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에 충실해 노동생산성·충성도 높아
스페인 7대 기업으로 우뚝

그러나 단 한 명의 해고도 없이 오히려 1만 5천 명의 신규고용을 창출하고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간 기업(?)이 있다. 바로 몬드라곤 협동조합이다. ‘사회적 경제’의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조합은 주목할 가치가 충분하다.
몬드라곤은 스페인의 바스크 지역에 있는 작은 도시 이름이다. 15세기 이후 철강, 금속 산업이 발달한 곳인데 스페인 내전 후 인구의 80%가 떠났고, 산업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그곳에 부임한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José María Arizmendiarrieta) 신부는 청년들이 아무 할 일이 없어서 무기력과 폭력에 빠진 것을 보고 마을 아이들을 위한 기술학교를 세우고 작은 석유난로공장을 세웠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울고(ULGOR)인데, 이것이 몬드라곤 협동조합 기업(Mondragón Cooperative Corporation; MCC)의 시작이다.
그렇게 시작한 조합은 날이 갈수록 성장하여 몬드라곤 건설(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을 건축했다)을 비롯하여, 에로스키(Eroski), 파고르(Fagor) 등 유수 기업을 포함하는 250여개의 사업체로 구성된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전기, 자동차, 철강, 공작 기계를 비롯하여 서비스, 유통, 금융, 교육 분야를 포함하며, 스페인에서 7번째로 큰 기업이 되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결과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결실을 맺었다.
몬드라곤도 1980년까지는 120여 개가 넘는 개별 협동조합의 느슨한 연합체였지만 은행이 중심이 되어 통합하여 성장함으로써 글로벌 대기업으로 부상했다. 몬드라곤은 성장 위주와 비인격성의 기업 문화에 대한 가장 확실한 모범적 대안 사례다.
몬드라곤의 기업 목표가 일관되게 ‘고용 창출’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도 양질의 일자리를 보다 많은 이들에게 만들어주겠다는 목표는 고용 창출과 기존 조합원이 이익이 부딪칠 때마다 노동자인 조합원들이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고 고용 창출에 합심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기업과 노조 모두가 주목해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기업 목표
윌리엄 F. 화이트와 캐서링 K. 화이트는 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협동조합주의는 한마디로 특권계급의 형성을 저지하기 위해 권력의 인간화와 경제민주화와 단결을 통해서 양심과 문화의 새로운 국면을 창조하려 노력한다. 협동조합주의는 소유에 기능적인 가치만을 부여한다. 즉 소유는, 그것이 공동생활에서 책임감과 효율을 높이는 효과적 원천으로 작용하는 한에서만 가치가 있다.”
이러한 돈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돈 호세 마리아 신부와 그와 함께 몬드라곤을 만들어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사람들을 설득하여 학교를 세우고 이곳 졸업생들과 함께 최초의 협동조합을 세웠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이 성공할 수 있도록 협동조합 은행(노동인민금고)을 설립했던 것만 감동적인 것이 아니다.
신부는 사람들과 토론하고 공부하며 협동조합을 이끌었다. 결코 독단적이지 않았고 매사 민주적이었다. 민주적이어서 때론 절차와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했을까? 아니다. 그것이 바로 힘의 바탕이다.
그 힘이 바로 1980년대 유럽의 경기 침체나 2008년 세계 경제 위기의 회오리 속에서도 노동자들이 협동조합을 지켜내고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한 원천이다. 또한 1974년 처음 파업을 겪으면서 내부 갈등을 감내해야 했고 불가피하게 해고의 극한 처방도 내렸지만 끝내 그들을 복직시켰으며 늘 협동조합의 원칙을 새롭게 깨달았다.
그뿐 아니라 파산한 기업을 구제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의 진정한 힘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러한 가치와 신념이다. 돈 호세 마리아 신부는 이렇게 말한다.
“일부 사람이 자신의 배타적인 이익을 위해 타인의 노동을 이용하는 것을 허용하는 사회제도는 일종의 사회적 괴물이다. 협동조합주의자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자본주의자와 구분된다. 즉 후자가 자신에 봉사하는 사람을 키워내기 위해 자본을 이용하는 반면, 전자는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자본을 이용한다.”
