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하나·국민은행 '강점'…우리·기업은행도 여신본부장 '두각'
"NH농협은행, 올해 초 리스크 관리 전문가 밀려나"

리스크 관리는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해 피해를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업무를 말한다. 예전의 리스크 관리는 손실이나 피해를 피하는 것에 머물렀지만 지금은 이익을 창출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핵심이 됐다. 이에 따라 리스크 관리는 미래의 위험 요인과 함께 기회 요인을 찾는 것으로 해석된다.

올해처럼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화두로 떠오른 시점에서 은행들의 리스크 관리 실수는 해당 은행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그만큼 리스크 관리를 담당하는 ‘리스크 컨트롤타워’의 역할과 역량이 중요해진 셈이다. 한경비즈니스는 국내 주요 은행들의 리스크관리본부를 이끄는 수장들의 면면을 통해 그 실상을 들여다봤다.

2014년부터 KB국민은행의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을 맡아 온 박정림 부행장은 국내 금융권에서 손꼽히는 리스크 관리 전문가 가운데 한 명이다.

박 부행장은 체이스맨해튼은행의 서울지점을 시작으로 금융권에 몸을 담아 조흥은행 연구원, 삼성화재 자산리스크관리부장으로 근무하는 등 리스크 관리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박 부행장은 2004년 KB국민은행 시장리스크 부장, 2005년 재무보고통제부장, 2013년 자산관리(WM)사업본부 전무를 거쳐 2014년부터 은행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직에 올랐다.

2015년부터 KB금융지주의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를 겸임하면서 KB금융그룹 전체의 리스크 관리를 책임져 왔다. 박 부행장은 국내 은행권 리스크 관리 부문의 유일한 여성 임원이기도 하다.

KB국민·신한 ‘잔뼈 굵은 전문가 포진’

박 부행장이 올해 1월부터 여신 정책, 여신 관리, 여신 심사 및 기업 구조조정 등을 총괄하는 여신그룹의 부행장으로 옮기면서 김기환 KB국민은행 리스크관리그룹 상무가 그 역할을 이어받게 됐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국민은행은 리스크 관리의 중요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담당 임원의 업무 연속성을 확보해 전문성을 심화하고 다양한 외생변수에 대한 선제적 대응 체계를 확립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며 “올해 박 부행장이 여신그룹 부행장으로 이동한 것 또한 그동안 그룹 전체의 리스크 관리를 맡아 온 박 부행장을 보내 여신 업무에서도 그룹 전체의 리스크 관리 기조의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의 리스크관리그룹을 총괄하는 조재희 상무 또한 관련 분야에 오랫동안 몸담아 온 실무 출신 임원이다. 조 상무는 2006년부터 리스크관리부 팀장으로 3년여간 근무하다 2009년부터 리스크총괄 부장으로 2년간 일했다. 2014년 1월부터 전략기획부로 옮겨 근무하다가 올해 1월부터 다시 리스크관리그룹으로 돌아와 그룹장이 됐다.

신한은행의 이기준 부행장보(여신지원그룹장)도 전략여신심사실 실장 겸 선임심사역을 거쳐 여신기획부장, 여신지원본부장 등을 지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한은행은 거래 기업을 한 달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방문하는 등 거래 후 모니터링을 철저히 한다.

이를 통해 리스크 요인을 찾는 것은 물론이고 영업 기회를 얻기도 한다”며 “게다가 일부 은행에선 리스크담당 부서가 한직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데 신한은행에서는 리스크관리본부가 기획이나 인사부 등과 동등하게 주요 부서로 인정받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외국계 은행인 한국SC은행의 리스크관리 본부장의 이력 또한 눈길을 끈다. 현재 한국SC은행의 리스크관리 본부장 겸 기업금융 리스크관리부장직을 맡고 있는 대런 김 전무는 시중은행의 리스크 관리 임원진 중 가장 젊은 축(1974년생)에 속하지만 리스크 관련 분야에서 꽤 오랫동안 실무 경험을 쌓았다.

김 전무는 2000년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바이스프레지던트(VP)로 근무하며 글로벌 구조화 상품의 리스크 관리 업무를 맡았고 2009년에는 BoA의 신용리스크지역본부 홍콩디렉터를 역임했다. 2014년 한국SC은행 기업금융리스크관리부장(전무)을 거쳐 현재 한국SC은행의 리스크관리본부장 겸 기업금융 리스크관리부장직을 맡고 있다.

은행의 리스크관리본부장이 금융지주의 CRO를 겸임하며 전문성과 일관성을 키우는 케이스도 있다. KEB하나은행은 지난해 말 황효상 리스크관리그룹 본부장이 전무로 승진해 리스크관리그룹의 그룹장과 함께 하나금융지주의 CRO를 겸임하고 있다.

