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곡동 아우디 정비 공장 투자 기업 도산 위기
교차로 사거리. 신호등의 오작동으로 한 차량이 옆에서 달려오는 차량을 피하려다 전복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차량은 두 번 다시 도로를 달릴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고 운전자 역시 생명을 부지하지 못할 정도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그 누구도 사고 차량과 운전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작동을 일으킨 신호등도 비켜 지나간 차량도…. 과연 책임져야 할 주체는 없는 것일까.서울 내곡동 아우디 정비 공장 논란은 전체적인 맥락만 놓고 보면 이와 유사한 사건이다. 예로 든 자동차 사고처럼 생명을 다투는 사고는 아니지만 한 중소기업과 계열회사에 종사하는 임직원들의 생계가 걸린 사건이다.
이 중소기업은 서울시 산하 공기업인 SH공사의 말과 해당 구청의 인허가만 믿고 정비 공장을 짓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들여 부지를 사들이고 공사를 진행했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대와 법원의 ‘건립 불가’ 판결로 결국 공사가 중단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곡동 아우디 정비 공장 부지는 공사가 중단된 채 ‘흉물’로 남아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입주 시점에 맞춰 어떤 건물이든 완공됐어야 하지만 서울시와 서초구의 무책임한 행정으로 아직까지 공사장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해당 중소기업인 ‘위본’ 측의 피해는 회사의 존립 자체를 흔들고 있다. 공사비용 등 지금까지 투입된 비용만 250억원에 달하는 데다 이자 비용 등 매월 1억5000만원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막대한 손해를 보며 시간을 흘려보낸 지 벌써 2년 4개월이 지났다.
이에 대해 건축 허가의 주체인 서초구와 토지 공급 주체는 SH공사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인허가까지 받고 250억원 투자
지난해 12월 말. 수입 자동차 아우디의 공식 딜러사인 위본 관계자들이 고개를 숙인 채 SH공사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이번엔 꼭 대체 부지나 위본 측의 피해를 상계해 줄 방법을 찾겠다던 SH공사의 담당자가 결국 아무런 답변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또 기다리라는 답만 돌아왔다.
사실 이 일이 있기 얼마 전인 12월 24일 내곡동 대체 부지 해결을 위한 실무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한 서울시에서 황당한 제안을 해 왔었다. 내곡지구 땅의 용도를 변경해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위본 측에 제안했던 것이다.
임대주택 사업 경험도 전무했던 위본으로서는 추진할 수도 없는 사업이었지만 땅을 팔았던 SH공사가 “내곡동 부지의 용도를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서울시는 그동안 내곡지구 대체 부지를 찾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말을 바꾸면서 시간을 끌어 왔다. 당초 위본은 2013년 5월 SH공사로부터 92억원에 내곡지구 주차장 용지 3618㎡를 매입했다. 이 과정에서 위본 측은 SH공사에 정비 공장 건립 가능 여부를 물었고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내곡지구의 행정구역인 서초구 역시 SH공사에 정비 공장 건립 가능 여부를 물었고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2013년 9월 허가를 내줬다. 위본은 바로 정비센터 착공에 들어갔다.
하지만 공사를 시작한 지 두 달여 만인 같은 해 12월 내곡지구 주민들이 학교 인근에 유해 시설이 들어선다며 반발했고 건축 허가 취소 행정소송에 휩싸였다. 이 문제가 사회적 논란거리로 떠오르며 급기야 박원순 서울시장이 나서기에 이르렀다. 당시 현장을 방문한 박 시장은 건축 허가의 잘못을 지적하며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겠다는 구두 약속을 통해 주민들과 위본 측을 달랬다.
이 사이 이 문제는 결국 법정 싸움으로 번졌고 2014년 7월 법원은 행정소송 1심 서초구 패소 판결 및 공사 중단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다음 달인 8월 내곡 대체 부지를 해결하기 위한 실무 TF팀을 구성하고 곧 대체 부지를 찾겠다고 장담했다.
이후 두 달 뒤 서울시와 SH공사 측은 ‘내곡지구 정책토론회’에서 “대체 용지를 찾았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내곡지구 내 다른 땅을 대체 부지로 선정한 것이다. 이 땅엔 3가구가 거주하고 있었는데, 회사가 이들 가구의 이전 비용을 부담하고 가져가는 조건이었다.
위본 측은 이 제안이라도 적극 수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지난해 4월 돌연 “존치 가구를 처리하는 게 쉽지 않겠다”며 대체 부지 선정을 취소했다.
여러 차례 말 바꾼 SH공사·서울시
결국 국민권익위원회의 중재를 통해 마곡 지원 시설 용지 DS4-1블록과 DS4-2블록을 대체 부지로 선정했지만 지난해 11월 돌연 이 같은 계획을 또 철회했다. ‘특정 업체에 부지를 공급하는 것은 특혜 시비가 있을 수 있다’는 게 이유였지만 그 뒤에는 마곡지구 수익성 상승이라는 실리적 판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해당 지원 시설 용지는 지금까지 3차례나 유찰됐던 땅이지만 지난해부터 마곡동 일대 부동산 값이 상승하면서 인기가 높아졌다. 도시개발법은 토지 공급 시 2차례 이상 유찰되면 수의계약이 가능하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최근 이 지역 지원 시설 용지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과거 유찰됐던 DS5-1블록 등 4개 필지는 지난해 11월 감정가의 116~160% 선에서 낙찰됐다. 이미 내곡지구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돼 자금난에 시달리는 위본으로선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서울시와 SH공사가 시간을 끄는 사이 위본과 계열사의 재무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위본의 계열사로 철근콘크리트 공사를 주로 하는 도양기업은 2013년과 2014년에 각각 1344억원, 1156억원어치를 수주했지만 지난해에는 341억원을 수주하는 데 그쳤다. 보증을 선 내곡지구 정비 공장 사업이 중단되면서 신용 등급이 작년 ‘BB+’에서 올해 ‘B+’로 떨어진 때문이다.
위본의 또 다른 계열사인 위본건설도 2013년 ‘A-’이던 신용 등급이 올해 ‘BBB’로 떨어졌고 2013년 607억원이던 수주 금액은 작년 11월 초까지 85억원으로 급감했다. 위본과 계열사에 근무하는 임직원과 그들의 가족은 총 3200명이 넘는다. 하루가 다급한 중소기업의 현실과 달리 서울시의 복지부동은 해를 넘겼다.
대체 부지를 마련해 주겠다던 서울시의 약속은 ‘수의계약으로 부지를 줄 수 없다’는 말로 바뀌었고 땅을 팔았던 SH공사는 계속해 “기다려 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위본 관계자는 “정부를 믿고 한 사업인데 심각한 자금난에 서초동 본사 사옥도 지난해 말 매각했고 도산까지 우려된다”며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만 하는지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차완용 기자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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