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수출의 동반 소비 신드롬의 확대다. 일본 방문객은 확실히 늘었다. 한국으로서는 안타까운 패배다. 2015년 8년 만에 해외 관광객 유치 경쟁에서 역전 당했다.
엔화 약세, 질병(메르스) 여파, 저가 불만 등 한국적 악재를 포함해 면세 확대 등 일본의 적극적인 유치 노력이 승부를 갈랐다. 무엇보다 술을 포함한 일본 문화의 포섭력이 컸다.
고향 술 들고 와 여는 파티 유행
일본의 전통술은 정종 혹은 사케다. 청주 종류다. 쌀을 누룩으로 발효해 여과한 술로, 일본에서는 ‘니혼슈(日本酒)’로 불린다. 도수가 높은 소주와 구분된다. 주원료인 쌀과 누룩이 각양각색이어서 맛이 천차만별이다. 이 다양성이 소비자 눈높이에 맞춰지면서 전통술의 붐업에 기여했다.
물론 화려했던 과거 명성과 지배력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최고의 전성기였던 1960년대보다 시장 규모는 3분의 1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최근 소비량이 늘었지만 가시적인 성과까지는 닿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만의 순풍은 반가울 따름이다. 전략 수정에 따라 전통도 얼마든지 돈이 될 수 있다는 신호를 안겨줘서다.
관련 축제는 최근 2~3년 사이 거의 매주 개최될 정도다. 새로운 안주와 장소 등을 결합한 이벤트도 일상적이다. 좀 소문난 시음회는 문전성시다. 옛날 분위기로 한껏 치장한 전문적인 점포 개업이 잇따른다. 유명 점포는 사전 예약이 필수다. 몇몇은 수개월 전에 예약해야 겨우 들어갈 수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선 출신 고향의 술을 들고 와 파티를 여는 것도 트렌드다. 외국인이 즐겨 찾는 스테이크 등 양식당조차 니혼슈를 메뉴에 포함해 맛의 글로벌화에 동참했다. 산지에서는 다양화된 소비 니즈에 부응, 부가가치를 키운 새로운 제품 개발에의 도전이 한창이다. 산·학·관의 기술협력도 급증했다.
붐업은 관심을 확대한다. 전통술의 인기가 유력한 사회현상으로 확인되자 관련 도서가 줄이어 출간된다. 유명 서점에는 전통술을 다룬 책만 진열한 코너도 많다. 2013년 일식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된 때부터 관련 서적이 쏟아졌다. 일식과 술은 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붐의 주역은 전국에 산재한 양조장의 술 빚는 장인 그룹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주조 후계자가 없어 고민하던 양조 업계의 풍경이 달라졌다. 전통 주조 기술에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한 30~40대의 젊은 피가 속속 수혈된다.
젊은 후계자 중에는 특유의 개방성을 발휘해 주종을 넘나드는 새로운 기술 혁신에 적극적이다. 영역 초월의 협력 체계를 통해 개성적인 브랜드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다. 가령 유명 원산지인 아키타의 ‘NEXT5’라는 메이커는 신세대 경영자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다.
제품 수 줄이고 고급화로 승부
전략 수정은 다각적이다. 먼저 고부가가치화다. 양이 아닌 질로 승부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량 품종을 소량품종으로 전환, 선택과 집중을 택한다.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생산량을 줄이고 기계보다 수제로 고급을 지향한다. 판매망도 예전처럼 지방 권역에 앉아 소극적으로 여행객 혹은 마니아를 기다리기보다 잠재 고객이 많은 대도시로 직접 진출한다.
맛의 변화 시도에도 적극적이다. 여성 고객을 타깃으로 해 거부감 없이 마실 수 있도록 진화시켰다. ‘아저씨가 마시는 싸고 냄새나는 술’이라는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서다. 이들 고객을 위해 와인처럼 온도·품질관리를 해주는 점포도 있다. 이탈리아 요리에 맞춘 스파클링에서부터 달달한 후식과 함께하는 저알코올 로제까지 완비했다.
명품의 생산 방정식도 변했다. 과거 니혼슈의 최고봉은 ‘YK35’가 정설이었다. Y는 야마다니시키라고 불리는 쌀의 종류, K는 구마모토 효모, 35는 정미 비율을 뜻한다. 이 기준으로 만들어야 명품으로 인정됐다. 그런데 최근 이 가설이 붕괴 중이다. 새로운 쌀만 100종류 이상 늘었고 효모도 새롭게 개발돼 현재 20종류 이상에 달한다.
정미 비율은 최근 되레 덜 깎는 게 쌀의 개성을 살리는 것으로 개념이 달라졌다. 술이 진화하니 마시는 법이 업그레이드된다. 의외의 조합으로 본연의 맛을 더 살리는 시도가 잦아졌다. 효모를 활용해 인도 요리는 물론 라면과 어울리는 술까지 나왔다.
그 덕분에 외국인 입맛까지 장악했다. 이는 방일 외국인의 규모 증가와 맥이 닿는다. 전통술에 대해 잘 몰랐거나 경험이 없던 외국인이 방일 여행을 계기로 팬이 된 경우가 적지 않다.
일본열도가 아닌 해외시장에서도 전통술의 활약이 눈부시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일식이 등록된 후 해외에서의 주목도가 급상승했다. 인기를 끌면서 수출량도 늘었다. 개성적인 맛과 브랜드의 힘으로 신제품 출시를 둘러싼 해외에서의 관심이 뜨겁다. 일부지만 역수입 형태로 붐을 이끄는 술도 있다. 창업 299년의 역사를 가진 ‘아오키(靑木)주조’가 대표적이다. 명문대 출신의 12대 사장답게 마케팅·브랜드 전략의 독자적인 전개 전략을 통해 입소문을 냈다.
그렇다고 관련 업계 모두가 웃는 것은 아니다. 명암이 엇갈린다. 일본 각지의 주조 업체만 해도 온도 차이가 명확하다. 일부를 빼면 실질적인 호경기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실제 국세청 과세 실적(과세이출수량)에 따르면 주류 생산량은 줄었다. 2011년(332만3000석)보다 2014년(313만9000석)이 더 적다.
그럼에도 붐이란 단어가 떠도는 건 주류별 증감 차이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즉 정미 수준에 따라 긴조·준마이·혼조 등 특정 명칭을 사용할 수 있는 종류는 잘 팔리지만 이 밖의 보통 청주는 오히려 판매량이 급감하는 추세다. 따라서 실제로는 상당수의 생산 업체가 힘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충성 고객이던 보통주 선호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소비량이 준 것도 컸다. 품평회에서 금상을 받은 업체마저 폐업하거나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곳도 생겨난다. 즉 팔리는 30%와 소외된 70%의 시장 구분이 뚜렷하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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