황 전무는 2014년 하나금융지주의 CRO직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리스크 관리 업무에 뛰어들었다. 그는 한국외환은행 신용기획부 팀장, 전략기획부 부장, 기획관리그룹장 등을 거친 뒤 2014년부터 하나금융그룹의 리스크관리본부로 옮겨 왔다.

하나은행, 리스크본부장이 지주 CRO 겸임

하나은행의 정정희 전무(여신그룹장) 또한 외환은행 국제여신실 선임심사역을 거쳐 2012년 여신그룹 부행장보를 지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부터 선제적 리스크 관리에 나서기 위해 ‘크레디트 코스트(Credit Cost) 혁신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대손비용 최소화와 여신 건전성 제고를 위한 리스크, 심사, 마케팅 그룹의 협업 체계를 구축했다.

IBK기업은행은 권선주 행장이 리스크관리본부장에서 행장에 오른 이후 리스크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권 행장은 지난 1월 14일 임직원 2500여 명의 승진·이동 인사를 단행했는데, 장기 저성장에 대비한 건전성, 리스크 관리 분야에 핵심 인력을 대거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IBK기업은행의 리스크관리그룹은 조헌수 부행장이 총괄하고 있다. 조 부행장은 1985년 IBK기업은행에 입행해 2007년 투자금융부장, 2012년 본부기업금융센터장, 2013년 기업고객부장, 2014년 남부지역본부장을 역임했고 작년 7월 리스크관리그룹장이 됐다.

IBK기업은행의 이상진 부행장(여신운영본부장)도 여신관리부장을 거쳐 2014년 여신운영본부장을 맡았다.

우리은행의 최정훈 리스크관리본부 부행장은 1984년 우리은행에 입행한 후 30년 넘게 은행에 근무하며 수신·여신·외환 등 모든 분야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또 홍콩우리투자은행 법인장 등 해외를 포함한 영업점 총괄에서 금융지주·전략부서·감사·사업단 등에서 총괄 리더로서의 경험과 역량을 쌓아 온 점이 눈에 띈다.

하지만 리스크 관리 부문장으로서의 활동은 이제 막 발을 뗀 셈이어서 앞으로 어떤 활약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최 부행장은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역량을 쌓아 왔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 부문장으로서 강점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실 우리은행은 그동안 리스크 관리 분야에서 부진한 실적을 보여 왔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은행은 그동안 리스크 관리와 관련된 부서 구성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져 문제가 많았다”며 “지난해 임원진이 크게 바뀌었는데 기업 여신 쪽에서 잔뼈가 굵은 이동빈 우리은행 여신지원본부 부행장이 여신 업무를 총괄하면서 우리은행의 리스크 관리 측면이 많이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NH농협은행은 김형열 부행장이 지난 1월 NH농협은행 경남영업본부장에서 부행장으로 승진해 리스크관리본부장을 맡고 있다. 김 부행장은 1986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했는데 이후 농협중앙회 장유지점장, 고성군지부장 등을 거쳐 2011년 NH농협은행 WM사업부장, 2014년 NH농협은행 울산영업본부장을 역임했다.

김 부행장은 리스크 분야 관련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편에 속한다. 업계 안팎에서 “기존에는 농협에 리스크 관리 분야 전문가가 여럿 있었는데, 이번 인사로 모두 물갈이 됐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이에 대해 NH농협은행 관계자는 “김 부행장은 경남영업본부 재직 시절 업적 평가 1위를 달성했을 정도로 능력이 뛰어나고 리스크 관리 관련 성과도 많다”며 “당시 리스크 관리 부문 업적 평가에서도 상위권을 기록(위험 조정 성과 평가 1위 달성, 운영 리스크 관리 평가 2위 달성 등)했다”고 밝혔다.

“은행에 리스크 전문가가 드물다”

전문가들은 국내 은행들의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이미 세계 유수의 은행과 견줘도 될 정도로 체계가 갖춰져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핵심은 이 훌륭한 시스템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리스크 관리에 대한 인식이 일찌감치 자리 잡은 외국 은행들은 리스크 관리 분야의 실무진에게도 최소 3년 이상의 관련 분야 경험을 요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국 은행들의 사정은 다르다.

리스크 관리 담당 임원은 물론 여신 심사 임원 가운데 리스크 관리나 기업 심사를 전혀 해보지 않은 이들이 있을 정도다. 업계에선 은행의 순환 보직 등의 구조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해명하지만 그동안 리스크 관리가 얼마나 후순위로 밀려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리스크 관리의 컨트롤타워라고 할 수 있는 임원진의 역량 강화도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정조 리스크컨설팅코리아 대표는 “리스크관리본부 임원들은 수치상으로 드러나는 기업의 실적 이외의 면들을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시중은행의 임원들 중엔) 이러한 기업의 신용 위험에 대한 상당한 경험이나 전문적 역량을 가진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며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에 대한 꾸준한 교육과 함께 현장 위주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 멘토링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현주 기자 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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