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현대카드 등 '진정성 마케팅' 펼쳐
전 세계 27개국에 315개의 매장을 거느린 이케아는 연매출 30조원, 순이익 3조원이 넘는 초대형 글로벌 기업이자 가구 제조 및 유통 분야 세계 최대 업체다.이케아는 지독한 원가관리로 유명하다. 소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구는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플랫 팩이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포장돼 있어 소비자들은 제품 구매 후 집에 가져가 손수 조립하는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에게 이케아의 이미지는 친근하다. ‘스몰랜드’라는 스웨덴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이케아의 스토리가 매장 곳곳에 안내돼 있고 매장에서 파는 식료품들은 스웨덴인들이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스웨덴 전통의 제품들이다.
이케아에서 시간을 보내는 소비자들은 매장에 구현된 ‘작은 스웨덴’ 문화 속에서 편안함과 친근함을 느낀다. 이는 철저한 원가관리를 통해 사업을 영위해 나가는 ‘초대형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이케아를 효과적으로 희석한다.
바야흐로 ‘원조’의 전성시대다. 대부분의 제품과 서비스가 자신이 ‘진짜’라고 말하고 있다. ‘최고·진짜·진정한·유일한’이란 단어가 사용되는 수많은 광고를 보면 무엇이 진짜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유명 맛집 근처에는 ‘진짜 원조 1호’라는 간판들이 수두룩하다.
모두가 ‘진짜’·‘최고’ 내세워
하지만 간판을 통해 소비자들을 속일 수 있는 시대 또한 빠르게 저물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몇 초만 검색해 보면 어느 집이 진정한 원조인지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마케터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들을 필요도 없다. 언제, 어디서나, 아주 편리하게 다른 소비자들의 체험에 기반한 훌륭한 정보를 참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들은 정보를 추천하고 공유하는 방식을 혁신해 이용자 개개인이 정보 확산의 매개체가 되는 ‘소셜 필터링’을 가능하게 했다. 소셜 미디어 이용자들은 지인들이 올린 정보가 소셜 네트워크에서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여부를 ‘좋아요’나 ‘리트윗’ 등의 기능을 통해 평가하고 자신이 제공한 정보의 가치 또한 다른 사람들에 의해 평가받게 된 것이다.
소셜 미디어 이용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기업이 제공하는 마케팅 메시지보다 지인들이 이야기하는 제품과 브랜드의 평가와 추천에 훨씬 더 많은 관심과 신뢰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대해 제임스 길모어와 조셉 파인은 저서 ‘진정성의 힘(Authenticity)’에서 “소비자들은 그럴듯하게 포장된 가식적인 산출물들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으며 투명한 곳에서 제공되는 진실한 산출물을 원한다. 소비자들이 진실과 가식으로 인식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어떠한 요소가 이러한 인식에 영향을 주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급변하는 마케팅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기업들은 불가피하게 기존의 마케팅 방식을 수정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제품이나 브랜드 자체의 진정성을 강조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시도다.
다른 제품들이 저마다 차별화된 포지셔닝을 강조하며 화려한 이미지로 꾸며진 광고를 내보낼 때 오히려 ‘우리는 이미지가 아닌 제품이 가진 진정한 가치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는 말없는 메시지를 제품과 브랜드에 은밀히 부여한다. 이러한 메시지가 소비자들에게 인정받게 되면 광고 없이도 소비자 기반이 확산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진정성의 힘’의 저자인 제임스 길모어와 조셉 파인은 진정성을 ‘소비자 자신의 가치와 부합하기 때문에 소비자와의 교감적 동요가 발생하는 속성’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글렌 캐롤과 데니스 휘튼 교수는 진정성을 ‘사회적인 구조에 의해 형성되는, 소비자들에게 특정한 종류의 신성하거나 문화적인 해석을 가져오는 제품이나 서비스’라고 정의했다.
