)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쓰레기 줄이기 자선 단체 랩의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잉글랜드 내 주요 대형 슈퍼마켓 7곳에서 소비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준 비닐봉지는 76억 장이 넘는다. 1명이 연간 140장을 쓴 셈이고 전체 무게로는 6만1000톤에 달하는 양이다.

비닐봉지 사용이 해마다 늘자 비닐봉지 과용에 제동을 걸기 위해 최근 영국 정부는 250명 이상의 풀타임 직원을 둔 소매 업체들을 대상으로 비닐봉지 유료화에 동참하라고 지시했다. 이들 업체가 만약 소비자들에게 공짜로 비닐봉지를 주다가 적발되면 5000파운드(869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처럼 비닐봉지에 요금을 부과하자 즉각 효과가 나타났다. 잉글랜드 지역 소비자들의 비닐봉지 사용 비율이 이전보다 80%가량 줄어든 것이다. 대형 유통 업체인 테스코 측이 2015년 연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비닐봉지 유료화 정책 이후 사용량이 기존 대비 78%나 급감한 것으로 보고됐다. 온라인 쇼핑에서도 ‘백리스(봉투 없음)’를 선택하는 비율이 50%나 증가했다. 슈퍼마켓에서 항상 무료로 받았던 비닐봉지를 사야 하는 상황이 되자 그 돈을 아끼기 위해 천으로 된 가방이나 장바구니 등을 집에서 미리 챙겨 오는 소비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5펜스라는 적은 돈이 비닐봉지 과소비 습관을 버리게 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봉지 과금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우호적이다. 환경보호 단체 브레이크더백해빗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잉글랜드의 소비자 62%가 봉지 유료화 정책에 대해 ‘합리적’이라고 답했다. 유명 슈퍼마켓 체인의 고객들도 봉지 유상 판매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어 해당 상점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영업을 하고 있다고 영국 주요 언론들이 보도했다.

프렌드오브더얼스를 비롯한 영국 내 시민 단체들은 유료화 조치가 1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크게 감소시킨다며 대형 사업장뿐만 아니라 소규모 상점에서도 봉지 과금 정책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5펜스 정책을 펼치고 있는 대형 마트들은 1회용 비닐봉지 판매로 얻어진 수익금을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다. 테스코 측은 봉투 유료화 정책이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다며 판매 수입 3000만 파운드(524억 원)를 자선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특별히 도시에 녹색 공간을 만드는 지역사회 프로젝트 작업에 해당 수익을 전달한다고 말했다. 대형 유통 업체 아스다·모리슨스·아이슬란드·웨이트로즈 등 4곳은 비닐봉지 판매 수익금을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치매연구센터 건립에 기부하기로 했다.

EU 차원서 사용 자제 지침 제정
영국 정부는 아직 걸음마 단계인 유료화 정책을 정착시켜 슈퍼마켓에서 최대 80%, 시내 지역에서 50% 정도 비닐봉지 사용량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정부는 비닐봉지 판매비용을 모아 향후 10년간 자선단체 기부 등 공공선을 위해 7억 3000만 파운드(1조2747억 원)를 사용하고 봉지 소비 감소를 통해 쓰레기 청소비용 6000만 파운드(1048억 원)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영국 정부가 이처럼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것은 앞선 세 지역에서의 성공 덕분이다. 영국에서는 웨일스(2010년)를 시작으로 북아일랜드(2013년)·스코틀랜드(2014년)순으로 1회용 비닐봉지 유료화 정책에 동참해 왔다.

랩의 자료에 따르면 웨일스 지역의 비닐봉지 사용량은 2010년 3억5200만 장에서 2014년 7700만 장으로 대폭 감소했다. 웨일스의 슈퍼마켓 체인이 그동안 봉지 판매 대금을 모아 자선단체에 기부한 금액은 1700만 파운드(297억 원)에서 2200만 파운드(384억 원) 사이로 추정된다. 북아일랜드 역시 2013년 4월 유료화 도입 이후 봉지 사용량이 현저히 줄어 2012년 1억9300만 장에서 2014년 3300만 장을 기록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로리 스튜어트 환경부 장관은 “비닐봉지 유료화 정책이 실질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수천 가지의 선한 일을 만들어 내고 있어 매우 기쁘다”며 “비닐봉지의 사용량을 줄이는 것은 매우 작은 일이지만 이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중요한 단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현재 유럽에서는 1회용 비닐봉지 사용 자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유럽연합(EU)은 2015년 4월 28일 1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내용이 담긴 포장 지침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는 2019년까지 1인당 연간 비닐봉지 사용량을 90장, 2025년까지는 40장까지로 제한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비닐봉지 사용량 감소를 위한 주요 대상은 두께가 0.05mm 미만인 얇은 1회용 비닐봉지다. 비닐봉지라고 하더라도 두께가 두꺼운 비닐봉지는 다회용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고기나 채소 등을 담을 때 사용하는 비닐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EU 회원국들은 개정된 지침을 지키기 위해 2019년까지 국내 법률에 반영해야 한다. 만약 EU 회원국의 정부가 이를 지키지 않으면 EU 집행원회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EU 내 시민들은 1인당 매년 평균 200개의 1회용 비닐봉지를 사용하고 있다. 이 중 썩지 않는 비닐로 된 1회용 봉지는 853억 장이며, 57억 장의 썩지 않는 1회용 비닐봉지가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헤이그(네덜란드)= 김민주 객원기자 vitamj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