진심으로 공동의 선이나 모든 이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사회제도가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신부의 다음의 말에도 깊은 울림이 담겨있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느껴지고 실천되는 민주주의는 그 범위를 선거제도상의 정책이나 절차에 국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은 제도적 과정을 민주화함으로써 경제와 재무 분야뿐만 아니라 교육과 사회 분야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반영되어야 한다.”
몬드라곤 그룹의 10대 운영 원칙은 여러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조합원 자격은 모두에게 개방한다.
▷1인 1표주의에 기초해서 민주적으로 조직한다.
▷노동자에게 최고결정권을 부여한다.
▷자본은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보조적 도구일 뿐이다.
▷노동자들은 경영에 참여한다.
▷임금은 균등하게 정한다.
▷모든 조합은 조합 간에 서로 협동한다.
▷지역사회의 발전에 기여한다.
▷사회민주화와 정의와 평화 등의 보편적 가치를 확산시킨다.
▷모든 조합원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
임금 차이 10배 넘을 수 없게 규정
이런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이 그룹에서는 심지어 비조합원이라 해도 불이익을 크게 받지 않는다. 비조합원과 조합원 간의 수입 차이는 배당금과 연금에서 차이가 날 뿐, 같은 노동에 대해서는 같은 임금을 받는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이 지켜지기 때문에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임금이 동일한 것이다. 퇴직이나 휴직 때도 자체의 사회보장협동조합에서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미래에 대해 불안할 것도 없다.
지금 대한민국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정규직 노동조합이 이 조합에 대해 공부 많이 해야 한다. 비단 노조뿐 아니라 기업도 연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회사 경영이 힘들 때는 불가피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 운영되는 휴직제도는 80%의 휴직급여가 지원되고 몬드라곤 교육기관에서 새로운 직업교육을 제공한다.
최고임금자의 임금이 최저임금자의 10배가 넘을 수 없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많은 급여를 주는 다른 기업으로 가지 않는 것은 자신의 회사를 위해 일하는 기쁨과 함께 일하는 동료 간에 느낄 수 있는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즉 임금만이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사들 또한 조합원들이 뽑는다. 자연스럽게 노사는 협력관계가 된다. 주주나 오너의 눈치만 보는 최고경영자가 아니라 자기 동료와 그 가족을 위해 일하는 이사들이 꿈이 아니다.
흔히 그런 경우 의사결정이 매우 늦다는 부정적 측면이 있다.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걸 과장할 까닭은 없다. 몬드라곤도 자신들이 의사결정이 늦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일단 결정이 정해지면 추진력이 대단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 하면 모든 조합원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결정된 사항을 향해 모두 힘을 쏟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본주의 사회에 적합하지 않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엄연히 시장경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들의 비밀은 ‘함께’ 일한다는 것이고 그들의 미래가 자신들의 손에 달려있다는 믿음은 노동생산성이나 충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기업이 과연 꿈일까? 그러나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협동조합기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다. 사회적 기업을 표방한 곳도 많다. 그리고 그러한 기업을 육성하는 정책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협동조합’ 자체에 대한 기업의 부정적 입장이 강하다.
농협, 수협, 축협 등의 협동조합이 각 지역마다 있고 각 업종에 대한 경쟁력 강화와 육성책 지원 등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자면 그것은 ‘관변화된’ 조합이다. 그리고 조합장 등은 지역의 유지로 행세하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 몰두한 이들도 많다. 협동조합은 분명 앞으로 중요한 경제의 대안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자본주의 이후의 경제를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부인하고 시장경제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자본주의나 시장경제가 만들어낸 비인격성과 탐욕을 제거하고 보다 인격적이며 오히려 더 효율적인 경제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몬드라곤협동조합은 분명히 그 좋은 모범이다. 관심이 있다면 앞서 언급한 두 책을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탐욕적이고 독점적이며 비인격정인 경제는 바로잡아야 한다. 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그것이고, 앞으로의 협동조합 방식에는 그것이 필수적임은 몬드라곤 사례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다.
표를 얻기 위해 외쳤지만 아무 것도 이룬 게 없고 이룰 의지도 없었던 ‘경제민주화’는 버려진 카드가 아니다. 그것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포스트 자본주의 경제, 이것은 우리가 지금 당면한 의제다.
김경집 인문학자, 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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