결국 ‘진실한’, ‘인간적인’, ‘장인의 손길이 담긴’, ‘약자를 보호하는’ 등과 같이 특정 소비자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철학적·문화적·사회적 가치가 제품에 담겨 있다고 생각할 때 소비자들은 진정성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성은 어떻게 확보해야 할까. ‘진정성을 찾아서’의 저자인 리처드 피터슨은 ‘진정성은 상품의 내적 특성만으로 설명되지 않고 상품과 서비스의 카테고리를 둘러싼 생산자·소비자·비평가 등 다양한 참여자들의 관계 속에서 이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보량의 증가와 구매 가능한 제품 종류의 증가로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합리적인 선택이 과거에 비해 어려워짐에 따라 소비자들은 제품들이 은연중 드러내는 ‘진실의 증거’에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 간 이견이 크지 않을 진실의 요소를 브랜드와 제품에 효과적으로 담는 것이 진정성 확보의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SK Ⅱ, ‘쌀눈’ 스토리로 큰 성공
기업들이 활용하는 진정성 관련 요소는 크게 역사·장소·성분·문화예술 등으로 구분할 수 있고 각 요인이 중첩될수록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효과가 큰 것으로 보인다.
화장품 업계에서는 이미 진정성의 요인들이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P&G의 SK II 브랜드는 ‘일본의 양조장에서 누룩을 빚는 할아버지의 주름 없는 손’이라는 스토리를 통해 SK II에 함유된 쌀눈 성분의 유효성을 강조했고 이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또한 영국의 화장품 업체 러시는 자사의 모든 제품에 천연 원료를 활용하는 것은 물론 사용된 천연 원료를 소비자들이 뚜렷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를 위해 제품의 향, 제품의 색깔과 제품명 등에 원료의 특성을 최대한 반영했고 원료의 일부가 제품 사용 중 자연스럽게 확인될 수 있도록 제품을 제조하고 있다.
매장도 전통 시장 내 과일 가게나 식료품 가게의 느낌이 나도록 비누 제품을 칼로 잘라 종이에 싸서 판매하는 등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최근 국내 화장품 업체들도 ‘제주 화산 송이’, ‘제주 화산토’ 등 지역과 성분이 결합된 제품을 출시하는 등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식음료 분야의 업체들도 진정성 요인들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부채표 활명수나 CJ의 백설표 브랜드 광고는 해당 브랜드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강조, 소비자들의 신뢰를 확보하려는 전략이 담겨 있다.
CJ는 이러한 역사성을 실제 제품에도 확장 적용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제일제면소라는 브랜드다. 이 브랜드는 1960~1970년대 제면소의 콘셉트를 보유한 면 전문 식당 프랜차이즈 브랜드인데, CJ에서 판매하는 면류 브랜드에도 활용해 서비스와 제품 상호 간 상승효과를 노리고 있다.
뮤직 라이브러리 만든 현대카드
문화예술을 활용한 사례로는 국내 카드 업체들의 문화 마케팅을 들 수 있다. 특히 현대카드는 자사의 회원들에게 문화 행사에 대한 할인 쿠폰 등을 제공하는 기존의 카드사 마케팅 방식에서 벗어나 콘서트나 스포츠 이벤트(슈퍼콘서트, 슈퍼 매치), 전시회(팀 버튼, 스탠리 큐브릭 전시회), 국내 유명 맛집 할인 이벤트(현대카드 고메위크) 등 자사에서 직접 문화 이벤트를 주도하는 방식으로 진정성을 어필하고 있다.
현대카드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뮤직 라이브러리, 디자인 라이브러리 등 실제 문화예술 관련 건물을 직접 지어 소비자들의 체험을 직접 통제하는 방식을 통해 소비자들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하고 있다.
모바일이나 태블릿 PC 등의 기기를 활용한 온라인이나 소셜 미디어가 정보의 주요 습득 채널로 부상하면서 매스미디어에 의존하던 과거와 달리 보다 정교화된 마케팅이 가능해진 시대가 됐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소비자들의 뇌리에 남는 차별화 요소는 진정성이다.
극도의 시장 세분화로 제품과 서비스의 차별적 요소가 미미해지고 이를 만회하려는 기업들의 마케팅 전술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감도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에서 소비를 통해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소비자들의 욕구는 제품과 서비스에 녹아 있는 신뢰 요소인 진정성의 추구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이제 소비자들의 변화에 귀를 기울여 단기적인 마케팅적 시각보다 제품·서비스·브랜드가 어필할 수 있는 진정성의 요소를 장기적 관점에서 주의 깊게 개발해야 한다. 마케팅 활동에서도 진정성을 통한 소비자의 공감과 자발적인 추천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이 언제 자신이 사용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자랑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추천하는지, 어떻게 해야 기업의 진정성을 유지하면서 사람들의 입소문을 북돋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이러한 환경 변화에 대해 대응하려는 노력이 중요한 시점이다.
허지성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jsheo@lge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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